똔레삽 호수를 못 보고 시엠립을 떠나는 것이 다소 아쉬웠다. 허나 어디 못 본 게 하나 둘인가. 호텔서 만난 일본 친구들은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오는 성의 모델이 된 사원이 있다고 꼭 보라고 했는데 그것도 스킵. 최소한 일주일은 머물러야 웬만큼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프놈펜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고 또 다음 여정이 있는지라 아쉽지만 짐을 챙겼다.
친구들은 방학 때면 어디 가고 없는 내가 무척 많은 곳을 다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 번에 한 나라 이상 가는 일이 드물고 그 한 나라도 한 곳에 일주일이나 그 이상씩 머무는 수가 많으므로. 대개 계획은 설렁설렁 짠다. 현지에 도착하면 마음이 바뀔 것을 아니까. 어떨 땐 비행기에 오르고나서야 가이드북을 펼쳐본 적도 있다. 문화 유적지라면 공부를 좀 하고 가는 게 낫다. 앙코르와트 사원들을 보면서 한두 권 책을 읽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학기말에 넘 바빴던 데다가 방학 하자마자 2주간의 연수, 이후 바로 떠나온 여행이라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시엠립에서 프놈펜까지는 버스로 6시간 정도. 5불, 7불, 11불짜리 버스가 있었다. 처음엔 11불을 선택했다가 '에이, 후진국 버스가 뭐 그리 차이가 있을까' 하며 제일 싼 걸로 바꾸었는데 타자마자 후회했다. 좌석표를 철저히 지키는 게 신기했는데, 한 자리도 남김없이 꽉 찼다. 대부분 현지인이었는데 내 옆 자리에 앉은 이는 독일서 온 스테판이었다.
나는 장시간 버스이동을 조금 걱정하고 있었는데 스테판은 버스를 타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프놈펜에서 시엠립으로 올 때는 배를 탔는데 큰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배에 탄 사람은 대부분 관광객이었고 자기도 뱃머리에서 경치를 보고 있었는데 물고기를 잡는 작은 배와 정면으로 충돌했단다. 큰 배와 작은 배가 만나면 큰 배는 갑자기 속도를 줄일 수 없으므로 작은 배가 먼저 피해가는데 미처 자기들을 못 본 모양이라고 했다. 배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 소년은 충돌할 때 몸이 솟구치더니 영영 물속으로 가라앉았다고 했다. 온 마을의 배들이 다 몰려와서 자기들이 탄 배를 에워쌌고(도망가지 못하도록)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소년은 끝내 찾지 못했다.
해양 경찰이 왔고 큰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경찰서에 가서 10시간이 넘게 기다리면서 진술을 한 다음 풀려났다고 한다. 그게 불과 며칠 전의 일이라고. 소년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던 터라 똔레삽 호수를 보면 가슴이 철렁하다고 했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토해내는 걸 보니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동아시아 최대의 호수 똔레삽은 시엠립에서 프놈펜에까지 이어진다. 오른 편 차창으로 똔레삽과 모래사장을 보면서 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좋다고 생각했는데(울 나라는 4대강 공사가 한창이라) 그는 그 슬픈 사고 때문에 본의아니게 관찰자의 시선을 넘어 그 마을 사람들의 삶 한복판으로 쑤욱 들어가게 된 것이다.
버스는 완전 낡아서 털털거려 힘들었지만 다행히 휴게소에 한번씩 들러주었다. 내 발밑에는 친구에게 줄 작은 박스가 있었다. 배낭은 버스 아래 짐칸에 넣었지만 박스는 혹시 잃어버까봐 들고 탄 거였다. 휴게소에 잠시 내리면서 짐을 들고 내릴까 그냥 둘까 망설이니 스테판이 걱정 말란다. 여기는 도둑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안전한 나라라고. 사람들이 신심이 매우 깊다고. 휴가를 보내러 캄보디아에 몇 번 왔는데 한 번도 뭘 잃어버린 적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이후로도 나는 그 어떤 안전상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없다. 캄보디아는 그 어떤 곳보다 마음이 편안한 곳이었다. 삐끼들조차 그러했다. 한두 번 말을 걸어올 때 내가 고개를 저으면 금방 포기하고 따라붙지 않았다. 인도에 비교하면 천국 수준이었다. 나중에 프놈펜에서 만난 친구는 너무 게으른 것 아니냐고 하기도 했지만.^^
스테판은 여러 면에서 나와 생각이 조금씩 달랐는데, 세계화에 대해서도 밝은 면을 많이 보고 있었다. 세계화 덕분에 유럽은 더이상 서로 전쟁을 안 하게 되었고 이 점은 자기들에게 무척 중요하다는 거다. 같은 맥락에서 사이버화도 좋게 본다고 했다. 문명의 주도권을 쥔 사람들의 입장이었다. 정답은 없을 것이다. 세계화의 의미를 어디까지 포괄하여 쓸 지도 문제지만 그 파장 역시 분야마다 나라마다 다를 것이므로. 그 흐름을 긍정적 변화로 만드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가 이 나라에서 부러워하는 건 이곳 사람들의 충만한 하루였다. 그는 캄보디아 작은 마을들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하루를 꽉 채워서 사는 것을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호수에 가서 종일 물고기를 잡고 그 잡은 물고기를 먹고 하루를 마감하는 삶. 자신은 직장 다니며 보험에 저축에 온갖 것들로 머리 싸매지만 하루하루가 그리 행복하진 않다고 했다.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이 나라의 가난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 가난과 정치의 후진성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이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동남아 어딜가나 숱하게 마주치는 유럽 여행자들, 그들은 여기가 그렇게 좋단다. 너무너무 좋단다. 어떨 때는 단체로 약 먹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감정이입을 잘하는 한국 여행자들에 비해 서양 여행자들이 이곳 현실에 무관심하고 자기 여행만 즐기는 것 같이 보일 때가 많았다. 옛식민지를 활보하는 우월감이 엿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실적 조건을 떠나서 이곳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같을 때도 있었다. 진실은 둘 다일 것이다. 전자의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긴 했지만. 그리고 스테판의 경우처럼 선진국이 정치/경제적 자유는 보장되었으나 삶의 엑기스라 할 어떤 것이 결여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무엇을 볼까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린 것이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책에서 어떤 페이지를 읽을까도 우리에게 달린 것처럼. 한 페이지는 사랑의 기록이고 또 한 페이지는 슬픔과 고통의 기록이겠지만 가능한 한 나는 사랑의 페이지를 많이 읽고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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