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압력 / 샤리쥔 __ 이천 년의 시공을 넘나들며 불멸의 인물을 탐구하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처음 읽은 게 고교 한문 시간이었다.
시구에 담긴 서정성은 잔잔히 마음을 파고들었으나
그게 왜 그리 환호할 만한 시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샤리쥔의 <시간의 압력>을 읽으면서
귀거래사의 첫 부분 "돌아가자"가
얼마나 절실하고 뜨거운 외침인가 하는 것을 알았다.
책을 읽고 필 받아서 D를 향해 "돌아가자!"
"우리도 자연으로 돌아가자!!"를 외쳤더니
D는 어이없어 하며 '혼자 돌아가세요' 한다.
아무튼 이 책, 대단한 필력이다.
유려한 문장과 스토리텔링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저자가 겸비한 인문적 시선의 깊이와 넓이 때문이다.
후자는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굴원, 조조, 도잠, 이백, 사마천, 이사, 이릉, 상앙, 하완순.
저자는 이천 년의 시공을 관통하면서
이 아홉 명의 인물과 그가 남긴 시와 문장, 고백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들을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살아숨쉬는 인간으로 우리 앞에 부활시킨다.
그들의 다면적인 캐릭터를 예리하면서도 정감 있는 시선으로 추적하면서
그들이 선택했던 인생 행로가 그들 자신에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영감을 주는지를 탐구해나간다.
굉장히 주관적인 에세이이지만 그 주관은 충분한 객관적 사실들로 뒷받침된다.
특히 위대한 인물을 창조한 그 시대의 '시공'을
마치 직접 호흡하기라도 하듯 생생하게 전달하는 점이 놀랍다.
이 정도로 깊이 있게 역사 속 인물이 활동한 공간과 그들의 격동하는 내면 심리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책을 많이 보지 못했다.
이런 책을 읽으면 중국의 인문적 깊이를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
문장도 매우 훌륭하다(번역을 포함하여).
문학적 묘사 속에 역사와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곳곳에 번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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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에 굴원이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각 나라는 망하면 그만이어서 금방 혼란이 끝나 결말이 나버리지만, 오직 초나라만은 나라가 망해도 '혼백'은 남아 있었따. "초나라에 세 가구만 남아 있어도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틀림없이 초나라일 것"이라고 했따. 초나라 사람들은 회왕이 객사했을 때 이 구호를 외쳤다. 여섯 나라 가운데 왜 초나라와 초나라 사람들만이 특별히 '원수를 기억'하고 고국을 그리워할 수 있었을까? 전국 말엽의 천하 대세 외에 아마 문화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국칠웅' 가운데 초나라의 문화적 면모가 가장 선명하고 독특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 역사가 과연 증명하다. 진나라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초나라 사람들이 가장 활발했는데, 진승이 맨 먼저 거사를 일으키고 '장초' 즉 초나라를 확장한다는 것을 구호로 내세웠으며, 항량은 민간에서 초나라 회왕의 손자를 찾아 다시 옹립하여 '초회왕'이라고 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이 항량의 부하였을 때 초사 '대풍가'를 지은 적도 있다. 새로 일어난 한 왕조는 굴원을 포함한 초나라 사람들을 특별히 존중했다.
'이소'는 한바탕 백일몽처럼 허공을 날아 멀리 여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것은 장자의 '소요유'와 유사하다. 그러나 굴원이 하늘에서 고향을 내려다보고 나자 천상의 쾌락 등 모든 것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고 오직 고향, 오매불망 그리운 고향만이 있을 따름이다. '소요유'는 상상 속에서 현실에 대한 초월을 완성하지만, 굴원은 언제나 지상으로 세차게 추락하고 만다. 하늘에서 추락하는 것은 굴원의 초사에 거듭 나타나는 이미지다. 그에게는 중국에서 가장 일찍 형성된, 가장 심각한 향수가 있었다. 그의 고향은 어느 산이나 강, 고을, 성이 아니라 아득히 넓고 먼, 곳곳에 귤나무 숲이 우거진 초나라다. p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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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시인이 역대의 독자들에게 아무리 읽어도 물리지 않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독자가 '자아'를 발견하게 하는 능력을 구비하고 있을 것이다. 완전히 해설하기는 불가능한 굴원은 마치 문인이나 문인이 아닌 이들까지 모두 가져다가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과 같다. 그것으로 가면을 비춰보거나 자신의 가슴에 담긴 진심을 비춰보기도 할 테고, 자기가 무엇을 비춰보고 있는지 모르는 이도 있을 것이다.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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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통치자들은 각종 소설을 대부분 배척하거나 금지했지만, 유일하게 '삼국연의'는 예외였다. (...)
