예상보다 훨씬 처참한 책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내가 목격한 '가장 끔찍한 위선'이었다. 피해자를 위하는 척 하면서 두 번 죽이는. 읽으며 내내 고통스러웠다. 지식인이라는 사람이,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자신의 유려한 말발로 이렇게 진실을 호도해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어도 좋은가?
일단 책 전체가 논리적 비약과 확대 해석으로 가득차 있어 학술서 수준이 못 된다. 사료를 공정하게 다루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료를 취사선택하여 위안부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정립을 시도하는 책이다. 문제는 박교수가 그려내는 위안부의 이미지가 그가 공격하는 기존의 위안부 이미지보다 훨씬 진실과 멀다는 점이다.
몇 년 전 이 책이 논란이 되었을 당시엔 관심이 없었다. 제목부터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도 아니고 '제국의 위안부?' 위안부에 대한 공식 명칭은 'comfort waman'이 아니라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다. 다만 '성노예'라는 말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할머니들에게 부담이 갈 수 있어 '위안부'라는 명칭을 쓸 뿐이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에는 '일본'과 '군대'가 사라지고 없다.
최근 페북에서 이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교수의 논리에 동조하는 이들이 꽤 보여 도대체 무슨 주장을 펴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기가 막힌 내용이 많아 꼼꼼하게 읽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은 책이지만, 이 책의 논리에 동조하는 지식인이 의외로 많아 포스팅을 남겨두려고 한다. 책 전체가 잘못된 논증으로 가득차 있지만 눈에 띄는 몇 가지만 살펴보자.
1. 박교수는 민족/국가 차원의 획일적 위안부 담론이 위안부들의 개인적인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한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진 그렇다 치자. 그런데 소수자를 위하는 척 하면서 박교수가 복원하고자 하는, 그간 가리워진 위안부의 모습이 일본군과 동지적인 친밀한 관계나 애정 관계도 있었고, 또 제국의 과업에 복무한다고 여긴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위안부와 일본군과의 관계를 마치 로맨스 소설처럼 다정하게 그리며 기존 위안부 담론이 할머니들의 이런 인간적인 추억을 억압한다고 주장한다. 할머니들이 분노할 만하다. 할머니들은 그런 기억을 억압당한 존재인가?
박교수는 본질적인 사안과 지엽적인 사안을 구분 안 하면서 피해자/가해자의 구도를 무너뜨리는 것 뿐인데(위안부와 일본군이 워낙 많으니 그 안에 다양한 모습이 있을 수 있으나 동지적 관계가 위안부의 본질은 결코 아니다, 일본군인 중 착한 사람이 있었다고 해서 위안부가 전쟁범죄가 아닌 것이 아니다), 마치 자신이 소수적 목소리를 발굴하여 민족적 대결 위주의 거대서사에서 소외된 진짜 위안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종일관 자기를 포장한다. 소수적 목소리를 중시하는 페미니즘적 시각을 일본정부에 면죄부를 주는데 적용한 것이 충격이었다. 의도가 너무 나쁘고 학술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그런데 가라타니 고진 같은 학자도 박교수의 편을 드는 걸 보면 객관적이어야 할 학자도 국적을 뛰어넘기 어려운 모양이다.
2. 박교수는 일본군과 위안부의 동지적 관계를 왜 이렇게 강조하나? 그리고 왜 중국/동남아 등 다른 나라 출신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는 다르다고,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일본제국의 신민의 한 사람으로 제국의 과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위치였다고 주장하는가? 일본정부에 강제동원/전쟁범죄의 책임이 없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박교수는 일본이 '가라유키상'처럼 공창을 운영하는 문화가 있었다면서 위안부도 당시 사회에서 불법이 아니었던 매매춘 문화의 연장선상에서 본다. 일본정부가 적극적으로 조선인 여성을 끌고 간 것이 아니라,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서 제국의 전쟁에 동참하는 구조였는데, 전쟁특수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정부가 아니라 여성들을 속여서 끌고 간 조선인 업자/포주가 문제이며, 위안부에 조선인 여성이 많은 이유도 조선인이어서 끌려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국내에서 더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군이 군대 안에 위안소를 운영한 것은 역사적 팩트인데, 주체인 일본군은 사라지고 위안부 사태의 책임이 가난/계급/젠더/가부장사회라고 추상화시킨다.
