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에세이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 이순자 __ 황혼에 글을 쓴다는 것

릴라~ 2022. 5. 29. 14:44

황혼에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작년에 눈에 띄는 글을 하나 보았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
이혼 후 생활고로 예순 넘은 나이에 취업전선에 뛰어든 분의 이야기인데
피와 땀이 깃든 글은 이런 묵직한 감동이 있구나 할 만큼
오랜만에 보는 에세이다운 에세이였다.

이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고 했다. 불과 일흔의 나이에.
남편의 폭력으로 재산분할을 포기하고 황혼이혼을 하고,
사이버대학 문창과에 등록한 뒤 늦깍이에 평생 꿈꾸었던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걸 알고는
너무 짧게 쓰고 가셨구나 안타까워했었다.

최근 이분의 시와 산문이 휴머니스트에서 유고집으로 엮어 나왔다.
지인이 선물로 보내줘서 알았다.
이분 글을 더 읽을 수 있다는 게 기뻤다.

1953년생, 우리 모친보다 세 살 아래.
그 세대가 젊음을, 결혼 생활을, 이혼을, 그리고 생활고를 헤쳐나가는
모습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똑똑했지만 오빠들의 학비를 벌어야했기에 대학에 가지 못했고
종갓집에 맏며느리 자리에 시집가서 가족을 돌보느라 평생을 보냈다.
바보스러울 만큼 착하게 그 시대를 통과하는 모습이 꼭 '몽실언니' 같았다.
몽실언니를 닮은 저자.

청각장애인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진심을 전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아서 그렇다 한다.
저자는 경계성 청각 장애다.
그래서 그렇게 우직하게 진심으로만 살았던 걸까.

그 몽실언니가 만난 이웃들도 한결같이 우직하다.
스물한 살 때, 명동성당에서 봉사하며 만난 운동권 학생들,
집 나온 자신을 돌봐준 인연이라고 가족도 아니면서 끝까지 성심으로 돌보는 남자,
남편 없이 홀로 남은 남매를 키우려고 두 번이나 씨받이를 한 순분할매까지.
읽으면서 소설처럼 한 시대의 풍경 속에 빠져든다.

죽는 날까지 쓰고 싶다고, 정진하겠다고 말한 대목에서는 울컥…

저자는 돌아가시기 전 해에 기초수급자가 되어
글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타인이 겪어낸 시간을,
그 겉면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볼 수 있는 건
드문 기회이고 언제나 감사한 일이라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기초생활이 해결되었으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사방 벽 길이가 다른 원룸에서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
하나, 둘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은 나를 설레게 한다.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이른 결심을 축하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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