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정황을 살펴보면 그 모든 것의 출발점에 전쟁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전쟁은 역사적 사건으로 남은 주요한 격변의 시기, 이를테면 독일 쪽에서는 괴테가, 혁명군 쪽에서는 저의 선조인 프랑수아가 상세히 기술한 프랑스의 발머 전투와 같은 전쟁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 제게 전쟁이란 무엇보다 일반 시민, 특히 어린아이들이 가장 먼저 몸으로 겪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역사적 순간으로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배고팠고, 두려웠고, 추웠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 르클레지오
그후 저는 그 나라를 떠났고, 다시는 엘비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향수보다도 더한 것, 관습과 타협에 의해 닮아빠짐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세상을 변모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남았습니다. 작가를 뛰어넘고 이따금 작가에게 활기를 주며, 작가를 변화시키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주는 그 무엇. 새롭고도 동시에 무척 오래되었으며, 바람처럼 만질 수도 없고 구름처럼 비물질적이며, 바다처럼 무한한 그 무엇. 이를테면 잘랄 아드딘 루미의 시나 에마누엘 스베덴보리의 환상적 건축에서 울려나오는 그 무엇. 룸니 인디언 부족의 족장 스텔스가 19세기 중반 미국 대통령이 땅을 기증하도록 하기 위해 행한 "어쩌면 우리들은 형제이며..." 로 시작하는 연설처럼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글에서 느끼게 되는 전율. 단순하면서도 진실한, 오직 언어에만 존재하는 그 무엇. 하나의 마력, 때로는 하나의 꾀, 불쾌한 춤 또는 침묵의 긴긴 주문. 희롱의 언어, 감탄사, 저주, 그리고 바로 그 뒤를 잇는 파라다이스의 언어. - 르클레지오
문맹 퇴치와 기아와의 싸움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밀접하게 상호의존적입니다. 어느 하나를 빼놓고 하나만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 둘 모두가 오늘날 우리의 행동을 요구하고 강요합니다. 이제 막 시작된 새천년에, 우리가 함께 사는 이 지구상에, 성과 언어와 종교가 무엇이든, 어떠한 아이도 향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굶주림과 무지에 내던져지지 않기를. 그 아이는 자기 안에 인류의 미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썼듯, 그 아이에게 절대적인 힘을 주기를. - 르클레지오
이 세계, 즉 삶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에서 저의 위치에 대해 제가 품고 있었던 근본적인 명제는 제가 '중심부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의 중심부에는 우리의 삶보다 더 풍부하고 매력적인 삶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스탄불의 모든 사람들, 터키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이 중심부 바깥에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이 생각을 오늘날 세계의 대다수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제가 어렸을 때 그리고 청년 시절에 느꼈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제 제게 있어 세계의 중심부는 이스탄불입니다. 이건 단지 제가 거의 평생을 이곳에서 보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건 삼십삼 년 동안 모든 거리들, 다리들, 사람들, 개들, 집들, 사원들, 분수들, 이상한 주인공들, 상점들, 지인들, 어두운 지점들, 밤과 낮들을 저 자신과 모두 동일시하며 제 책에서 서술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점 이후에는, 제가 상상했던 이 세계도 제 손에서 벗어나게 되고, 이 세계는 제 머릿속에 존재하는 도시들보다 더 사실적이 됩니다. 그럴 때면 그 모든 사람들, 거리들, 물건들, 그리고 건물들은 마치 모두 함께 자기들끼리 말을 하고, 마치 제가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관계를 맺고, 마치 저의 상상 속 또는 저의 책 속에서 나와 자기들끼리 스스로 살기 사작하는 것 같습니다. -오르한 파묵
작가란, 그 직업이 그런 것이지만, 과거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족속입니다. 그들은 너무 빨리 아문 상처들을 열어젖히고, 입구를 봉해놓은 지하실에서 시체를 발굴해내고, 금지된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며, 금단의 음식을 먹어치웁니다. ... 그들의 가장 나쁜 잘못은 예나 지금이나 역사적 과정에서 승리한 자들과 한통속이 되기를 싫어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패배자들이 서 있던 변두리를 즐겨 서성거리면서, 그들이 몹시 이야기하고 싶어했으나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내막 캐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패배자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은 승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입니다. - 귄터 그라스