3. 박교수의 모든 논의는 결국 일본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로 귀결된다. 당시 제국주의 시대가 문제고 가난한 여성이 착취당하는 세테가 문제지 일본은 그런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위안부를 모집한 업자/포주가 제일 나쁜 놈이고 그걸 일본정부가 앞장서 한 건 아니라는 논리다(이건 팩트 오류. 일본정부가 기획한 문서 증거도 있고 위안소는 대부분 군대가 운영했으며 일반 사창가와 다르다).
그래서 '아시아 평화기금' 같은 민간재단이 보상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본정부가 기금과 재단에 관여했으니 정부기금이나 마찬가지라고도 주장한다(여기에 대해서는 이재승 교수가 지적한 것이 있다. 법적 책임이 없는데 민간에서 왜 도의적 책임을 지내고. 법적 책임이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라고).
4. 그러면서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가 해결 안 된 이유가 일본정부가 아니라 '정대협'의 경직성 때문이라고 뜬금없이 정대협을 공격한다. 일본정부가 그간 얼마나 정성을 들여 이 문제를 위해 노력했는데 정대협의 민족주의적/냉전적 위안부 인식이 화해를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소녀성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 위안부 평균 연령이 이십대이며(실제로 소녀가 많았으며 이십대라는 증거도 불분명하다), 저항적 표정의 소녀상은 위안부의 진짜 얼굴이 아니라 가부장적/민족주의적 사고의 산물로 대립을 일으킬 뿐 평화의 상징이 될 수 없다고.
이쯤 되면 저자의 모든 의도가 다 읽힌다. 모든 단체가 그렇듯이 정대협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간 위안부를 알리는데 가장 큰 공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 안 되는 것이 과연 정대협과 소녀상의 민족주의적 투쟁적 관점 때문인가? 국가/민족을 비판하는 것이 무조건 개인/소수자를 옹호하는 것인가? 박유하 교수의 논리가 위안부에 대해 무얼, 얼마나 더 보여주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정부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뿐이다.
5. 입장 바꿔 생각하면 간단하다. 민간의 사과 표명과 민간 기금의 보상이 생애를 저당잡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생활고로 기금을 수령한 할머니들도 물론 이해한다).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하며 소녀/여인들을 강제로 동원했는데 이 문제를 누가 사과하고 책임져야 하는가? 위안부가 일본의 전쟁범죄/전시동원이 아니라고 증명하기 위해 계급/가난/식민지 구조/가부장제까지 끌고 들어와서 논점을 흐리면서 일본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박교수 본인이 가장 정치적이고 파쇼적인 사람이 아닌가?
박교수가 기존 위안부 담론을 국가주의/민족주의적 서사라고 공격한 의도가 너무 악의적이다. 개인의 서사에 주목하는 페미니즘적 관점을 위안부 할머니들의 소리를 더 자세히 듣는 게 아니라 제국주의를 비호하는데 썼으니. 진짜 국가주의란 국가경제, 한일관계를 위해 할머니들에게 개인의 의사에 반하여 화해를 강요하는 것이다. 할머니들이 일본정부의 사과 없이 화해하지 않겠다는 게 무슨 민족주의적/냉전적 사고인가? 천황이 사과해야 용서할까 말까라는 그분들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가? 한일 양국 정부는 화해할 수 있지만 그분들한테는 개인적으로 화해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것이 개인/소수자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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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그런 기억을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는다. 물건뿐 아니라 기억까지도 한 번 발화된 이후로는 우리 사회에서는 “내삐러”져왔다. 말하자면 그녀들이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버리는 것은 그녀들 자신이 선택한 일이 아니다. ‘문제’삼을 것으로 여겨진 ‘사회’의 억압이다. 그건 그녀의 기억들이 ‘피해자로서의 조선’에 균열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는 무의식적 양해사항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안소의 고통을 잊게 해주었을지도 모르는 또다른 기억들을 무화시키고 망각시키는 것은 그녀들에게 또 하나의 폭력이 아니었을까. pp68
--> 위안소에 관한 좋았던 기억을 망각하도록 강요하는 '피해자 서사'가 위안부들에 대한 폭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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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는 있었겠지만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던 그녀들이 일본옷을 입고 일본이름을 갖고 일본군을 상대했다는 사실은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인 위안부’를 대체한 존재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조선 여성의 임금은 일본 여성의 뒤를 이었고, 중국 여성은 그 다음이었다(『해남도로 연행된 조선인 성노예에 대한 진상조사』). 정대협은 그런 ‘차이’, 다른 지역 여성들과의 근본적 차이를 배제하고 똑같은 피해자로만 설명한다. 112
--> 조선인 위안부는 다른 나라 위안부들과 달리 똑같은 피해자가 아니라 제국의 협력자인가?