경직되고 썩은 그릇에는 신선하고 웅대한 영혼을 담기 어렵다. 단순하게 노비화된 머리로는 심오한 사물을 느낄 수 없다. 하늘을 보수하는 데에는 영웅이 필요하지만, 오락에는 어릿광대가 필요하다. 어릿광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조조에게는 오락적 가치가 결핍되어 있다. 이미 위대한 영웅의 광휘를 우러러볼 힘이 없으니, 영웅을 간단하게 어릿광대로 만들어 노비들에게 오락으로 제공해주면 된다. 비교적 높은 정신적 경지를 기를 환경적 조건이 없는 수많은 중생은 '삼국연의'와 삼국 관련 연극이 만들어낸 충효와 절의의 짙은 연막 속에서 흐리멍덩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태평 시절의 개'가 누리는 행복한 삶을 체감할 수 있다. 황권체제는 자체의 장기적인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방대한 도덕의 진창에 끌어넣고, 당연히 진창 밖에는 누구도 서 있지 못하게 한다. 도덕의 길이 좁아질수록 모범을 세우고 어릿광대를 만들어내는 데에 더욱 열중하게 된다. 조조가 도덕의 계보에서 최초로 어릿광대로 선택된 까닭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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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잠의 관점에서 자기와 얘기하는 것은 세계와 대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그리고 자신과의 대화는 충분히 진실해야 마침내 세계와의 대화가 된다. 1600년의 세월을 건너 우리가 도잠의 작품을 돌이켜 음미하면 이 점을 더욱 느끼게 된다. 이 비참한 말세에서 시인이 행했던 독백이 시공을 뚫고 우리가 있는 이곳까지 왔다는 것을.
살아 있는 동안 도잠은 한바탕 '생명의 미학'을 실천했다. 진나라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명의 미학' 운동에 투입되어 개별 생명의 기질과 형상, 언어, 행위 등을 직접적인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충성'을 상당할 정도로 자신에게 전향하게 했다. 이것은 중국 황제 권력의 역사에서 절대적인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진나라 이후 천 년 간의 황제 권력 사회를 훑어보면 이것은 확실히 끊어진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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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재적인 측면에서 보면 진흙과 풀뿌리가 뒤엉킨 곳으로 물러간 도잠, 풍년을 기대하며 달밤에 호미 메고 돌아오던 도잠, 술잔 들고 농사일을 얘기하던 도잠은 농부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는 분명히 농부가 아니었다. 그의 정신 영역도 전원을 용납할 만큼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는 '인간' 세계와 작별했으나 이 모두한 세상을 떠날 수도 없었다. 거듭 역사를 돌아보며 선현을 부르고, 계속해서 죽음을 헤아리고 음미하며 사후 및 미래를 멀리 내다보려 했다. 삶에 대해 무감각하게 설명하는 사람은 이런 정신적 동인과 역량을 갖출 수 없다.
내재적 고독은 필연적이다. 차이가 있다면 능동적 고독이나 피동적 고독이냐는 것뿐이다. 사람들이 체험하는 고독은 거의 전부가 '피동적 고독' 즉, 어쩔 수 없는 고독이다. 그러나 도잠의 고독은 능동적 고독이다. 그는 이 고독한 인생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였다. 가장 위대한 문화 창조는 항상 능동적 고독자를 통해 완성된다. 노자와 장자, 사마천, 도잠, 조설근, 루쉰 등은 모두 능동적 고독자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도잠은 더욱 전형적이면서 더 친숙하다. 소란스러운 영혼 속에서는 고품질의 사물이 생장하기 어렵다.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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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채집과 수렵과 유목의 역사를 거쳐서 인류는 비로소 농경을 특징으로 하는 전원에 도달했다. 전원은 인류가 최초로 뿌리를 내리게 해주었다. 전원의 본성은 인류가 요동치는 야만의 생존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소박한 생존으로 진입하여 인류 문명이 비로소 신속한 창조를 누적하는 시대로 진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수백만 년의 누적을 통해 이미 전원은 인류 문화의 유전자가 되었다. 보편적인 향수는 바로 이 유전자가 투사된 것이다. 전원은 인류가 창조한 '인간화된 자연' 또는 제2의 자연이다. 전원의 뿌리는 대자연, 산하와 대지, 하늘과 우주와 관련되어 있으며 당연히 인간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본성과도 관련되어 있다. 도잠은 인류의 전원 정감을 모아 승화시킴으로써 이 정감을 담은 부호 또는 유령이 되었다.
