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라스 가는 길 | 정형민 감독
나는 평일 저녁엔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피곤해서 집중이 안 되어서다. 하지만 ‘카일라스 가는 길’은 예술전용극장 동성아트홀에서만 상영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난 화욜 밤, 저녁 먹고 급하게 도심에 갔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에서 놓친 게 있었던 것 같다. 30분 지나도록 웬 특이한 할머니 한 분이 네팔, 몽골, ‘~탄’으로 끝나는 나라의 오지를 여기저기 다니고 계신다. 아니 대체 ‘카일라스’는 언제 가지?
할머니 일행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갈 때 알았다. 티벳의 성산 카일라스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 몽골 대평원을 통과해서 파미르고원을 넘어 키즈키스탄을 지나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을 통과해서 티벳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잠이 확 달아났다. 이 여정의 주인공이 84세의 청송이 고향인 할머니와 그의 아들, 다큐 감독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좀 더 젊었을 땐 사는 게 바빠 함께 여행을 떠나지 못했던 아들이 이제라도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자신이 주로 촬영하는 오지로 어머니를 모시고 간다. 카일라스 여정을 준비하기 전, 몽골에 모시고 갔을 때 어머니는 대평원을 보시며 우리 저기를 걸어가보자 하신다. 카일라스 가는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든넷의 할머니는 놀라울 만큼 씩씩하게 여정을 즐긴다. 종일 지프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때로 텐트에서 자는 힘겨움을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감사와 경이의 눈으로 풍경을 마주한다. 어느 광활한 평원에서는 여기서 죽어도 좋겠다 하신다. 라면 잔뜩 사서 쟁여놓고 그거 먹으며 여기서 죽으면 좋겠다고. 티벳 라싸에 도착했을 땐 감격의 울음을 터트린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할머니에게 이 여정은 삶을 건 순례였다. 그분은 가는 곳마다 부처님을 부르고 서른일곱에 잃은, 애타게 그리운 남편 성두씨를 부르고, 세상을 먼저 떠난 큰아들을 기억한다. 굴곡진 삶이지만 이춘숙 할머니는 시종일관 담백하고 가식이 없다. 신앙의 힘으로 살아오신 분이란 게 잔잔하게 느껴진다.
영화에는 아쉽게도 삶에 대한 할머니와 아들의 풍성한 대화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여백을 영화는 여행 중 할머니의 일기를 간간이 소개하며 채워나간다. 이춘숙 할머니는 일기에서 말한다. 여기를 대체 몇 명이나 가봤겠냐고.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할매라고.
여든넷의 할머니는 젊은이도 힘든 긴 여정 중에 지난 모든 삶을 반추하고 길 위에서 낯설고 익숙한 다양한 삶을 만나고 대자연의 위용에 탄복하고 드디어 모든 불교도들의 소망이기도 한 성산 카일라스의 품에 안겼다. 할머니의 생의 막바지가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나 했다.
우리가 길을 떠나는 이유도, 길을 갈망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 생존의 장에서 조각나고 부서진시간들을 통합하고 이 지구별에서 한 인간으로서 찰나를 살아가는 의미를 대자연과 다른 시공간의 사람들로부터 배우기 위해서다. 파미르 고원을 꼭 넘어가보고 싶다. 그리고 그 전에, 네팔 안나푸르나를 다시 가고 싶다.
* 영화 보고 반월당 거리를 지나다 처음 본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