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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믿는다는 것 사람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삶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을 계기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는 것 같다. 그 경우 사람은 자신에게 믿을 수 없는 대상이 된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인류가 이루어놓은 것들, 전쟁과 비참, 고문과 기아, 갖가지 악행들을 보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다. 아우슈비츠가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어둡고, 그것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대상이 된다. 요즘 드는 생각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앎 그 자체는 실천을 낳지 못하지만, 믿음은 강한 행동을 낳는다. 기독교인들의 천박한 실천은 별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암튼 믿음은 행동하는 힘을 낳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는 것만으로는 그 어떤 .. 2009. 10. 30.
신영복 선생의 글귀들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 합니다. 사상이 애정으로 성숙하기까지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이며, 현장이며, 숲입니다. -신영복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더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아픔과 기쁨으로 뜨개질한 의복을 입고 저마다의 인생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환희와 비탄, 빛과 그림자, 이 둘을 동시에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용기이고 지혜입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 2009. 10. 26.
원 위크 (One week) 원위크 감독 마이클 맥고완 (2008 / 캐나다) 출연 조슈아 잭슨, 리앤 발라반, 캠벨 스코트, 가브리엘 호건 상세보기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보았다. 마이클 맥고완 감독의 One week. 결혼을 앞두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한 청년이 떠나는 일주일간의 여행. 오토바이를 타고 가로지르는 캐나다 서부의 거칠고 광활한 풍경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주인공의 사색. 흔한 소재인 것 같지만 영화는 전혀 식상하지 않았다. 장면마다 새로움이 있었고 배경음악도 멋졌다. 사람을 중심으로 찍은 영화여서 풍광이 압도적이진 않다. 오히려 잔잔하게 처리한 편이다. 그러나 주인공과 함께 캐나다를 달리는 것 같은 그런 동행의 묘미가 있는 영화다.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가 체 게바라라는 한 특별한 젊은이의 특별한 여정을 다.. 2009. 9. 27.
어떤 차이 학문을 함에 있어서 니체에 매혹되는 사람 니체를 이용하는 사람 (사람 이름은 그냥 하나의 예임) 이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다. 견해는 비록 같을지라도 그보다 더 근본적인 차이, 삶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니체에 매혹되는 사람과 니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거리는 멀지만, 오히려 니체에 매혹되는 사람과 칸트에 매혹되는 사람이 더 가까울 것 같다. 매혹되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에게 구원이 되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말이 너무 무겁다면 의미나 가치로 바꾸어도 좋으리라. 어떤 인물이나 사상에 매혹되는 까닭은 그것이 내 정신의 자양분이 되고 삶과 실천의 영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격적인 만남이고 우정이며 사랑이다. 그것은 우리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이용하는 사람에게 어떤 사상은 사.. 2009. 9. 27.
간디 - 박홍규 선생의 자유공부 간디와 물레. 간디가 추구했던 운동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다. 영국의 옷 대신 스스로 옷을 지어입고 영국의 소금 대신 스스로 소금을 만들어먹자고 했던 간디. 그의 고향에서 뭄바이까지 걸어서 수십일이 걸린 '소금 행진'은 인도 독립의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간디를 세계적 인물로 만들었다. 육십이 다 된 노인이 벗은 몸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행진하는 모습은 세계 지식인들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고 한다. 지난 주 박홍규 선생님의 자유공부 주제는 간디였다. 먼저 인상적이었던 점은 간디가 참으로 '느리게' 변화해간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어릴 때 특출난 점이 전혀 없었으며, 영국 유학 시절에도 영국에 대한 비판 의식이 거의 없었다. 남아연방에서 변호사로 일할 때 기찻간에서 1등석 표를 가지고도 유색인이.. 2009. 9. 27.