인류는 향수로 뭉쳐진 존재다. 도잠에게는 전원혼이 있었다.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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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이뤗을 때 도잠을 생각하는 것은 인생의 한도를 생각하는 것이고, 실의했을 때 도잠을 생각하는 것은 생존의 위로를 찾는 것이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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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 형태와 생활 방식은 이미 급변했을지라도 인성은 고금에 걸쳐서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또 그렇게 자신한다. 옛사람을 읽을 때는 먼저 '지인론세'와 '지세인론'의 관점이 있어야 "장님 코끼리 더듬는" 상황을 면할 수 있다. 모든 생명은 일정한 시공과 일정한 환경 안에 살 수밖에 없다. 그들과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며, 똑같이 위대하거나 혹은 비루하다. 위대한 시인이나 작가에게는 위대한 시공이 필요하다. 시대가 억지로 부가해준 시공 안에서 자기만의 기호가 새겨진 정신적, 문화적 시공을 창조해내지 못한다면 절대 위대한 작가나 시인이 아니다. p3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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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대자연에서 나왔다. 인성은 자유롭고 순결할수록 대자연과 공명하기가 더 쉬워진다. 이백과 대자연은 천연적으로 연계되어 정보를 교환한 듯하다. 그는 강산의 도움을 받았고, 강산 덕분에 신기해졌다. 그는 황제의 강산을 자기의 미적 강산으로 바꾸어버렸다. 시인에게 강산은 또 무수한 역사의 유령을 싣고 있는 존재다. 옛사람이 지리를 응시하면 종종 역사를 응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백의 많은 산수시는 바로 산수 안에 있는 그 '역사의 영혼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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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은 깊고 어두운 역사 속으로 물러나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인격의 존엄을 역사가의 붓으로 실현했고, 도잠은 전원으로 물러나 적막한 전원을 이용해서 자기의 인격을 무정하게 해치던 무도한 인간 세상을 차단했다. 그러나 이백은 물러날 줄도 '나아갈' 줄도 몰랐다. 그는 자기를 확대하고 또 확대하여 하늘 높이 기세를 떨친 대붕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대붕은 광막한 허무의 그물 속에 영원히 덮히고 말았다. 생존은 항상 자질구레하고 맥 빠진, 미미한 것으로 그를 욕보이고 소모했다. 그는 한 곳에서 포효하고, 다시 다른 곳으로 가서 포효하면서 인생의 종점에 이를 때까지 계속 포효했다. 종점에서 그는 날개 꺾인 대붕이 찾은 포효로 자신의 공연이 끝났음을 선언했다. p33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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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문명에는 위대한 시공이 필요하다. 한나라 사람들은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자기들보다 문명이 높은 곳을 발현하지 못했고, 자기 제국보다 큰 나라는 더욱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런 큰 배경 아래에서 좋은 말을 구하려는 유철의 열정은 극도로 팽창했고, 이를 위해 그는 엄청난 인력과 물력을 아낌없이 써서 서역 깊은 곳까지 장수와 병사들을 연달아 파견했다. 후세는 그의 이런 행위를 비판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사실 이것은 오늘날 첨단무기를 추구하는 것과 유사했다. 그는 자신이 첨단무기를 지닐 자격을 가장 잘 갖추었으니, 가장 훌륭한 말은 당연히 자신의 제국을 위해 치달려야 한다고 여길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마천이 직면한 것은 바로 이런 시대였다. 그의 운명과 재능은 이 시공에서 전개되었다. p34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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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여행에 무척 의기양양했다. 첫 번째 장거리 여행은 대략 삼 년이 걸렸으며, 두 번째 여행을 나설 때는 이미 조정의 젊은 관리 신분으로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런 여행들은 그가 진행한 역사학의 '현장답사'라고 할 수 있다. 비범한 학문적 소양을 쌓은 청년이 또 때맞춰 비범하고 낭만적인 장거리 여행을 함으로써 식견, 문기를 유력하게 단련했으니, 그는 광활한 지리로 인생의 토대를 다진 셈이다. 다정다감한 청년 시절에 서재를 나와 대지의 산하를 마주 대하고 가슴에 담긴 전적과 전고를 여행 중에 일일이 확인했으니, 서생의 마음이 활짝 열렸을 것이다. 이런 시공의 장거리 여행은 한나라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나라가 커지면 심장도 커진다. 제국의 강력하고 큰 심장은 비범함을 지향하는 사마천을 아주 먼 곳까지 보내줄 수 있었다. 사마천은 이 시대를 잘 알았고 또 좋아했다. (...)
