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영 평전(김삼웅) _ 근황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이회영 집안이 없었더라면 아마 조선의 양반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을 것이다. 선비 정신,, 이라 흔히 말하지만 선비 정신이 있었다면 나라가 그 지경이 되지는 못했을 터. 관료들이 그렇게 부패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다른 책에서 이분의 삶을 더러 읽었으나 전체적으로 알고 싶어 평전을 빌렸다. 몰랐던 부분들을 몇 가지 확인했다. 과거를 보지 않고 노비들을 풀어주고 새로운 사상에 열려 있는 등 이회영 선생은 당시 권문세족과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는데 그의 사상적 행로가 기존 성리학자들과 달리 양명학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로 하여금 간도, 북경, 만주를 오가게 만든 시대는 그를 아나키스트로 만든다.
이회영 일가 6형제가 모두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떠난 것은 실로 보기 드문 일이다. 그 많은 재산을 처분하는 것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발각되지 않은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그만큼 주변의 신뢰가 두터웠다)
무엇보다도 6형제가 그렇게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이기가 쉽지 않다. 그것도 조선을 떠나 타국으로의 크나큰 모험인데 그렇게 뜻을 모았다는 것이 참으로 훌륭하다. 두세 명이라도 의견의 일치를 보기가 어려웠을 텐데, 가풍이 대단하다 싶었다. 하지만 결국 시대는 가족을 비극으로 몰고 이회영 선생은 조카의 밀고로 붙잡힌다.
이회영 선생은 처음에 임시정부 대신 독립운동 총본부를 주장했다. 임시정부가 생기면 자리를 두고 권력 갈등이 있으리라 예견했기 때문이었다. 선생의 생각은 옳았다. 모든 독립운동 단체를 망라하는 독립운동 총본부가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임시정부는 권력과 계파 갈등 때문에 이리저리 혼선을 빚다가 김구 선생이 맡으면서 비로소 안정되기 때문이다.
경학사, 신흥무관학교, 의열단... 권문세가 출신으로 양명학에 심취한 근황주의자였던 그가 급진적 공화주의자로, 나중에는 아나키스트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면 진정한 자유인이 여기 있다 싶다. 60을 넘어서도 마지막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암살 등을 목적으로 다롄으로 가던 중 조카(둘째 형의 아들)의 밀고에 의해 고문 끝에 옥사한다. 1932년 그가 옥사한 뤼순 감옥은 안중근, 신채호 선생이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다.
평전을 읽으며 이회영 선생의 부인 이은숙 여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회영 선생의 첫부인이 병사하고 두 번째로 맞이한 이가 이은숙 여사다. 이회영 선생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지만 여장부였다. 이회영 선생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을 때 칼을 들고 동지들의 집을 찾아가 협박한 일화도 있다. 이은숙 여사가 쓴 '서간도 시종기'를 전에 빌려놓고 못 읽었는데 이번 참에 꼭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