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수업 이야기

세상을 똑바로 보기

릴라~ 2022. 2. 22. 11:17

전시회를 가면 유명작보다 의외의 것들이 눈길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간송문화전도 그랬다. 예전 서울 DDP와 대구미술관에서 봤는데, 대구 전시는 회화 위주였었고 난 서울 전시에서 놓친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러 갔다. 미인도는 물론 훌륭했으나 놀라움을 안긴 작품은 따로 있었다. 조선 전기 선비들의 그림 두 점.

왜 놀라웠냐고? 그들이 그린 소가 조선의 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뿔을 보면 우리소랑 다르다. 아마 중국?? 그리 대단한 존재라 할 수는 없는 소조차 눈에 보이는 대로 못 그리는 선비들의 정신세계가 당황스러웠다. 관념적 이상향을 그리는 게 당시 화풍이라 해도 소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사대주의라 하기에도 너무 남루했고.. 그런 그들이 한글을 어떻게 대접했을지는 뻔하다.

소도 보이는 대로 못 그리는 사람들이 당대 최고 지식인이었다. 그들이 지닌 건 지식이라기보다는 고정관념, 아집, 편견 쪽에 가까울 듯. 지식을 쌓을수록 어리석어지고 보는 눈이 천진한 어린아이보다 흐려진 거다. 그 아집은 몇 백 년을 갔고 그들의 지식은 실상과 점점 멀어졌다.

배움의 목적은 세상을 ‘내 눈으로’ 똑바로 보는 것이다. 지식은 세상을 제대로 정확하게 보려고 배우는 것이다. 역사를 배우면 역사적 시야가 트이고 국어를 배우면 우리를 둘러싼 말과 글, 언어세계가 눈에 들어와야 한다. 내가 듀이를 읽으면서 교육현상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듯이.

안목의 성장이 배움의 목적이고 그래서 선생이 필요하다. 지식으로 세상이 어떻게 더 잘 보이는지 직접 시범보여주는 사람이 선생이다. 우리 시선을 어떻게 더 높은 데로 위치시켜 어느 방향을 봐야 할 지를 안내하는 사람. 지식은 그럴 때만 힘이 있고 또 재미와 희열이 있다.

교사에게 강제되는 온갖 교육공학적, 행정적 처방들이 정확히 이 방향과 거리가 멀다. 배움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의, 각계각층의 근시안적 요구가 너무 많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것보다 평가하라는 게 더 많고, 온갖 잡다한 연수도 듀이 한 번 읽은 것의 100분의 1도 도움 안 된다. 그게 교사의 안목의 성장에 기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이 복잡해질수록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올해도 다른 모든 걸 대충하고 수업의 본질에 집중해보려 한다. 말이 보이고 글이 보이고 위대한 작품과 작가들이 보이고, 더 넓은 세상 속의 자기가 보이는..

첫시간 수업자료를 고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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