사마천은 이미 자신을 이런 인물로 확립했다. 가장 깊고 넓게 여행하고 문화적으로 가장 충분하게 준비된 역사학자. 사마천이 심오한 시선으로 역사를 살펴볼 무렵에 이르자 고대 중국도 위대한 역사 저작의 출현을 고대하게 되었다.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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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무제는 자기의 웅장한 일생에서 언급하기조차도 모자란 이 자잘한 일 즉, 사마천에게 궁형을 내린 일이 뜻밖에 이 땅의 문명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마천은 영혼과 육체 사이의 막막한 황야를 걸어 지났다. 역사의 발전에 따라 그의 창작은 지극히 광활하고 심후한 영역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자신의 감각과 상상을 훨씬 넘어섰다. 2000년 동안 사마천과 '사기'가 겪은 처지는 문화 또는 문명이란 한 그루 커다란 나무이며, 그것은 어떤 양분을 흡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듯하다.
정신의 연옥을 통과한 사람은 자연히 남들이 보지 못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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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는 이사를 평가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때 정신 역량이 강력했던 이사에게는 틀림없이 성인이 될 잠재능력과 충동이 있었을 테지만, 실제로는 성인이 되지 못하고 마귀의 면모로 나타났다. 역사는 세세한 부분까지 빠뜨리지 않는 인성의 실험실이라 할 수 있으니, 어떤 인성인들 검증받지 않았겠는가? 어떤 이들은 운명적으로 얼음 속에 묻히거나 불길에 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사는 얼음에 갇혔다가 또 불길에 태워졌다.
이사가 죽을 무렵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캄캄했던 시기였다. 진나라식의 '어둠'은 하나의 시스템 공학이었다. 이사 자신은 어둠의 시스템을 이루는 한 부분이었다.
진나라를 자기 집의 정원으로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진나라 역시 누구도 자기의 정원에 속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어떤 정신도 고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체제가 뜻밖에도 신속하게 대지 위에 우뚝 서서 높고 혁혁하게 싸늘함을 끼얹었다. p42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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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으로 몽매했던 만주족 청나라의 통치 관점과 수단은 전혀 근시안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토지와 산하를 점유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민중을 신하로 굴복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다스릴 방책이었다. 만주족 청나라는 군사적으로 자신감이 있었으나 한족 문화의 동화력에 대해서는 깊은 두려움이 있었다. 머리를 깎고 복식을 바꾸게 한 것은 한족의 정신적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다. (...)
다른 왕조 교체기에 비해서 한족이 더 길고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청나라는 한족이 아닌 민족의 통치 기간을 가장 길게 유지할 수 있었다. 만청을 제외한 전체 청 왕조에서 한족 문화는 생장을 멈추었다고 할 수 있고, 가치 있는 사상을 생산해낸 것도 지극히 적었다. 만주족의 입장에서는 통치가 성공적이었다. 신해혁명으로 변발을 자르자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만주족이 한족에게 강요했던 이 '쥐꼬리'를 제거하는 것은 뜻밖에도 또 한바탕 지난한 혁명이 되었다.
머리카락을 둘러싼 청나라 역사의 시작과 끝은 상당히 음미할 만하다. 사람을 개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문화적으로 인간을 개조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일단 문화적으로 개조되면 다시 되돌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게 된다. p490-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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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도를 조금 키워본다면 굴원과 사마천, 조조, 도잠, 소식, 이지 등 옛사람들의 인격은 모두 유가의 인격이라고 볼 수 있으며, 심지어 공자에게 반대하는 면모른ㄹ 지녔던 사상가 이지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 사회가 되어 오랜 중화 문명이 낮은 골짝에 빠져버리고 나라가 예전과 같은 나라가 아닌 것으로 변해 유가의 인격은 인격이 아니게 되었고, 나라의 백성은 사람으로서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굴원과 사마천의 인격은 얼마나 웅장하고 격동적이며, 도연명과 소식의 인격은 얼마나 아름답고 웅혼한가! 조조의 인격은 또 얼마나 복잡하고 흥미로운가! 그리고 또 조설근이 있다. 조설근은 문화적으로 가장 몽매했던 건륭 연간에 뜻밖에도 인간과 우주의 미묘한 비밀을 깊이 깨달을 수 있을 듯한 '홍루몽'을 써냇으니, 그 인격의 풍부함은 무한한 상상을 자아내게 한다. 생각해보라. 조설근이 다시 태어난다면 그가 이해하고 용납하지 못할 현대의 철학이나 인격이 어디 있겠는가? 서양에서 소식이나 조설근처럼 인성과 인격이 풍부한 이를 찾기는 결코 쉽지 않으며, 하완순과 같은 위대한 소년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런 위대한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잇는 문명의 생명력이 설마 갑자기 사라질 수 있겠는가? 그 결함이 설마 치명적이겠는가? p503-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