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대전 1~2 | 도올 김용옥 _ 수운과 해월의 위대한 가르침
이렇게 두꺼운 책일 줄은 몰랐다. 대중서가 아니라 각 권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해설서이다. 도올 선생이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 작업한 책. 다 읽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1권의 '서언'과 '대선생주문집'만 읽고 도서관에 반납했다.
대선생주문집의 기술 방식이 인상 깊었다. 그 어떤 신비주의적 색채나 과장된 표현 없이 담담하게 수운의 행적을 기록해간 과정이. 그 담백한 서술 속에 제자들이 수운 최제우 선생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했는지가 드러난다.
쟁쟁한 식자들을 물리치고 2대 교주로 해월 최시형 선생을 택한 수운 선생의 안목 또한 탄복할 만하다. 해월 선생은 35년이라는, 우리 민족 최장기 '도바리꾼'이다. 관의 눈을 피해 민간에 숨어살기를 35년, 밀고자가 없기 어려운데, 그 긴 세월을 해월 선생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수운의 가르침을 폈다는 것은 그의 행적이 '성자'와 다름없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그분의 풍모가 그러했다고 한다.
해월 선생은 그 어려운 시기(1880년대)에 스승의 가르침을 책으로 펴내는 대업까지 완수한다. 그때 펴낸 판본(인제초판본)이 최근 발견된 감격을 도올 선생은 서언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오천 년만에 독자적인 사상을 내놓았다는 것, 그것이 사상에 그치지 않고 민중의 움직임으로 한 시대를 뒤흔들었다는 것, 천도교가 중심이 된 3.1운동이 현대사 100년을 이끌어온 동력이었다는 것, 그 역사적 의의에 비해 동학에 대한 가치 평가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이황, 이이 같은 유학자는 물론이고 정약용 같은 실학자도 수운 최제우 선생이나 해월 최시형 선생에 비할 인물이 아니다. 수운과 해월이 더이상 이 시대를 유교로 뚫고 갈 수 없다고 느끼고 새로운 사상과 철학을 설파했다는 점, 그들의 메시지가 종래의 어떤 사상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고 영성적이고 보편적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한글로 경전을 썼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용담유사). 정약용 선생과 정약전 선생 모두 18세기에도 한글로 된 책 한 권 내어놓지 않았고 이 점은 유학자들의 내면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그래서 나는 우리 민족 사상사에서 원효대사, 수운 선생, 해월 선생을 최고로 꼽는다.
'대선생주문집'만 보아도 '동경대전'이 우리 민족의 성서라는 저자의 인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동학 공부를 좀 더 하고 나서 이 책에 다시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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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제1의 원리는 인간의 자율성이요, 인간이라는 존재 내에 이미 모든 천지의 조화가 구비되어 있다는 사상이다. 그러나 수운이 내린 최종결론은 "서학은 기도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정확한 파악이고 핵심적 요약이다. 기도는 자율의 세계가 아니라 타율의 세계요, 의타적 구원을 희구하는 것이다. 수운은 을묘천서, 즉 천주교의 핵심교리와 본격적으로 해후하면서 타율적 구원과 자율적 구원의 문제를 동시에 삶의 과제상황으로 껴안게 된다.
그래서 그는 "하늘님"과의 만남을 추구하게 되지만, 그는 그 하늘님을 만나는 순간 이미 그 타자와 인간의 모든 수직적 관계를 부정해버린다. 천주에 대한 그의 추구는 초월과 내재, 인격성과 자연성, 자율과 타율, 수직과 수평의 모든 얽힘을 일소타기해버리는, 인류사에 그 유례가 없었던 신성과 인성, 그 양방향의 도약이었다. p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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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동학이 우리민족의 동학이 되었고 모든 동시대성(서구적 기준의 근대성과 관련 없다. 동학에 대하여 근대성을 말한다면 그 근대성은 서구적 근대성을 뛰어넘는다는 데 있다. 종교, 피안 그 자체를 심오한 인간학적 차원에서 부정한다는 데 있다)의 뿌리가 된 것은 우직 수운이 자신의 생각을 저술로 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수운의 저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필사적으로 그 원형을 후대에 남겼을 뿐 아니라, 자기들의 수난과 영광의 역사를 성실하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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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의 경우 하늘의 목소리의 주인은 분명히 "상제"였다. 그런데 해월의 경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리운 "님"이었다. 상제 아닌 사람이었다. 해월의 체험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성의 측면이고 하나는 속의 측면이다.
