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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사회, 과학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 이득재

by 릴라~ 2009. 8. 6.

논의가 시원스러워서 금방 읽혔다. 저자가 비판하는 것은 가족이기주의가 아니라 가족주의 그 자체다. 그가 보기에 대한민국에는 '사회'가 없다. 시민단체는 있지만 시민이 없고 시민사회가 없다. 존재하는 건 가족과 국가뿐이다. 가(家)가 국(國)이 된 사회, 그래서 가국(家國)이다.

공공의 영역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 개인으로서의 혹은 노동자로서의 주체성이 없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은 엄마 아니면 아빠 아니면 학생/아이이다. 가족성원으로서의 존재감만이 우글거리는 사회이다. 그래서 노조가 시위할 때의 구호도 '아이가 울고 있다'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한 개인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모든 것을 가족이 담당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감당해야 할 짐이 지나치게 무겁다. 그래서 가족은 신성한 것, 가치의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한국 사람들이 원래 정에 약한 것이 아니라 이런 사회적 구조가 사람들의 심성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가족과 국가 사이에 사회/공공의 영역이 실종된 사회. 저자는 이러한 사회가 작동하는 원리를 들뢰즈/가타리의 개념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논의가 명쾌하다. 공공재가 해결해야 할 부분을 확대하지 않고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문제를 덮는 한, 가족은 국가권력의 희생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국 사회의 결말은 무엇일까. 정신병적 국가, 신경증적 개인 그리고 '일상적 파시즘'이다. 지금 이명박 치하 우리 사회가 딱 그 모습이다.


이 책에서 빠진 내용이 있다면, 그 공공 영역의 부재 사이로 파고든 것이 종교 특히 개신교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에 교회에 간다. 그곳이 하나의 사회이고 그곳에서 사회적 자기실현의 욕망을 보상받는다. 어떻게보면 뒤틀린 욕망이다. 인간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를 구축해가는 데서 건강한 실존의 기쁨과 의미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사회 참여가 밑바탕에서부터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한국이 선진민주국가가 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동생 말마따나 앞으로 노무현이 100명이 나오더라도, 가국을 넘어서는 시민사회의 구축, 합리적 공동체의 구축 없이는,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는 어렵다.

교육도 필요하고 각 분야에서 많은 실천이 필요한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민주적 학급 공동체를 꾸려가는 것일 거다. 요즘 거기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합리적 세대가 좀 나와줘야 할 텐데, 잘 모르겠다. 어쨌든 희망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있을 터. 50대 이상에게는 기대할 것 아무 것도 없고. 40대도 좀 그럴 것 같고, 내가 속한 30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김대중/노무현 때문에 우리 사회가 정말 많이 나아졌다고 내가 착각하고 있었다. 요즘 실감한다. 많은 국민들이 대한민국 헌법 정신의 수준에 못 미치는 사회를 살고 있음을. 어느 블로거님 지적대로, 철학적으로는 모든 상식에 반기를 들지만, 정치적으로는 철저하게 상식과 원칙의 편에 서야 할 것이다. 상식과 원칙조차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은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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