이 주제는 아직도 미해결 상태로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축적된 부에 대해 가난은 상승한 증가율로써 대답합니다. 부유한 북쪽과 서쪽은 아직도 안보를 위해 자신은 철통같이 에워싸고 가난한 남쪽에 대항해 요새를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피난민 행렬은 그들에게 닿을 것이며, 굶주린 자들이 밀고 들어오는 데에는 어떤 빗장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미래에는 이 모든 것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계속 소설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더이상 글을 쓸 수 없거나 출판이 되지 않는다 해도, 또는 그런 일이 금지된다 해도, 그리고 살아남는 수단으로서 책을 더이상 구할 수 없는 세상이 온다 해도, 옛이야기들을 새로이 꾸며 우리 귀에 입을 대고 숨결을 전하는 이야기꾼들은 이 세상에 존재할 것입니다. 큰 소리로,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헐뜯으면서, 시간을 지연시키면서, 가끔은 웃음에 가깝게, 가끔은 울음에 가깝게 이야기해주는 사람들 말입니다. - 귄터 그라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생활하시던 어느 날 밤, 외할머니는 초가집 대문 앞에 앉아 머리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별들을 쳐다보며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워, 죽기에는 너무 아쉬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아쉬움을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마치 평생 쉬지도 못한 채 힘들고 고된 노동을 계속한 당신이 인생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최고이자 마지막 이별의 은총, 감춰져 있다 드러난 아름다움의 위로를 받는 듯이 말입니다. 외할머니는 문간에 앉아 계셨는데, 저는 그런 집은 더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집에는 마치 자식인 양 새끼 돼지들과 같이 주무시던 분들이 살았으며, 그저 세상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삶과의 이별을 아쉬워한 분이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이 제로니무 할아버지였습니다. 돼지를 치는 사람이면서 이야기꾼이었던 외할아버지는 어느 날 죽음이 당신을 찾아올 것을 예감하고, 마당에 있는 나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러 가셨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그 나무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고는 한 그루 한 그루를 끌어안으며 우셨습니다.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 견습생은 "우리는 눈이 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앉아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견습생은 그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삶이 비참해지면 인간은 이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권력을 쥔 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매일매일 무시한다는 사실과 또 인류 보편의 거짓말이 다수의 진실을 대신하며, 이웃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리면 자신도 존경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기 위해 그 책을 썼습니다. 그러고 나서 눈이 먼 이성이 만들어낸 괴물들을 쫓아내듯 견습생은 모든 이야기 중에서 가장 간단한 이야기, 바로 다른 사람을 찾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한 인간으로서의 욕구보다 더 중요한 게 인생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모든 이름들'입니다. 아직 다 쓰지는 못했습니다만, 우리들의 이름이 모두 거기에 있습니다. 바로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이름입니다.
이제 마치겠습니다. 이 원고를 읽은 저의 목소리가 제 인물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목소리의 메아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이들의 목소리 외에는 그 어떤 목소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제게는 전부입니다. -주제 사라마구
저에게 내러티브란 단순히 오락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식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왜 제 연설을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어렸을 적에 제일 먼저 들은 기억나는 첫 구절로 시작하는지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옛날 옛적에..." -토니 모리슨
왜 서구는 문학에서 서슴지 않고 우리의 독창성을 인정했으면서도, 사회 변화를 위해 힘들게 애쓰는 우리의 노력은 의심하고 부인하는 것입니까? ... 우리 역사에 점철된 측정 불가능한 폭력과 고통은 아주 오래된 속세의 부정과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의 결과이지, 우리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획책된 음모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유럽 지도자들과 사상가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을 거머쥔 두 세력에 의해 살아가는 것 이외의 다른 운명은 없는 것처럼. (...) 모든 것을 믿는 우화의 창조자인 우리는 그것과 반대되는 유토피아를 창조하는 작업을 실행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새롭고 활짝 갠 삶의 유토피아이며, 아무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없는 곳이고, 사랑이 확실하고 행복이 가능한 곳일 뿐 아니라 백년의 고독을 선고받은 가문들일 마침내, 그리고 영원히 이 지구상에서 두번째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곳입니다. - 마르케스
나는 내가 태어난 땅과 멀든 가깝든 관계가 없는 글은 쓴 적이 없다. 나의 모든 생각은 그 땅 그리고 그 불행으로 기운다. -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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