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역사, 인물

한국의 레지스탕스 | 조한성 _ 우리의 오늘을 만든 사람들

릴라~ 2021. 4. 22. 16:19

 

1945년 광복을 생각할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갑작스럽게 맞이한 해방'이다. 35년간 독립투쟁은 계속되었지만 그것이 결실을 보지도 못한 채 외부에 의해 갑작기 찾아온 해방. 그래서 우리민족이 해방의 주체가 못 되고 이후 분단과 6.25 내전을 거치면서 내내 강대국의 입김에 휩쓸려가는 듯한 느낌. 

 

이 책을 읽고 알았다. 태평양전쟁의 패배로 갑자기 해방이 찾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독립운동가들의 노력, 민중계몽운동과 교육운동, 무력투쟁, 임시정부, 조선건국동맹 등 그 모든 것이 없었다면 우리는 해방을 맞이해서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울 수 없었을 거란 사실이다. 그들의 노력이 민중들에게 서서히 스며들면서 새로운 국가를 위한 꿈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모든 분들은 '우리의 오늘'을 만든 분들이다. 

 

특히 인상 깊은 인물은 안창호. 대한제국 말기에 처음으로 공화제에 기반한 국가 건설을 꿈꾸며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나라 사정을 근심해서 미국 유학을 도중에 중단하고 귀국해서 자신의 신념을 펼쳐나간다. 이 정도로 대단한 인물인 줄 몰랐다. 김원봉과 김구 선생은 평소 좀 아는 인물들이고, 이십대의 나이로 처형된 박상진 열사와(울산에 기념관이 있다고 한다)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한 학생들, 여운형 선생 관련 내용도 새롭게 다가왔다. 

 

"한국의 레지스탕스"란 제목도 좋다. 식민지 해방운동은 단순한 운동, movement가 아니다. '독립운동가'란 말은 그래서 문제가 많은 용어이다. 저자 약력을 보니 아직 젊은 분이던데, 이렇게 새롭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재조명하는 분들이 있어 반갑고 기뻤다. 

 

 

대략적인 내용을 메모해 두고자 한다. 

 

1. 안창호와 신민회 --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한 안창호를 중심으로 대한제국 말기, 공화제에 기반한 새로운 국가 건설을 꿈꾸며 해외 독립운동 기지를 모색함. 105인 사건으로 해산. 

 

2. 대한광복회의 의협투쟁과 박상진 -- 의병세력과 계몽세력의 연합. 1910년대 친일부호를 처단하는 등 의협투쟁.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 모금 과정에서 조직이 드러나 모두 검거되고 1921년 대구교도소에서 박상진 사형 집행. 해외 독립군 양성을 위해 지린에 가 있던 김좌진이 그 꿈을 이어감. 

 

3. 대한민국임시정부 -- 책을 통해 임시정부내 권력 갈등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이승만이 끊임없이 분열의 단초를 제공함. 

 

4. 김원봉과 의열단 -- 조선총독부 폭파 사건 등 열혈 투쟁. 대암살 파괴 계획이 밀정에 의해 무산되어 조직 와해됨. 암살, 파괴만으로는 직접적으로 민중을 각성시킬 수 없다고 보고 대중운동과 무장투쟁으로 방향 전환. 

 

5. 광주학생운동과 독서모임 성진회 -- 수개월간 시위와 동맹유학을 이어간 정치적으로 각성한 젊은이들. 이 새로운 세대는 이후 일제의 군국주의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노동, 농민, 대중운동에 뛰어듬. 

 

6. 조선공산당 -- 당파 갈등과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로 1928년 해체되었으나 민족해방과 공산주의 실현을 계속 추구해나간 다수의 공산주의자들이 그 꿈을 이어감. 

 

7. 조국광복회와 김일성 -- 조선인과 중국인의 갈등 속에서 다수의 공산주의자가 첩자로 몰려 죽어간 민생단 사건 이후 만주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만든 조직이 조국광복회. 민생단 사건 때 살아남은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이 이에 속함. 보천보전투의 승리를 얻었으나 정보를 제공한 국내 조국광복회 조직 궤멸됨. 동북항일연군은 1940년대 러시아 땅으로 넘어가면서 88연대로 개편, 북한 수립의 주축 세력이 됨. 

 

8. 여운형과 조선건국동맹 -- 일제의 패망이 가시화되자 여운형을 중심으로 국내외 세력이 결집하여 새로운 인민 민주주의국가 건설을 준비해간 조직. 건국동맹과 임시정부가 만남을 갖기도 전에 해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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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준에서 한국 레지스탕스의 삶을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제의 통치에 맞선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까지 포함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왜 목숨을 건 투쟁의 대열에 뒤어들었을까? 그 과정에서 그들은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한국 레지스탕스의 삶을 추적하면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물음이었다.

 

한국의 레지스탕스 가운데는 민족주의자도 있었고 공산주의자도 있었고 아나키스트도 있었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상과 상관없이 공통된 꿈이 하나 있었다. 자유! 그들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의 대열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입헌주의와 근대 민주주의를 배우며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평등 이념을 학습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꿈꾸기 시작했다. 어던 이는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또 어떤 이는 러시아의 공산주의국가를 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어느 것을 모델로 삼든 간에 그들이 공통적으로 꿈꾸던 나라는 하나였다. 억압과 착취가 없는 나라,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입헌주의와 근대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나라였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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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근현대사를 다루는 일부 학자들이나 정치가, 언론인들이 의도적으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폄하하여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대한민국의 '건국'에 두고 그 공로를 1948년 정부 수립에 참여한 인물들로 한정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의도적으로 일제의 지배에서 해방된 '광복'의 의미를 단지 강대국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축소 해석하고, 당시 우리 민족은 어떤 국가를 세울지에 대해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고 호도했다. (...)

 

이 책은 그들과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이 강대국들 사이에 한국의 독립을 기정사실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독립운동가들이 세웠던 여러 국가 수립 계획들과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그들이 만든 여러 법안들이 1948년 정부 수립의 직간접적인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또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건국 그 자체에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한국의 레지스탕스들이 일제의 통치에 맞서 싸우며 새나라의 건국을 꿈꾼 그 순간부터 1945년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되고 1948년 헌법을 제정하여 정부를 수립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부여되고 강화되어 온 것이라 믿기에 그렇다. 

 

대한민국의 시작은 한국의 레지스탕스, 그들의 투쟁에서부터 비롯했다. 자유를 위한,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귀한 싸움에서부터 오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한국의 레지스탕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p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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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은 그렇게 전 세대, 전 계층이 참여하는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 되었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운동 과정에서 급속도로 각성되었고 자연스럽게 민족주의와 자유. 평등의 이념을 학습했다. 그 결과 수많은 저항자들이 나타나 새로운 저항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물질적으로 근대화시킨 것은 일본이었을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 근대화시킨 것은 3.1운동과 여기서 촉발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었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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