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느라 힘들었다. 어렵고 딱딱하다. 그러나 인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여겨볼만한 책.
저자는 인류학에서 사용되는 문화의 개념이 어떤 식으로 형성, 발전했는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그람시가 사용한 문화의 개념과 인류학자들이 갖고 있는 문화의 개념이 얼마나 다른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인류학의 주제가 무엇이든, 최근까지 역동적 근대성에 주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회학은 근대성의 이해를, 인류학은 그 근대성 바깥에 존재하는 세계를 해명하는 몫을 떠맡았다. 인류학자들은 언젠가는 완전히 붕괴될 관계를 충실히 기록하거나 그것이 진보의 행진에 저항하는 과정을 묘사했다.
그람시에게 문화는 체계가 아니며, 안정적이지도, 경계가 뚜렷하지도 않다. 그는 문화를 어떤 식으로든지 계급이 살아서 꿈틀대는 방식으로 본다. 이 계급은 조잡하고 기계적인 의미의 계급이 아니라 권력 관계 그 자체이다. 권력의 역동적인 장이 곧 문화이며, 문화에서 권력의 개념을 포기한다면 날로 불평등이 심화되어가는 지구촌 문화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람시에 의하면 사회는 상이한 문화들이 모인 모자이크나 잡종이 아니라 상이한 권력집단들의 구성체다. 문화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계급이 약동하는 방식인 것이다. 즉 문화는 고정불변의 자율적 영역이 아니라 특수한 계급의 현실이 다원적인 역사적 과정을 통해 재생산되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하는 역동적인 장이다. 그람시의 문화론은 우리가 자신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도록 할 뿐 아니라 그것을 변화시킬 수단도 제공해 준다.
근자의 문화연구는 대중문화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람시가 보기에 대중 즉 ‘하위주체’의 문화가 진정한 대항헤게모니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환경이 거대한 정치, 경제적 질서 속에 어떻게 편입되어 있는지에 대한 명철한 통찰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는 하위주체 문화에서 비판적 요소를 찾아서 현실적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성취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식인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대중적인 존재는 느끼지만 항상 알거나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지식인은 알지만 항상 이해하는 것은 아니며 느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식인은 민중-민족으로부터 유리되어 민중의 기본적인 열정을 느끼고 이해하지 않아도 지식인일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는 것은 반드시 개별적인 ‘독창적’ 발견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특히 이미 발견된 진리들을 비판적 형태로 확산시키고 ‘사회화’하며, 중요한 행위의 발판으로 삼고, 통합 및 지적, 도덕적 질서의 요소로 정립함을 의미한다. 대중이 체계적인 사유에 눈을 뜨게 되어 눈앞의 현실세계에 대해서도 똑같이 체계적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소규모 지식인 집단의 전유물이 되고 마는 몇몇 철학적 ‘천재’의 발견보다 훨씬 중요하고 ‘독창적’인 ‘철학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피지배층이 정치적 행위에 가담하기 위해서는 명철한 상황 인식뿐 아니라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는 정치적 의지도 필요하다는 그람시의 정치철학을 요약한 슬로건, "비관적 지성, 낙관적 의지"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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