## 무엇보다, 성노동의 가해자는, 여성을 ‘교육’에서 배제시켜 경제적 자립의 기회를 주지 않고 아버지나 오빠가 물건처럼 팔 수도 있었던 시대, 여성의 소유권을 남성이 가졌던 시대의 가부장제적 국가였다(『화해를 위해서』).
그런 의미에서는 처음부터 ‘조선의 미혼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의 타깃이었던 것처럼 말하는 정대협의 설명은 ‘조선인 위안부’ 여성이 많았던 것이 식민지의 빈곤과 인신매매조직의 활성화 등 전체 사회구조의 결과라는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pp112
--> 위안부에 조선인 미혼여성을 끌고 간 것이 일본정부 책임이 아니라 식민지의 가난 때문인가?
##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노예’가 ‘감금해놓고 언제든 군인들이 무상으로 성을 착취했다’는 식의 것인 한 ‘조선인 위안부’는 그런 성노예와는 다른 존재다. 그런 상황에 노출된 이들이 설사 있었다 해도, 그것이 처음부터 ‘위안부’에게 주어진 역할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성노예’란 성적인 혹사 이외의 경험과 기억을 억압하고 은폐하는 말이다. 그들이 총체적인 ‘피해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런 측면에만 주목하고 ‘피해자’의 틀에서 벗어나는 기억을 은폐하는 것은 위안부의 전全인격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위안부들이 자신의 기억의 주인이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의 기억에 의해서만 존재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우리 또한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 주체가 되고 마는 것이다. pp117
--> 위안부의 처지를 '성노예'로 규정하는 것이 위안부에게서 성적인 경험 외의 다른 기억(박교수의 말로는 일본군과의 좋은 기억)을 빼앗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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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위안부들에게 폭행을 가한 주체가 일본군이 아니라 그들을 데려온 ‘주인’들인 경우는 적지 않았는데, 폭행의 주체가 그들이었다고는 말하지 않는 것이다. pp133
--> 직접 폭행을 행사했든 아니든 최종 명령권자가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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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본 것처럼, 일본인•조선인•대만인 ‘위안부’의 경우 ‘노예’적이긴 했어도 ○○○○○○ ○○○ ○○○○ ○○○ ○○ ○○○. 다시 말해 같은 ‘제국 일본’의 여성으로서 군인을 ‘위안’하는 것이 그녀들에게 부여된 공적인 역할이었다. 그들의 성의 제공은 기본적으로는 ○○ ○○○ ○○ ○○○ ○○○ ○○○ ○○○. 물론 그것은, 남성과 국가의 여성 착취를 은폐하는 수사에 불과했지만, ‘일본’ 군인만을 위안부의 가해자로 특수화하는 일은 그런 부분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페미니즘 정신을 바탕에 둔 운동이었음에도 ‘일본’ 비판에 더 무게가 실리면서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인 ‘남성과 국가와 제국’의 문제로 다루는 일을 어렵게 하고 말았다. 다른 나라 역시 이 문제에서 무죄일 수 없음에도 그들의 문제를 보지 못하도록 만든 셈이다. pp137
--> 가해자가 일본 군인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남성과 국가와 제국'이란 말은 책임이 남녀차별/국가주의/가부장제도/제국주의에 있다는 말인데, 그럼 그 시대 사람이 다 책임져야 하나? 책임은 대표자가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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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페미니즘 정신을 바탕에 둔 운동이었음에도 ‘일본’ 비판에 더 무게가 실리면서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인 ‘남성과 국가와 제국’의 문제로 다루는 일을 어렵게 하고 말았다. 다른 나라 역시 이 문제에서 무죄일 수 없음에도 그들의 문제를 보지 못하도록 만든 셈이다.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중국이나 네덜란드 등 전쟁 상대였던 ‘적국의 여성’과 본국•식민지•점령지의 여성들이 처했던 위치는 다르다. 조선인 위안부들이 ‘빨래’ 같은 허드렛일을 해주거나 ‘간호사’로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보살피는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박유하, 2009; 하야시 히로후미, 2010). 한 군의는 “내가 ‘위안부’를 처음으로 본 것은 거류민 여성에게 위생/응급처치 교육을 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조선인 주제에 붕대를 잘 감기나 하겠어?’라든지, ‘너는 천황 폐하를 일본인과 똑같이 섬길 수 있어서 기쁘지?’ 하는 식으로 깔보았습니다”라고 고백한다