헨리 데이빗 소로우 - 박홍규 선생의 자유공부 지난 주 자유공부의 주제는 소로우. 박홍규 선생님이 들려주는 소로우는 제대로 된 직업 한 번 가져본 적 없고, 평생 책도 안 팔린, 요즘 말로 하면 가난한 비정규직 소로우였다. 소로우 전집이 미국에서 30권 정도로 출판되었는데 그것을 읽어본 결과라고 한다. 한국 사회가 소로우를 지나치게 성스러운 사람, 속세를 벗어난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의 오류를 지적하고, 소로우의 참모습을 다시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고행하는 수도승이 아니라 소박한 사람이었고, 제멋대로 산 아웃사이더이자 아나키스트, 자유인이었다. 간디, 마틴 루터 킹 등이 소로우로부터 비폭력의 영감을 받았다고 했는데, 선생은 여기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소로우는 비폭력주의자라기보다는 반국가주의자라는 것. 당시 브라운 대장 등이 펼친 노예반대운동에 소로우.. 2009. 9. 21.
우리에게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있다면 교육이란 무엇일까. 얼마 전 아주 매혹적인 비유를 들었다. 이해찬님이 연설 중에 지나가면서 한 말씀인데... 하나를 주입하면 하나를 토해내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고, 교육은 펌프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붓는 ‘마중물’과 같다고 했다. 한 바가지를 부으면 열 바가지가 절로 철철 넘쳐흐르는 것, 그것이 교육이라고. 없는 것을 넣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것을 끌어내는 것이 교육이다. 그가 지니고 있으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 그것을 욕망이라 부를 수도 있고, 재능 혹은 잠재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하나를 입력하고 하나를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을 적시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붓는 활동, 그런 가이던스. 그렇게 우리를 매혹시키고 알 수 없는 .. 2009. 9. 20.
윌리엄 모리스 - 박홍규 선생의 자유공부 1. 9월부터 영남대 박홍규 선생의 '자유공부'를 듣고 있다. 학점도 시험도 아무 수강 조건도 없는 자유공부. 학벌과 취업의 노예가 된 대학 문화에 실망한 선생이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강좌를 열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 6시에 영남대 법정관 229호에서 열린다. http://blog.naver.com/free_study/70051163761 미켈란젤로에 이어 지난 주의 주제는 윌리엄 모리스. 19세기 후반에 살았던 윌리엄 모리스는 현대 디자인/건축의 아버지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예술 사회주의자라고 평가받지만 박홍규 선생은 아나키스트로 본다고 했다. 맑스/엥겔스와 동시대에 살았던 모리스는 그들의 혁명이 결국 지배자만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부했다. 그가 꿈꾼 것은 자급자족의 공동체. 인간의 가장.. 2009. 9. 15.
긍정 어휘 서점가에 유행하는 긍정의 힘 같은 책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결여하고 환상을 좇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지닌 고유한 꿈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꿈, 부/성공만을 위한 긍정을 설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헛된 꿈은 언젠가는 깨어질 것이고, 거기에 삶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현재를 제대로 점검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물론 개중에서 내 삶에 참고할 만한 괜찮은 내용이 아주 없다는 건 아니다. 각론에서는 내가 배울 점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시류가 싫다는 것이다. 부/성공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만이 최선의 답이라는, 가장 좋은 삶이라는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목표지향적인' 긍정 말고, 우리 삶의 순간들을 좀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하루.. 2009. 9. 7.
"선생님은 느껴보셨어요?" 수업 시간에 김용택 시인의 작품을 읽는데 시골학교 아이들과 생활하는 모습을 이렇게 그려놓았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리밭에 오는 봄' 같다고. 그 얼굴들이 '나를 향해 피는 꽃' 같다고. 북한군이 못 쳐들어오는 것이 중2가 무서워서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예측 불가인 중2를 맡고 있던 나는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역시 시인은 시인이구나', '시골 초등학생들이니까 예뻐 보이는 거겠지' 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면서, 보리밭에 오는 봄이 얼마나 예쁜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녀석이 묻는다. "선생님도 이렇게 느껴보셨어요?" 순간 속으로 흠칫했다. 무슨 말만 나오면 꼭 '선생님은요?' 하고 묻는 애들이 있는데 아주 성가신 존재들이다. "글....쎄.... 3월을 맞이하며 .. 2009. 9. 4.
