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역사, 인물

도시로 보는 유럽사 | 백승종 _ 유럽사를 보는 시야를 터주는 책

릴라~ 2021. 4. 2. 11:58

 

유홍준 선생이 예전에 연대기 중심의 역사 공부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어요. 연대에 대한 이해는 물론 필요하지만, 연대기적으로 나열된 추상적 사건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유물'이나 '유적'을 중심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역사를 훨씬 생동감 있게 공부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여행기의 형식을 취하지만 여행기의 느낌은 한 20퍼센트? 나머지는 역사 이야기예요. 저자가 유럽사에서 의미 있는 지위를 차지하는 18개 도시를 방문하면서 그 도시의 역사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저자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들면서, 각 나라마다 두터운 역사가 있는 유럽사를 그 본질만 간추려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장점이 많은 책이죠. 저자는 유럽사를 각각의 도시와 그 도시를 만든 시민들의 활약을 중심으로 서술합니다. 역사가의 '도시 여행'이 지적 자극이 되면서도 흥미진진합니다. 한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느끼게 되는 점이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입니다. 

 

책을 다 읽고 한 마디로 유럽사는 도시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시아 역사와 갈라지는 지점이 이게 아닐까 혼자 생각했습니다. 과거 고려의 수도나 서울도 인구 규모가 상당한(유럽 어느 도시보다 인구가 많은) 도시였으나 고려나 조선에는 수도 말고는 이렇다 할 도시가 없었죠. 일찍 왕권이 확립되고 관료제가 정착한 탓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봉건 영주가 오랫동안 힘을 발휘했던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각각의 도시가 그들 나름의 성장과 쇠락, 재건의 과정을 거칩니다. 각각의 도시가 저마다 독자적인 역사적 두께를 갖고 있습니다. 

 

도시의 시민들은 단순한 피지배층이 아니라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돈으로 영주나 왕으로부터 자치권을 사기도 하고 자기 도시를 지켜줄 제후를 바꾸기도 하고, 그들이 힘을 합쳐 자신의 도시의 건설해가는 과정을 이 책은 보여줍니다. 상인들의 활약이 그 도시의 부를 가져왔으며 사상가와 철학자, 예술가들이 도시의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동양사가 서양사에 비해 뒤쳐지는 지점이 있다면, 저는 '도시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도시의 역사는 도시의 시민들이 '주인'이 되어가는 역사라고도 느껴졌고요. 그래서 그들은 위기 상황에서는 목숨을 걸고 도시를 지키고자 했죠. 

 

18개 도시 중에서 제가 방문한 곳은 파리, 로마, 베니스, 마드리드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등장하는 도시에 다 가보고 싶어졌지만 특히 관심 있는 곳은, '자유'의 공기가 다르다는 암스테르담, 동서독 통합의 상징 베를린,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입니다. 코로나가 끝날 날을 기다리며 이 책을 한 번 더 읽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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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말해 그리스인들의 당당함이라고 할까. 관광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는 관광객의 구미에 맞추려 애쓴 흔적이 없었다. 날마다 수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명소라도 영문으로 쓴 번듯한 입간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나라의 거리를 활보하고 싶으면 그리스어 알파벳쯤은 당신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무언의 항변인지도 모르갰다. 나로서는 거기에서 그리스인의 자존심과 배짱을 보았다. 전국 어디든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총동원해 사소한 지명까지도 일일이 표기한 우리나라의 과잉 친절과는 너무다 다른 풍경이었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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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비엔나는 어떠한가. 지금은 보수우파가 집권하고 있다. 극우파 정치가들의 입김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 거세다. 오스트리아는 중동 난민이 유럽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국경을 가장 철저히 통제해 많은 유럽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메트르니히가 강조한 보수적 전통이 아직도 비엔나를 지배한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법하다.

 

이야기를 여기서 서둘러 끝내면 아마도 비엔나라는 도시에 관하여 불필요한 오해가 생긱지 모르겠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비엔나는 삶의 질이 유난히 높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해, 이 도시에서는 주거 비용이 무척 저렴하다. 독일의 함부르크나 뮌헨에 비하면 3분의 1 혹은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교통비 역시 주요한 유럽 도시들에 비해 7분의 1 이하이다. 공기와 물의 질도 여느 도시와 비할 수 없이 훌륭하다. 또한 이 도시는 미학적으로 최고의 세련미를 자랑한다. 한 마디로, 비엔나 시민의 생활은 질적으로 우월하다. 이런 그들에게 정치적 보수성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어쩌면 그것은 불청객이나 다름없는 외부인의 '침입'으로부터 시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방어 수단일는지도 모르겠다. p226-227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231789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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