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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길 위에서 길을 묻다

by 릴라~ 2009. 6. 28.
예전에 서프 논객(김동렬님이었던가) 글에서 읽은 내용이다.
국민을 널리 모으려고 '참여 정부'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참여하려는 국민이 없다고, '참여 정부'를 자신의 정부로 생각하는 국민이 없고
'참여 정부'의 성공을 우리 모두의 성공으로 여기는 국민이 없다는... 대충 그런 내용이었고...
그래서 '참여 정부'라는 이름이 참 뼈아프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뒤늦게 철학자 김상봉님의 추도사를 읽었다.
<도덕교육의 파시즘>, <서로주체성의 이념>, <학벌사회> 등의 책을 통해 만난 적이 있고
악에 저항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한국 도덕교육의 문제점을 고발한
'도덕 교육의 파시즘'은 특히 마음에 깊게 남은 책이다.
추도사에 담긴 절절한 자책이 심금을 울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성공과 한계는 한 시대의 성공과 한계이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성공과 한계인데, 왜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한 개인에게 모든 짐을 지웠을까 라는...
(사실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등이 터졌을 때 내가 사안을 잘 알지 못하긴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만 줄곧 비난하는 자칭 진보 세력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그 분이 복잡한 국제 관계를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김상봉 선생은 노무현 대통령이 시행한 정책들에 반대했지만
'그가 곧 한 시대'였음을 꿰뚫어보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누구도 그처럼 치열하게 자기를 시대 속에 던져 시대와 하나 된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라고.

시대와 호흡하고 시대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고유성을 실현하는 삶.
푸코, 데리다, 들뢰즈, 랑시에르.... 그 모두 오늘날 우리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분들은 그들의 시대에 대해 그들 나름의 최선을 다해 답했을 뿐.
철학은 우리 현실의 물음에 답해야 하고 그 현실을 비추는 등대가 되어야 할 것인데,
이 분들한테 기대어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올 것 같지 않다.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와 문제의식이 다르다.
결론은, 나의 논문이 길을 잃고 있다는 것. 석사는 들뢰즈로 대충 통과했다마는...
대학원 공부가 본업이 아닌지라 곁다리 긁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외국 학자들의 이론을 공부하는 것에서 점점 흥미를 잃고 있다.
물론 들뢰즈를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 시대의 윤리를 묻는 이정우 선생 같은 분도 계시지만..
난해한 개념들의 잔치, 어떻게든 들뢰즈를 써먹겠다는 논자들,
들뢰즈를 어설프게 적용한 조악한 글들은 내게, 이건 길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들뢰즈가 원래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의 생성존재론은 이 세계를 마주침과 공명이 조성되는
끝없는 창조의 세계로 보여주었고,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서 수입된 온갖 이론과 학설들이 오늘날 우리 교육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교육을 터무니없이 어려운 일로 만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공부를 시작할 때 나의 '화두'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포기하든지, 아니면 방향을 바꾸든지 해야 할 것 같다. 

지난 금요일 노무현 대통령 5재 때 지관 스님께서 이런 법문을 주셨다고 한다.
"오늘 영가는 죽음의 세계에 오래있지 말고 다시 이 세계에 와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아래는 김상봉 선생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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