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단 호크.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특별히 영화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우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지만, 에단 호크는 내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 있는 배우다.
고등학교 때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만난 청순한 소년, ‘비포 선라이즈’에서 나를 감동시켰던 젊은 날의 맑은 방황과 순수한 사랑, ‘가타카’에서 본 진지함과 치열함, ‘비포 선셋’에서 본, 그의 이마에 패이기 시작한 주름과 고뇌가 깃든 깊은 눈빛. 그의 눈빛이 늘 마음에 들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까닭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에단 호크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이토록 뜨거운 순간>은 그가 21살 때 겪은 사랑 이야기다.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뉴욕에 온 주인공과 비슷비슷한 이유로 뉴욕을 찾은 젊은이들의 일상적 고민과 사랑을 다루었다. 좌충우돌하는 생활, 서툰 사랑, 그럼에도 힘이 넘쳤던 21살의 청춘남녀를 만날 수 있다.
좋아하는 배우가 쓴 소설이라서 더 관심이 갔던 게 사실이지만, 이 소설은 소설 그 자체로도 매력이 있다. 독창적인 서사적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묘사가 탁월하다거나 색다른 인간형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 소설은 어떤 강렬한 느낌, ‘이토록 뜨거운 순간’의 느낌을 우리에게 남긴다. 소설에 나오는 일상적 대화들은 딱 21살의 것, 우리가 그 시절 지녔을 법한 그런 분위기를 실감나게 전해준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들을 스치고 지나갔던 ‘이토록 뜨거운 순간’이 살며시 가슴에 차오른다. 소설이 그리고 있는 것과 꼭같은 시절, 그런 종류의 감성과 뜨거움을 내가 지니고 있었던 시절은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20-22살 사이였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한 것을 빼면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던 시기, 모든 것에 서툴고 그 때문에 방황했던 시기. 하루 종일 이야기하고도 모자랄 만큼 고민이 넘쳤던 시기. 그럼에도 사회의 틀에 훼손되지 않은 힘과 젊음이 있었던 시기. 그 때는 힘들기만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시절이 이토록 아름답게 다가오다니...
그 사라진 봄날을 글로 붙잡아둔, 그 추억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든 에단 호크가 부럽다. 소설 제목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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