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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야기/동남아시아

진정 평범하지 않은 것 / 프놈펜 수녀님들과 함께

by 릴라~ 2011. 9. 4.

 

 

 

 

털털거리던 버스는 오후 2시 좀 넘어 프놈펜에 도착했다. 친구는 오르싸이 시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 한국에 들렀을 때 잠깐 만났으니 일 년 만이다. 이 친구가 캄보디아에서 살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친구다.

툭툭은 프놈펜 교외 주택가에 멈춰섰다. 친구를 포함해 세 분 수녀님이 빌려서 살고 있는 집. 마당은 없었고 1층에 로비와 부엌, 2층에 자그마한 방 4개가 있었다. 며칠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남는 방이 없어서 수녀님들이 모여 기도하는 방에 침구를 마련해놓았다. 중앙에 작은 고상이 모셔져 있다. 예수님과 같은 방을 쓰자니 사이비 신자인 나로선 무지 황송하다. 핑크빛 모기장을 가져다 놓는 것으로 자리 준비는 끝났다.

손님이 왔다고 삼겹살에 김치, 저녁 식탁이 풍성했다. 친구와 한국 수녀님들과 함께 하는 식사이니 어찌 반갑지 않을까. 집에 온 것 같았다. 두 분 수녀님 중 한 분은 친구보다 몇 살 위였고 다른 한 분은 머리가 하얗게 센 노 수녀님이었다. 그 연세에 이국 생활이 쉽지 않을 텐데 보통 열정이 아니다 싶었다.

노 수녀님이 그러셨다. 처음엔 가을이 되어도 더운 게 적응이 안 되더란다. 온 몸이 쌀쌀한 공기를 원하더라고 했다. 지금쯤 한국엔 잎이 지겠지, 겨울이겠지, 하면서. 3년째 되니 가을 날씨가 그립지 않더라고 했다. 드디어 몸이 적응을 한 것 같다고. 사시사철 더운 곳에 나라면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한국의 가을이 사무치게 그리울 것 같았다.

프놈펜에서 머문 사흘 동안 낮 시간을 제외하곤 이 분들과 함께 보냈다. 캄보디아는 정치/경제적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열악한 곳이라 거의 모든 NGO들(약 180여개)이 수도 프놈펜에 들어와 있다고 한다. 친구가 속한 수녀회에서도 장기적으로 교육센터를 짓기 위해 세 분이 파견되어 현지 조사 및 적응 중이었다.

이분들의 생활은 소박하기 그지 없었다. 침대도 쓰지 않았고, 이곳 주택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더운 물도 나오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인 개인 소유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자전거 세 대가 1층 현관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도 노 수녀님은 이거 너무 부유한 거 아니냐고 자주 말씀하신단다. 내 친구는 아무래도 세대 차이인 것 같다며 빙긋 웃는다.

식사 준비를 비롯한 모든 살림살이를 세 분이 공평하게 나누어 하고 있었다. 사회에선 늘 연장자를 배려하는 문화 속에 있었던지라 그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친구 말을 들으니 수도회 문화의 자연스러운 부분인 것 같았지만, 노 수녀님이 차려주시는 밥을 젊은 내가 앉아서 받아 먹자니 거 참 죄송스러웠다.

한국에선 소박하게 산다는 게 불가능할 것도 같다. '소박함'의 기준 자체가 이곳과는 많이 다르다. 수녀님들이 볼일을 보기 위해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뒷모습을 보며 그 생각을 했다. 비포장 골목길을 너무 행복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잠시 후 자전거는 사라지고 연푸른 하늘빛이 그 자리를 채웠다.

사흘 동안 이 분들은 자신이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열어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이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생활 리듬이 달라져 많이 불편할 텐데도 삶의 자리를 가감없이 공유하는 것. 사소한 일에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하고, 그분들의 일상의 모습은 평범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평범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분들이 함께 사는 삶에 가치를 두는 모습이었다. 30대, 40대, 60대, 나이도 다르고 성격, 문화, 환경, 모든 게 저마다 다른 분들이 그 다름에도 불구하고, 다름에서 오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만 달라도 편을 가르고, 그 다름이 헤어짐의 이유가 되는데, 그렇게 같이 살아가는 삶에 가치를 두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부족한 대로 마음을 모아 함께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 그 속에 우리를 이끄는 신의 뜻이 있다는 믿음,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 내 마음에 남은 건 그런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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