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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제시와 셀린느의 대화로만 엮어가는 이 짤막한 영화가 이토록 깊은 울림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영화가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9년만에 돌아온 속편 <비포 선셋>. <비포 선라이즈>에서 이십대 초반이었던 배우들은 <비포 선셋>에서 삼십대 초반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세월을 보내며 같은 변화를 겪었다.
<비포 선라이즈>.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제시와 셀린느. 풋풋한 젊음 만큼이나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 둘의 대화는 밤새도록 이어진다. 비엔나의 화려한 여름밤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제시와 셀린느의 사랑은 무척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둘은 육개월 후에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비포 선셋>. 9년만의 재회. 비행기가 떠나기 전까지, 빠리에서 오후 한때를 함께 보내게 된 제시와 셀린느. 그들의 대화는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던 9년 전과 사뭇 다르다. 낭만적인 비엔나의 밤이 아니라 평범한 빠리의 오후 속을 걷는 그들은 이미 현실과 현실 속의 좌절을 알고 있다.
그들의 이별이 바로 현실이었다. 셀린느는 할머니의 장례식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제시는 셀린느를 잊지 못해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그것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 소설로 인해 둘은 9년 만에 다시 만난다.
작가가 된 제시에게는 아내와 다섯살 난 아들이 있고, 셀린느는 환경운동가로 변신해 있었다. 9년 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끝없이 대화를 하는 제시와 셀린느는 9년 전의 특별한 만남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큰 흔적을 남겼는지를 발견한다. 서로의 마음에 동일한 무게로 새겨진 아픔을 확인하게 된다.
제시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결혼해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고, 셀린느에겐 종군기자인 남자 친구가 있지만 그녀의 영혼을 채워주는 사랑은 아니다. 그들은 현재 자신들의 삶에 무언가 결핍되어 있음을 끊임 없이 인식하고 고통스러워 하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9년 전, 완전에 가까운 소통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영혼을 바라볼 수 있는 만남, 완전한 교감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래서 축복이자 고통이다. 제시와 셀린느는 그 고통을 인식하면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들여다보고, 현재를 통해 과거를 비추어보고, 그리고 그 눈으로 미래를 바라다본다.
주인공들은 9년 전, 빛나는 순간, 어떤 완전함을 경험했고, 그것은 현재에도 살아 꿈틀거린다. 제시와 셀린느는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있지만, 아름다운 꿈을 잊지 못하고 있고 그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가슴에 품고 현실 속에서 그것을 살려내려 애쓴다.
걷고 차 마시고 대화하는 무미건조한 구도의 영화이지만 아기자기한 상황들로 예쁘게 채워진 전편보다 훨씬 절절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앞날이 그저 무한한 가능성으로 충만했던 이십대 초반의 젊음이 아닌, 현실의 아픔과 좌절, 그 모든 어려움과 한계들 속에서도 여전히 꿈을 간직하고 있고 그것을 향한 날개짓을 계속하는 삶의 모습을 제시와 셀린느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시간은 계속해서 나 자신의 일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고, 제시와 셀린느와 더불어 나의 삶과 대화하는 시간, 삶이 만들어낸 온갖 추억들, 기쁨과 슬픔과 아쉬움과 희망, 그 모든 것을 맛본 멋진 시간이었다.
배우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영화의 묘미는 사라지고 말았으리라. <비포 선라이즈>에서 밝고 청순하기만 했던 배우들의 얼굴과 표정에는 이제 세월이 만들어낸 표정의 깊이가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것이 더욱 마음을 찡하게 한다. 에단 호크의 연기도 좋았지만 특히 줄리 델피는 셀린느 그 자체였다. 그들은 링클레이터 감독과 함께 대본을 썼다고 한다. 바로 자신들이 겪은 삶의 이야기이기에 그런 호연을 보여주었지 싶다.
십년 후에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제시와 셀린느는 그때 무슨 말을 우리에게 들려줄까. 불혹의 나이, 그때 나는 또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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