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역사, 인물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 피에리 말베치· 조반니 피렐리 엮음 _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눈물을 훔치며 읽은 책

릴라~ 2021. 7. 15. 12:53


도서관에서 빌려놓고는 책 반납하라는 문자가 올 때까지 잊고 있었다(문자는 반납일 전날에 온다). 500쪽 넘는 두꺼운 책을 하루만에 읽기도 글러서 걍 반납해야겠다 생각하고 책장을 펼쳤다가 한 시간 동안 울면서 읽었다. 꼼꼼하게 다 읽진 않고 듬성듬성 책장을 넘겨보았기에 한 시간 정도 봤지만, 책을 읽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훌쩍거리긴 처음이었다.

이 책은 1943년부터 1945년 사이, 무솔리니에 저항한 이탈리아 파르티잔 201명의 편지 모음집이다. 이들은 총살당하기 몇 시간 전, 혹은 하루 전날에 가족에게 편지를 쓸 기회가 주어졌다. 편지는 몇 줄인 것도 있었고 두세 쪽인 것도 있었으나 대부분 짧았다. 길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 어떤 이는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더 이상 쓸 수 없다고 적기도 했다.

 

나이는 열여덟, 열아홉도 있었고 이십대가 가장 많았고 사오십대도 보였다. 남성이 대부분이었으나 여성도 일부 보였는데 마을에서 파르티잔 연락책을 맡은 분이었다. 편지에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가족의 안부를 묻는 다 엇비슷한 내용이었으나 그 편지 하나하나가 그처럼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몇 마디 말에 담긴 진심어린 애정 때문이었다. 대부분 자신의 죽음으로 가족이 겪을 고통에 미안해하고 꿋꿋하게 살아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선생님한테 보낸 편지도 있었는데 자신의 죽음을 지금 가족에게 절대 알리지 말고 꼭 전쟁이 끝난 후에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다. 

 

이탈리아가 가톨릭 국가다보니 편지마다 신의 가호를 비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죽음을 앞두고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다. 불행히도 운명이 따라주지 않아 스무 살에 죽지만 하느님께로 의연히 돌아가니 부모님은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내용. 이 길을 택한 것에 아무 후회도 없으며 그저 전쟁이 다 끝나가는데 평화로운 시절을 못 보고 죽도록 고생만 하다 가는 게 조금 아쉽다는 내용, 용감하게 살았다고 어린 자녀들에게 전해달라는 내용 등이었다. 자신은 무신론자로 평생 살았는데 죽기 몇 시간 전인 지금 니가 항상 말하던 하느님이 곁에 있다고 확실히 느낀다는 내용도 있었다.

 

역사책에서 이름을 알 법한 위인이 아니라 이름 모를 보통 시민들이 남긴 기록이고, 그들이 죽음 앞에 보인 의연함이었기에 더욱 심금을 울린 것 같다. 각 가정에 전달된 편지였을텐데, 이탈리아가 파시즘이 물러간 이후에 이 기록들을 수집하고 보관한 게 인상적이었다. 

 

500페이지 넘는 두꺼운 책, 201명의 기록,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한 시대를 뜨겁게 지나간 분들의 생의 자취가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이 삶에 무조건!!!!! 감사하게 된다. 살아있음이 기적이라고 느끼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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