(http://www.ne.jp/asahi/tyuukiren/web-site/backnumber/05/yuasa_ianhu.htm). 일본의 지원운동 방식은 이런 상황과 심리가 보여주는 ‘식민지인의 이용과 차별’의 교묘한 구조 역시 보지 못하도록 했다. ‘위안부’가 ‘간호사’를 겸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두고 그저 “‘간호사’로 만들어 당국이 연합국에게 위안부의 존재를 은폐하려”(『교도통신』, 2008. 7. 31.) 한 것으로 이해하거나 “정식 군속으로 임명해서 위안소의 존재도 감추는 동시에 함께 돌아갈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같은 기사)이었다고 해석하는 것 역시, 위안부의 ‘동지’성을 파악하지 못한 결과다. 그녀들은 전시에 이미 간호부로 일하고 있었다. ‘성노예’라는 단어는 ‘조선인 위안부’가 처한 그런 복잡한 상황을 보지 못하게 한다. ‘동지’적 관계를 직시하는 것이 꼭 ‘일본군’을 면책하는 일은 아닌데도 이 부분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것은, 일본의 지원자들이 이런 사실을 충분히 보지 못했거나 한국의 정대협과 마찬가지로 ‘운동’에 불리한 사실로만 판단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pp137-138
--> 정대협이 운동을 위해서 '위안부와 일본군의 동지적 관계'를 은폐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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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위안부 이용이 제도적으로 실시된 이유(제도적으로 실시되었을 뿐 ‘제도’였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군국주의나 파시즘보다도 일본이 일찍부터 ‘유곽’이라는 공창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말하자면 군이 쉽게 ‘이동’하는 ‘위안소’를 발상했던 것은 근세 이후의 ‘유곽’의 전통, 즉 성매매를 ‘공적’으로 허용하는 인식의 영향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위안부’ 제도는 근대 이후의 정치적인 면이 아니라 근세 이후 일본의 문화적 전통과 근대 이후의 여성들의 생계형 ‘이동’에서 그 원인을 찾았어야 했다. 거기에 국민동원이 가능해진 근대 국민국가가 ‘제국’〓세력확장의 욕망을 가지면서 더욱 노골적인 방식으로 ‘공인 이동 유곽’을 발상한 셈이다. 그 시스템에 ‘제국’ 내부의 사람들이 동원되었던 것은 그녀들이 조선인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녀들이 ‘더 가난한 일본’, 즉 제국의 중심을 떠받쳐야 하는 ‘식민지’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국민동원’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국민총동원‘이라는 형태로 전 국민을 전쟁협력자로 만들었던 ‘일본’의 파시즘과 제국주의다. 하지만, ‘위안부’라는 존재 자체는 결코 일본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운동은 ‘위안부’ 문제의 원인을 단순히 근대 이후의 일본 제국주의에서만 찾으려 했다. 그리고 그런 일본 이해가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의 이해와 맞물리면서 ‘일본’만의 특수한 ‘범죄’처럼 생각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pp139-140
--> 위안부는 군국주의나 파시즘이 아니라 성매매와 같은 문화적 전통에서 유래했으므로 일본만의 특수한 범죄가 아니다? 할머니들이 성매매하려고 위안소에 갔나? 박교수는 성노예를 성매매 문제로 바꾸려고 노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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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가가 군대를 위한 성노동을 당연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았던 이상 그것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 ○○○○○ ○○○○ ○○○ ○○○ ○○ ○○○○○○ ○○(일본군의 공식 규율이 강간이나 무상노동, 폭행을 제어하는 입장이었던 이상) 강제연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일본 국가에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 위안부들에게 행해진 폭행이나 강제적인 무상노동에 관한 피해는 1차적으로는 업자와 군인 개인의 문제로 물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개인이 거의 세상을 떠났거나 찾기 어려워진 이상 ‘범죄’로서 책임을 물을 대상은 이미 없다고 해야 한다. 대신, 구조적 강제성을 만든 책임 주체로서, 일본 국가가 그런 개인들의 ‘범죄’에 대한 책임과함께 위안부들의 불행을 만든 구조적인 ‘죄’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는 있다. 범죄에 대한 책임을 의무적인 배상으로 질 수 있다면, 죄에 대해, 의무가 아니라도 책임을 지는 일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이 ‘도의적 책임’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 90년대의 일본의 사죄와 보상이었다. 그러나 90년대의 보상은 그렇게는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pp191
--> 당시 성매매가 불법이 아니었으니 위안부의 책임도 일본정부가 아니라 위안부를 모집한 업자와 군인 개인의 문제라고 주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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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심각한 건 이 20년 동안의 강경한 주장과 한국에 대한 지원이 결과적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섰던 관료들과 ‘선량’한 일본인들까지 자포자기적 무관심과 혐한으로 몰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일본 지원자들도 더 늦기 전에 그동안의 운동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p203
