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독서, 레미제라블
얼마 전 동기들 만났을 때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지금까진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젊음의 에너지로 버텨왔다면 그게 다 고갈되는 시기가 중년이라고.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뭔가가 필요하다고.
“나도 중년이 처음입니다” 예전에 서점에서 책 제목만 보고 읽지는 않은 책이지만 제목엔 공감이 갔다. 청년도 중년도 노년도 어떤 시기건 맞닥뜨리는 이들에겐 다 처음이다. 처음이라서 허둥대고 실수하고 자책한다. 중년에 지혜가 늘고 심리적 안정을 얻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오히려 번아웃이나 정신적 공허를 느끼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허기진 마음을 인스턴트식품이 아닌, 집밥 같은 걸로 좀 배부르게 채우고 싶다는 친구에게 소설 레미제라블을 권했다. 5권 짜리다. 중년이면 이것저것 잡다한 독서보다 한 시대를 관통하는 대서사가 훨씬 만족감이 클 것 같아서 추천했다. 인생의 모든 것이 속속들이 녹아있는 책이다.
작가 위고는 미리엘 주교, 팡틴, 장발장, 마리우스 등 한 인물에 거의 한 권을 할애한다. 개인적으로 1권 미리엘 주교 편이 젤 인상 깊었고 대체로 다 좋았는데 5권, 마리우스랑 코제트 애들 사랑 얘기는 그저 그랬다. 아무튼 이 책엔 평면적인 인물이 없다. 이들이 왜 그런선택을 했는지 다층적으로 파헤치고 변화의 이유를 추적한다. 읽고나면 ‘인간’이 묵직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휴머니즘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작가가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지 않고 중간중간에 자꾸 지거 하고 싶은 말을 하며 끼어드는데 그것도 재미였다. 촌철살인이 많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파렴치한 테나르디에 부부에 대한 작가의 평이다. “그들에게 자기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이의 자식을 미워하는 것과 동의어이다.”
중간에 워털루 전쟁 30쪽씩 나오는 부분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이편이 이래 공격하고 저편이 저래 공격했다는데 지리를 모르니 도저히 이해 안 가서 결국 건너뛰며 읽었다. 책엔 돈 얘기도 엄청 많이 나온다. 이건 몇 프랑, 저건 몇 프랑, 프랑스 생활 물가를 알 정도였다. 물론 이름을 바꿔 시장이 된 장발장이 자기 대신 갇힌 죄수를 살리고자 자수를 할까 말까 밤새워 고뇌하는 대목도 소설의 백미다.
오늘 아침, 캄보디아 사는 친구에게 딱 한 번 읽고 전시용이 된 레미제라블을 부치면서,, 나도 읽은 지 거진 십 년이라 올해 다시 한 번 봐야겠다 싶다. 토지 5권에서 지금 진도 안 나가고 있는데 레미제라블을 먼저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