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공고에 근무하는 동안 모나미 볼펜을 많이 샀다. 모나미 볼펜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친숙한, 천 원에 한 세트를 주는 값싼 볼펜이다. 수업을 하려면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책과 공책, 필기구는 가져와야 하는데 그것이 아무리 말해도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모나미 검정색 볼펜을 한아름 사 두고 수업 시간에 펜이 없는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가 거두기를 반복했다.
나눠준 개수 만큼 볼펜이 다 걷히지는 않아서 나는 스무 자루쯤 분실하면 그만큼 다시 사기를 반복했다. 볼펜 개수를 일일이 헤아리면서 아이들과 신경전을 벌이느니 그냥 사는 게 나았다. 7개 반을 맡았는데 그 많은 반을 일일이 필통 검사하고 잔소리를 하며 수업을 시작하는 것은 힘에 부쳤다. 우리 반 한 반이라도 전원 필통을 소지하게 해보려고 했는데, 1학기에는 어느 정도 되다가 2학기가 들어서는 손을 놓고 말았다. 그래서 펜이 없는 녀석은 그냥 볼펜을 나눠주었다.
그래도 좋았던 점은 2문단나 쓰기를 계속 진행하니 3분의 2 이상의 학생들이 문단 구분해서 글을 쓰는 방법은 익혔다는 점이다. 한 반의 일곱 여덟 정도는 꽤 읽을 만한 글을 써냈다. 매시간 읽고 쓰기를 하는 게 전쟁이지만 1학년은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3학년은 실습을 나가는 2학기가 되면서 공부와 완전히 담을 쌓았다. 실습에, 원서에, 면접에, 분위기 자체가 산만한 시기이긴 했지만, 핸드폰을 넣으라 해도 말을 듣지 않아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날이 많았다.
그 날은 전기과 3학년 1반이 두 시간 연강이 든 날이었다. 첫째 시간, 교사가 들어와도 별 반응이 없는 아이들에게 볼펜을 나누어주다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좀 제대로 하라고 마구 화를 내다가 그래봤자 나만 손해임을 문득 자각하고는 두 번째 시간엔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얘들아, 잘 들어봐. 내가 지금 너희한테 화를 내고자 하는 게 아니고, 내가 그냥 답답해서 그래. 내가 이 학교에 올해 처음 왔잖니. 이제 가을이 되니까 한계를 느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잘 모르겠어. 너희는 3년을 여기서 보냈으니까 나한테 조언을 좀 해봐."
수업 시간에 꽤 열심히 참여하는 철호가 말했다.
"선생님, 하는 애들만 데리고 가세요. 열심히 하는 애들은 하잖아요. 절대 다는 못 데리고 가요."
그러자 옆의 놈이 말한다.
"그러면 반 이상 포기해야 하잖아."
내가 말했다.
"내 기준은 최소한 80% 이상은 해야 해."
철호가 말했다.
"선생님, 여기선 그건 불가능해요. 원래 학생이 교사한테 맞추는 게 정상이잖아요. 근데 여기에서는 교사가 학생한테 맞춰야 해요. 다른 선생님들도 다 포기하고 애들한테 맞춰요."
"그래, 학생한테 맞추는 게 옳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는데, 문제는 그게 과연 바른 건지 내가 확신이 안 서."
"학생이 교사한테 맞추는 게 맞는 건데요, 여기서는 그게 안 돼요. 80%가 하면 더 좋죠. 그게 안 되니까 하는 애들만 데리고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희도 다같이 공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는 거네?"
"당연하죠. 여기 애들이 중학교 때 사고 치고 그러면서 공부를 전혀 안 한게 습관이 되어서 스스로는 공부가 안 돼요. 하지만 하고는 싶어 해요. 하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줘서 못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이렇게 내버려두면 안 되는 거네?"
"그렇죠. 근데 패는 것 말고는 하게 할 방법이 없어요. 선생님도 때리세요."
"그건 내가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일단은 내가 체벌에 반대하고. 앞으로 학교가 나아가야 할 길과는 거리가 머니까. 그리고 둘째는 내가 때리다가는 전교에 한둘은 반항해서 같이 머리 쥐어뜯고 싸우는 일이 벌어질 거야. 난 학생이랑 싸우다가 맞아서 신문에 실리고 싶지는 않거든."
"그럼 방법이 없어요. 선생님은 여자라서 더 말을 안 들을 거구요."
"하는 애들만 데리고 갈 경우, 다른 애들이 떠들어서 수업을 방해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애들은 학생부 보내세요. 혹시 학부모가 와서 따지면, 얘가 이러이러해서 내 지도를 따르지 않았다,고 하면 선생님이 유리하게 되어 있어요."
"아, 참, 방법이 없네. 솔직히 말해서 나도 답이 없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이해되니?"
"선생님, 권은진 선생님한테 물어보세요. 일 년 지나니까 완전히 적응하시더라구요."
"너희 생각엔 내가 학교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니? 근데 나는 적응하는 게 과연 옳은지도 의심스러워. 나는 보는 것마다 화가 나는데 여기 오래 계신 분들은 아무렇지도 않더라고. 그래서 힘들어."
"선생님은 일 년 후에도 적응 못할 것 같기도 해요."