--> 일본 혐한 분위기의 책임이 정대협에게 있다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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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이 저항하는 모습만 표현하는 이상, 일본옷을 입었던 일본이름의 ‘조선인 위안부’의 기억이 등장할 여지는 없다. 그들의 또 다른 생활과 기억, 일본 군인을 간호하고 사랑하고 함께 놀며 웃었던 기억을 가진 ‘위안부’는 그곳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곳에는 군인을 자신과 같은 운명에 떨어진 가엾은 존재로 간주하고 동정했던 위안부도 물론 없다. 소녀상에는 ‘평화비’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러나 용서의 기억을 소거한 눈은 원한에 찬 눈으로 그녀를 보는 이들에게 일본에 대한 ‘적대’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일본보다 조선이 더 밉다’는 위안부들 역시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곳에는 ‘조선인 위안부는 없다’. pp205-206
--> 이건 뭐, 삼류소설도 안 되어서... 소녀상이 할머니들의 용서의 기억을 소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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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소녀상은 ‘평화’를 말한다고 하지만 그 상이 일본의 굴복만을 요구하는 한 저항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소녀상은 언제까지고 평화 아닌 불화만을 만들어낼 것이다. 실제로 2011년 겨울 소녀상이 세워진 이후의 한일관계가 극단적으로 불화로 치달았던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소녀상은 우익뿐 아니라 한국에 호의적이었던 양심적인 일본인까지도 한국에 등을 돌리거나 무관심해지도록 만들었다. 소녀상은 문제 해결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을 뿐이다. pp209
--> 서경식 교수가 말했듯이 위안부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건 우리가 껴안고 가야 할 기억이다. 위안부 할머니 당사자들에게 그것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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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의 피해는 보상되어야 하지만, ‘조선인 위안부’는 한국이 바라는 방식으로 ‘기림’을 받기에는 모순이 없지 않은 존재다.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면, 있는 그대로, 식민지의 모순적인 존재로서, 가난한 부모를 봉양하고 오빠를 위해 희생한 가부장제하의 가난한 누이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와 자국의 남성들이 지키지 못해 타국의 남성들에게 가혹한 환경에서 성을 제공해야 했던 존재들로 기억되어야 한다. 한국의 욕망이 투영된 ‘피해자이자 투사’로서의 ‘민족의 딸’을 보는 일은 우리가 아시아에서 ‘적의 여자’이기도 했던 일을 잊는 일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와의 새로운 관계는 그런 일을 기억하고 마주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pp310-311
--> 위안부 사태의 책임이 일본이 아니라 식민지 구조/가부장제/가난? 위안부가 피해자/투사가 아니라 '적의 여자'? 할머니들이 까무러칠 만하다. 과거의 위안부는 피해자였고 현재는 일본 전쟁범죄를 알리고 비판한다는 점에서 투사가 맞다. 소녀상의 이미지는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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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해결은 필요하지만, 입법해결은 불가능하다. 정말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원한다면 정부는 일본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사죄했고, 일본의 사죄를 받아들인 위안부도 많다. 그러나 그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채, 오랫동안 사죄하지 않는 자와 용서하지 않는 자의 대립만이 큰 목소리가 되어 위안부 문제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들, 좌우의 정치적인 입장을 넘어서 이 문제를 윤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풀려 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pp312
--> 입법해결이 왜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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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만든 타자에 대한 적대를 넘어설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기지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현실의 것으로 꿈꿀 수 있을 것이다. pp314
--> 일본의 폭력에 항의하는 것이 타자에 대한 적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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