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의 천재들 | 정혜윤 _ '다시' 세상을 사랑하고픈 이가 읽어야 할 책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분 좀 천재 같은 느낌이다,, 라는 작가는 처음이다. 그만큼 생각이나 문장이 톡톡 튀면서도 표현력이 풍부하고 그만의 시각을 잘 녹여내었다. 다만, 몇몇 책은 감정이 과잉되거나 현란한 수사가 많아서 내용을 좀 건너뛰면서 덤벙덤벙 읽게 된다. 아무래도 나는 담백한 문장을 좋아하는 편인 듯.
이 책은 덤벙덤벙 읽지 않았고 잘 읽힌 편이다. 제목이 "사생활의 천재들"이지만 실은 우리 시대 작가와 예술가, 영화감독, 학자 중에서 저자를 감동시킨 '천재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이다. 읽으면서 '천재적인' 작업 결과물을 내는 이들은 그 분야에 '천재적인' 관심과 애정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사생활의 천재들'일 게다. 모든 꼭지를 흥미진진하게 읽었지만, 특히 윤태호 작가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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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어. 결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온 도시를 헤매다니는 루미에게 남은 길은 결국 자기 자신이 바로 그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하나뿐이었어! 바로 이 부분이야. 우리가 뭔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그리워하면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얼굴이 되어갈 수 있어. 이건 너대니얼 호손이 이미 '큰바위 얼굴'에서 쓴 내용이기도 하지.
그래서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미래는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닮아가는 거야. 우리 자신이 보고 싶은 미래 자체가 되어가는 거지. 그래서 내가 '가장 아름다운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말할 때 내 마음속의 생각은 우리가 변화해야만 그날이 온다는 것이었어. 우리가 변화해야만 세상이 아름답게 바뀐다는 말이었어. 이것이 희망을 이 사이에 넣어둔다는 말이야. 희망을 깨문다는 말이야. 희망은 별처럼 먼 곳에 있지만 그 별을 입으로 옮겨놓는 거야.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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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다시 만나도 만날 때마다 사랑에 빠지는 관계가 있어. 우리의 멋진 친구, 시인 심보선이라면 사랑을 '다시 알아봄'이라고 표현할 것 같아. 우리가 미래를 사랑하기 시작했던 것은 뭔가를, 특히 사랑할 만한 것을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말과도 같아.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포함해서. 무릇 다시 시작하려는 자는 자기 자신도 다시 알아볼 수 있어야 해.
해마다 우린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을 하지. 다시 시작하자는 말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그런 결단으로 다시 듣고 보고 행해보자는 말이야. '다시'라는 말 아름답지? 아름다움의 역사에 가장 먼저 포함시킬 만한 단어야. 우린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거야. 조금 더 자유롭게 조금 더 힘 있게. 우리가 맺는 관계가 바뀐다면, 혹은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바꾼다면 세상도 바뀌어, 이건 진리야.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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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이 출사표란 단어를 썼는데 출사표는 사실상 어떤 판단을 내렸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녀가 출사표란 단어를 써서 좋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모험, 꼭 필요한 자신만의 전투, 피하지 말아야 할 전투, 저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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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시대보다 자기주장을 할 수많은 권리와 수단을 갖고 있는데도 그 권리로 자기 처지와 삶을 개선하지는 못하는 시대, 그 어느 시대보다 수많은 재능을 갖게 되었지만 그 재능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픕니다. 우린 사랑과 도움을 청하는 아픈 사람들입니다. 두려움에 떨며 공격적이 되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겐 경쟁력이란 말이 헌신이나 우정 같은 말보다 훨씬 더 익숙합니다. 우리에겐 타인에 대한 인정과 존중보다 비교라는 말이 더 익숙합니다. p228-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