"왜?"
"선생님은 애들 딱 앉혀놓고 정석대로 하는 스타일이잖아요. 여기선 힘들 걸요. 다른 학교 가야 해요. 이수영 선생님 아세요?"
"응. 미국 연수 갔다가 올해 복직하신 쌤?"
"1학년 때 우리 담임쌤이었거든요. 그때 희석이랑 저랑 사고치는 애들 하도 많아서 너무 힘들어 미국으로 도망가셨어요.희석이 인상 그때도 무지 더러웠거든요"
희석이는 덩치도 큰데다 얼굴이 완전 조폭 같이 생겼다. 인상도 무지 험악. -.- 1학기 때 수업 시간에 핸드폰 하는 걸 제재했다가 대판 싸움이 붙을 뻔 했다. 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내가 놀라서 쳐다보는데 마침종이 쳤다. 그때 얘 눈빛이 활활 타오르던 게 잊혀지지 않는다. 마음에 쌓인 무언가가 폭발한, 정말 앞에 있는 사람 찔러 죽일 기세인 눈빛. 그렇게 흥분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간 쌓인 것이 엉뚱한 곳에 투사되어 드러난 것. 얘는 학생부에 심심하면 끌려가던 애라 가봤자 태도가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아서 내버려두었다. 물론 이후론 무서워서 건드리지 않았다.
그후로 사소한 말다툼이 두어 번 있긴 했는데(얘가 괜히 말꼬리 잡고 시비를 건다) 첫번의 충격 이후 나도 내공이 생겨서 가볍게 받아친다. 아주 부드럽게 "그렇게 말해주니 너무 고마워." 이런 식으로.
"선생님, 희석이 못 이기시면 포기해야 해요. 걔를 이길 수 있어야 선생님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수 있어요. 권은진 선생님은 이기시거든요."
"그래. 사실 희석이 처음 봤을 때 무섭더라. 근데 이제는 하나도 안 무서우니 나도 많이 발전한 거네? 김희석, 나 너 싫어하지 않아. 말이란 게 흥분하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게 되는 거니까 그 말을 마음에 담아두진 않거든. 그러니 자꾸 트집 잡지 마라. 알겠니?"
희석이가 말한다.
"선생님, 왜 저만 갖고 그래요. 알고보면 철호도 골때리는 놈이예요."
"뭐, 철호? 철호는 왕모범생이잖아. 수업도 열심히 듣고."
철호가 말한다.
"선생님, 저는 중학교 때 사고 엄청 쳤어요. 친구랑 악수하면서 손 비틀었다가 성장판 어찌 됐다 해서 천만원 물어주고, 담임 선생님이 청소 깨끗이 하라 해서 깨끗이 했는데 어느 넘이 거기다가 휴지 버려서 치우라 했는데 걔가 무시하길래 한 대 쳤다가 이빨 세 개 나가서 또 천만원 물어줬어요."
"아니, 그렇게 정통으로 때리면 어떡해?"
"제가 뭐 알았나요. 우연히 그렇게 맞은 거지. 아버지가 괜찮다, 기죽지 마라 해놓고는 술마시고 들어와서 칼로 저 찔러 죽이려고 하더라구요."
"그래, 이천만원이 적은 돈이 아니지. 어떻게 그 돈을 장만했어?"
"집에 땅이 있었는데 그거 팔았어요."
"그래. 그 돈만 있었어도 너 그렇게 알바 안 해도 되잖아."
1학기 때 철호가 알바에 대해 쓴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게요. 저 중 2때부터 지금까지 안해 본 알바가 없어요. 노가다에 공장에 고깃집 불판까지. 그래서 얼굴이 이렇게 삭았잖아요."
얘가 나이가 좀 들어보이긴 한다.
"그래. 부모님이 겉으로 괜찮다고 하면서도 속에 화가 쌓여서 그러셨을 거야."
"아, 그때 제가 아버지한테 싫은 소리 했거든요. 술 좀 그만 처먹고 들어오라고. 그래서 화를 내신 거예요."
"그랬구나."
"맨날 술마시고 정신 잃고 들어오는 게 좋은 거 아니잖아요."
"그렇지. 그동안 알바하느라 고생 많았구나."
"말도 마세요."
수업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의 무기력한 모습과 타인에 대한 이유 없는 적대감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그 모습을 날마다 보는 것이 힘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에 대한 연민은 우울과 좌절로 바뀌어갔고 그러한 감정이 내 마음을 점점 점령해갔다. 다른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는 좋은 일과 힘든 일이 교차해서 교사가 마음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부정적인 감정만이 파도처럼 연속적으로 밀려오니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자주 우울해했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당시의 경험으로부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놓쳤음을 알게 되었다. 어른인 나도 부정적인 경험이 반복되니 어쩔 줄 몰라하는데, 나보다 훨씬 어린 그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부정적인 경험을 얼마나 반복해서 겪어왔을까 하는 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말로는 아이들이 처한 환경을 생각하면 그 아이들의 태도가 이해된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저 머리로 안 것에 불과했다. 아이들의 모든 행동방식이 자기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해온 결과라는 것을 내가 정말 이해했다면, 그 시간을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으리라. 동정이나 연민보다는 진실한 이해가 더 필요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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