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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전용극장 동성아트홀에서, 주말인데도 나를 포함해 단 세 명이 이 영화를 보았다.
체 게바라의 젊은 날의 여정을 그린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스물셋, 의대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푸세(체 게바라)와, 서른을 앞둔 생화학자 알베르토는 모터싸이클 '포데로사'를 타고 아르헨티나에서 아마존까지 팔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대장정을 시작한다. 책에서만 보아온 자신의 땅 남아메리카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
안데스 산맥을 지나 칠레와 페루의 내륙 곳곳에 이르기까지 깊이 들어갈수록 체는 모든 문제는 땅의 문제임을 깨닫는다.자신의 땅을 잃고 떠도는 인디오와 착취당하는 수많은 민중들의 삶을 직접 겪으며 그의 목마름은 커져간다.
넉달 넘게 계속된 그 여행의 절정은 나환자촌에서 보낸 3주간이었다. 나병을 전공한 체와 알베르토는 그곳에서 더할 나위 없는 헌신과 정열을 바쳤고 그곳에서 그들 모두를 연결해주는 깊은 인간애와 하나의 아메리카를 발견한다.
그들의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순례였다. 그들이 두 발을 딛고 선 아메리카 땅과 그 땅에서 온몸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수많은 삶을 대면하는, 그들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의 순례.
한 달이 넘자 모터싸이클은 완전히 망가졌고, 그들은 걸어서 사막을 통과한다. 광산에서 그의 생애 가장 추운 밤을 보내며 삶이 송두리째 뽑힌 사람들을 보며 분노하는 체. 여비 없이 진행된 그들의 대륙 횡단은 그렇게 갖은 고생으로 채워지지만 사람과 땅과 세상의 참모습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힘은 바로 그들의 '길에 대한 애정'과 '젊음'이었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체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굉장히 진실한 사람이었다. 체는 1953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지만 의사의 길을 택하지는 않았는데 1952년의 이 여행이 그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여행의 끝에서 체는 자신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변했다고 자신은 결코 과거의 자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아쉬웠던 점은, 체 게바라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현장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큐에서 볼 수 있는, 살아있는 깊은 표정이 부족했다.
그러나 한 순수한 젊은이, 그의 생을 바꿔놓은 특별한 여행, 그 길을 따라가는 즐거움과 감동이 있었다. 진짜 여행은 순례이고, 그것은 이 땅위에 선 우리 존재, 그 가능성의 끝을 확인하는 것이다. 남아메리카가 체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체가 잉카의 옛 도시 마추피추에서 한 문명이 파괴된 모습을 보며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본 적도 없으면서 그리워하는 까닭이 뭘까요?'
그리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는 아직 생존해 있는 알베르토의 얼굴이 스친다. 그는 친구의 뒤를 따라 쿠바로 가서 의대를 세웠고, 지금도 거기서 살고 있다.
한 발의 총성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혁명가 체. 그리고 말없이 서서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한없는 세월의 깊이를 지닌, 늙은 알베르토의 눈빛... 그의 눈빛 속에, 그리고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체를 느낄 수 있었다.
- 감독: 월터 살레스 / 주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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