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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 두 교황 /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__ 다큐로 착각할 만큼 뛰어난 연기

릴라~ 2021. 3. 4. 14:04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보았다. 베네딕토 전 교황과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두 교황'. 묵직한 감동이 한동안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안소니 홉킨스(베네딕토 교황 역)와 조나단 프라이스(프란치스코 교황 역)의 연기는 영화를 다큐로 착각할 만큼 화면 속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넷플릭스에 가끔 이런 좋은 영화도 있다. 

 

가톨릭 역사에서 전직 교황과 현직 교황이 동시에 계신 것은 700년 전 단 한 번의 선례가 있을 뿐이다. 교황은 죽기 전까지 사임을 하지 않는 종신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에 파격을 준 분은 진보적 성향을 가진 분이 아니다. 가톨릭 규율과 교리를 수호하는 것을 자신의 시대적 소명으로 여긴, 누가 보아도 가톨릭에서 가장 '보수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베네딕토 전 교황이다. 

 

베네딕토 교황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영화는 그분과 정반대의 입장을 지닌, 가톨릭 안에서는 굉장히 진보적인 인사로 분류되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을 통해 두 분의 내적 고민과 결단을 추적하고 있다. 서로 추기경인 시절에는 인사도 잘 하지 않던 두 사람. 가톨릭 사제의 연이은 성추문과 바티칸 은행의 비리 등 재임하자마자 여러 난제들 속에서 분투해온 베네딕토 교황은 그간 자신의 입장에 반대해온 베르골리오 추기경(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기경직 사임을 요청하자 만나기로 결심한다. 추기경직을 사임하려면 교황의 싸인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소원하게 지내던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영화는 시종일관 두 사람의 대화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어떤 드라마보다도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이유는 이 두 사람의 대화가 그냥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화 속에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관과 신념, 그 바탕에 흐르는 진리에 대한 사랑, 무엇이 바른 길인지에 대한 질문과 고뇌,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와 자책, 인간적인 좌절,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번뜩이고 있다. 두 사람의 온생애가 걸려 있는 이 지적이고 진솔한 대화를 따라가노라면 인간적이면서도 위대한 '인격'과 마주하게 된다. 아마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의 본질인 것 같다. 

 

영화는 공간을 네 번 이동한다. 두 사람의 대화에 맺고 끊는 흐름을 부여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일 것이다. 대화는 네 번의 조금씩 다른 호흡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첫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은 교황의 여름 별장의 정원이다. 한낮의 정원을 산책하며 베네딕토 교황은 베르골리오 추기경(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자신이 궁금한 것에 대한 질문을 퍼붓고, 두 사람이 가톨릭 교리에 대한 관점을 두고 가장 강하게 부딪히는 대목이다. 이 대화는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끝이 난다. 

 

"주님은 변하지 않아요."

"주님도 변합니다."

"주님이 항상 움직인다면 어디에서 찾아야 하오?"

"이동하면서요." 

 

두 번째 대화는 여름별장의 숙소에서 이루어진다. 각자 따로 저녁을 먹은 뒤에 만난 두 사람의 대화는 베네딕토 교황이 소파에 편히 앉아 모자를 벗으면서 시작된다. 격식을 떠나서 좀 더 인간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가장 힘든 것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거라오."

"죄송한데, 교황님도 그렇다는 건가요?"

"교황이라서 더 그런 것 같소."

 

베네딕토 교황은 젊은 날 자신을 평화롭게 했던 주님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고민을 토로하고,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젊은 날에 사제의 길을 선택한 이유, 피아노를 흥겹게 치는 베네딕토 교황의 인간적인 모습이 어우러지면서 대화를 통해 서로 좀 더 가까워지는 장면이다. 

 

세 번째 대화의 무대는 바티칸 궁전, 그 중에서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그려진 방이다. "추기경님이 교황이 된다면 뭘 하겠소?"에서 시작된 대화는 베네딕토 교황의 의중을 점차 드러낸다. 교황은 자신은 패배했고 은퇴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다음 교황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추기경님의 스타일과 방법은 나와는 완전히 달라요. 말하는 거나 생각, 행동 대부분에 동의하지 않소. 그런데 이상하게도 왜 베르골리오가 필요한지 이해할 것 같소."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자신은 절대 안 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아르헨티나의 독재 시절, 그가 예수회를 지키기 위해 정권과 타협한 일이 회상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다. 노동자들의 자립공동체를 세운 요리오와 할릭스 신부를 지키지 못한 일로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마음 깊이 자책하고 있다.

 

"그 신부님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셨잖아요."

"제 노력은 충분하지 않았어요."

 

이에 베네딕토 교황은 말한다. 돌아보면 뚜렷하게 보일지 몰라도 당시엔 모두 헤매게 마련이라고. 자신이 설교하는 자비를 믿으라고. 우리는 신과 함께 살고 있지만 신은 아니라고. 오직 인간이라고. 그리고 인간이신 분이 저기 계신다고. 벽화에서 예수의 못이 박힌 손을 가리키며 살짝 미소 짓는 베네딕토 교황의 미소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었다. 

 

마지막 대화는 '눈물의 방'이라 불리는 제의실에서 이루어진다. 베네딕토 교황은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변화했고(요리오와 할리스 신부님이 했던 일을 하기 시작했고) 그 변화를 그대로 밀고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는 베르골리오 추기경에게 자신의 오류와 잘못을 고해한다. 그렇게 서로의 가장 깊은 상처를 드러내고 신의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이들이 각자의 다름을 떠나서 진정한 형제애로 맺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돌아보면 뚜렷하게 보일지 몰라도 당시엔 모두 헤매게 마련이죠." 

 

베데딕토 교황의 이 말씀은 베르골리오 추기경 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내 마음도 어루만져주었다. 몇 년 전, 아빠가 갑작스런 투병으로 돌아가시기까지 약 6개월간, 지금 돌아보면 후회되는 것 투성이다. 지금은 분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그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든 일이 너무 급작스럽게 전개되었고 우왕좌왕, 허둥지둥, 갈팡질팡 하다가 내 생애 가장 소중한 시간들을 정신없이 흘려보냈다. 내 안에도 그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깊은 자책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이미 사건은 종결되었고 어떤 방식으로도 그것을 다르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위로를 받은 것은, 우리가 지난 날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해결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이고 지고 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기 때문이다. 교황께서도 그런 깊은 상처와 마음의 짐을 갖고 사시는데, 나같은 미천한 이야 수없이 많은 오류를 저지를 수밖에 없겠지 하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 영화야말로 '사랑'에 대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각자 다른 방식대로 추구해온 사랑이 그들 모두를 포용하는 신의 사랑이라는 동일한 대양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임을 깨닫게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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