스피노자의 철학 - 질 들뢰즈 에덴 동산의 아담은 행복했을까? 스피노자라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의식이 제 1원인이라고 착각하고, 그러한 자신의 의식으로 자유 의지를 행사한다고 믿으며(아이는 자유 의지에 따라 우유를 욕구하고 겁 많은 사람은 도망가기를 욕구한다고 생각하고), 그 자유 의지의 결과에 따라 영예 혹은 처벌을 받는 세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의식의 환상을 거부했다. 그에게 의식의 원인은 욕망이다. 욕망은 우리의 신체/정신이 자신 속에 계속 머무르려는 노력(즉 코나투스)이며, 이는 우리의 신체/정신이 다른 대상들과 만나서 생기는 감응(변용)에 의해 결정된다. 즉 의식은 신체와 사유의 결과이다. 신체와 사유 속에서 변용되는 욕망은 일종의 운동이며 기쁨과 슬픔이.. 2009. 8. 30.
걷기가 주는 선물 - 팔공산 평광동에서 "이십대 때는 혼자 여행하는 것이 엄두가 안 났어요. 그런데 서른을 넘으니 많은 것들이 편안해지고 혼자서도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길에서 만난 아리따운 이의 말이었다. 눈빛이 맑았다. 일찍 결혼했고 아이는 없다고 했다. 나는 답했다. "저랑 반대네요. 저는 이십대엔 부닥치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독특했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혼자 길을 나섰지요. 그런데 서른을 넘으니 동행이 없는 것이 아쉬웠어요. 경험을 더불어 나누고 싶어졌거든요."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혹은 세계를, 혹은 세계 속의 자신을 '깊게' 만나고 싶다는 소망의 발로이다. 누군가는 십대나 이십대에, 누군가는 삼십대 혹은 사십대에, 또 누군가는 노년에 그런 소망을 품는다. 어느 시기가 되면 우리의 .. 2009. 8. 29.
'영원'을 사신 분 - 김대중 대통령을 추모하며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일까. 자연에 순응하는 삶은 아름답다. 자연 속에서 한 포기 풀처럼 들꽃처럼 사는 삶은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에만 속해 있지 않다. 인간은 역사적 존재다. 자연 속에서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라는 대기 속에서 숨쉬며 살아간다. 자연이라는 토대 위의 진보, 그것이 역사다. 역사는 공동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역사는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이자 미래이다. 모든 것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변하는 것이 세상사지만,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지만, 그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오는 것,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일깨워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품은 ‘뜻’이다. 진리, 선, 아름다움, 존엄, 자유, 평화, 화해, 나눔, 일치, 창조, 투쟁, 저항, 변혁... 그 뜻이 모여 역사를 만들어.. 2009. 8. 19.
시설을 거부하는 장애인들 지난 주말, TV에서 시설을 거부하는 장애인들을 보았다. 17일째 노숙하고 농성하면서도 지금이 태어나서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자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시설에서는 작은 자유도 누릴 수 없다고. 그들은 지체 장애 1급이었고, 자신들이 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정신 장애를 가진 이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은 밥 주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모른다고. 한 장애인은 시설에서 나가려고 하다가 정신병원에 갇히기까지 했다가-장애인 한 명당 정부에서 지원금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사라진 것을 알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낸 연인 덕분에 병원을 나와서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다. 연인은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했기에 아이 돌볼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설.. 2009. 8. 18.
별이 지다 인간에게 불멸의 영혼이 있을까.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상이 아니고 오가는 감정도 아니고 삶에서 겪는 경험 그 자체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선 한 인간의 가장 맑고 순수하고 고귀한 어떤 정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멸하는 것이 있다면 그러한 것이리라. 그것이 사라진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인간의 혼을 밤하늘의 별에 빗댄다면 그는 큰 별이었다. 크고 작은 수많은 별들이 가득한 이 우주 속에서 그는 떠돌이별이 아니라 먼 길을 인도하는 길잡이별이었다. 우주의 시간은 굽어 있어서 천만년 전에 사라진 별의 잔영이 오늘밤 우리 시야에 닿는다. 그 분의 빛도 그렇게 오랜 세월 우리 역사를 비추리라 믿는다. “역사를 믿는 사람은 결코 패배하지 않습.. 2009.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