성의 측면에서는 우주생명이 하나로 통한다는 깨달음이다. 오늘 이렇게 우발적으로 만났듯이, 남원 은적암에서 외친 소리를 경주 마북동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깔린 생각은 "간절함", "절실함", '중용'이 말하는 "지성"의 교감이 있다면 천지만물은 일여로 감통한다는 것이다. 싱크로니시티의 배면에는 우주생명의 하나됨이 마이크로웨이브 배경복사처럼 꽉 들어차 있는 것이다.
속의 측면에서는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리던 하늘님의 소리가 곧 인간의 소리라는 자각이다. 천성은 곧 인어요, 인어는 곧 천성이다. 이 깨달음이 해월의 삶을 "사인여천"의 모범을 철저히 구현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죽을 때도 어린아이들이 병정놀이 하면서 "잡으러 온다, 잡으러 온다" 하니까 "하늘님의 소리다" 하면서 자신의 삶을 영예롭게 마감할 준비를 한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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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불법이나 유법이나 기타 묵은 것으로는 도저히 새 인생을 거느려 나갈 수 없는 시대이지요. 다만 요할 것은 죽은 송장 속에서 새로 산 혼을 불러일으킬 만한 무극지운을 파지하고 신천신지신인을 개벽하여야 하지요."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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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유생들은 개화과정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과시했을지언정, 진취적 역사의 이념을 선도하지는 못했다. 동학이 경상도에서 발생했지만, 전라, 강원, 충청에서 크게 퍼지게 된 것도 그러한 정황과 관련이 있다. 상주 우산서원에서 상급 서원인 도남서원으로 보낸 동학배척통문만 보아도 그 정황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동학이라는 요마는 그 흉측한 술책이 분명한 서학인데, 건본은 바꾸지 아니하고 개두환명하여 마음대로 설치고 있으니 햇빛을 못보도록 그 넝쿨을 뽑아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수운은 이 영남유학의 벽을 넘지 못했다. 본인이 그 정통 주자학의 언어 속에서 성장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 불가항력적인 담벼락을 잘 알고 있었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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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의 기술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사실은 너무도 수운의 죽음이 간결하고 소략하고 상식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가가 "빈 무덤"과 세 여인의 "떨림"으로 대미를 장식한 것보다도 더 간략하고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똑같은 소생, 즉 부활의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수운의 죽음에 관한 타 기록들을 보면 다양한 이적적인 장치가 죽음기술을 동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집'의 저자는 그러한 동반을 단절시키고 있다. 어떻게 그토록 간결하게, 그토록, 억울하게, 그토록 위대하게 죽은 사람의 죽음을 처리할 수 있는가? 그 과감한 붓질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이 행장 전체를 훑어보면 수운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도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그렇게 무참히 쿨하게 죽는 것으로 기술해야 할까?
일차적으로 이러한 위대한 문학양식은 수운의 신념과 삶의 방식에서, 그리고 그의 가르침에서 유래된 것이다. 수운은 신비를 가르치지 않았다. 스치는 바람, 휘날리는 가랑잎 한 닢이 하느님의 더없는 조화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 문집의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수운의 죽음이 아닌 삶이야말로 영원한 부활 그 자체라는 것이다. 수운이 살아간 족적 그 자체가 부활이기 때문에 죽음으로써 삶을 수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수도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지 않았다. 오직 갈릴리의 비바람 속에, 그 짙은 풍진 소겡, 그 민중의 지평 위에서 부활했던 것이다.
수운도 이미 이 문집의 집필자의 가슴속에 부활한 것이다. 쌍무지개를 기다릴 필요 없이 이미 조선의 민중 속에 영원히 부활하리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선생의 장조카 맹륜(실제적으로 동학에 처음 입도한 인물)이 그를 용담의 서원에 안장했다."
나는 이 이상의 위대한 부활의 메시지를 전해받은 적이 없다. 수운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부활은 삶에 대한 확신이다." p244-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