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3~4부(6~10권) 분단과 전쟁, 완독 소감
드디어 이 걸작을 다 읽었다. 3부와 4부는 6.25 전쟁에서 휴전, 그 사이 지리산 빨치산 투쟁과 소탕이 이야기의 줄기다. 스무 살에 읽었을 때는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른 채 그저 이야기의 흡입력에 정신없이 빨려들어가 읽었다면, 지금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건들을 대부분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보도연맹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거제 포로수용소 등 굵직한 사건들을 대부분 알고 있고, 지리산의 주요 골짜기, 백무동, 뱀사골, 피아골, 빗점골, 주요 봉우리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 인근 화엄사, 의신마을 등을 모두 알고 있기에 더 생생하게 읽혔다. 지리산이 지금 올라가도 얼마나 돌투성이고 힘든 길인지, 지리산 겨울이 얼마나 매섭고 추운지 잘 알기에 그곳에서 버틴 빨치산들의 고초야 말할 바 없다.
그곳에서 무려 2만 여 생명이 죽어갔다. 그 빨치산 한 명 한 명에게 살아있는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들의 숨결을 살려놓은 작가의 공로 또한 민족사와 문학사에 태백산맥처럼 우뚝한 자취를 남겨놓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작품 후반부라 할 6~10권엔 아쉬움도 살짝 있다. 심재모를 비롯하여 작가가 소환한 다양한 인물들의 결말을 좀 더 세세하게 알고 싶은데, 작가는 몇몇 인물들의 마지막은 생략하고 염상진 등 빨치산의 최후로 이야기의 막을 내린다.
또 작품 후반부는 계속되는 전쟁 이야기에 그리고 며칠 째 이어진 독서로 다소 집중력이 떨어져 앞 권보다는 듬성듬성 읽기도 했다. 여유 있을 때 찬찬히 다시 보고 싶기도 하다.
공감 가지 않는 대목도 하나 있었다. 전쟁 후 박헌영, 이승엽이 포함된, 북한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숙청이다. 작가는 그 사건을 김일성의 권력 강화로 읽지 않고 김범준의 입을 빌어서 혁명을 위한 희생으로 이해하고 있다. 누군가는 인민을 위해 전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 부분은 솔직히 동의하기 어려움.
사실, 왜 당에서 빨치산에게 지리산에서의 투쟁을 명했는지, 이현상은 왜 지리산을 택했는지 지금도 미스테리하다. 지리산은 고립되어 있기에 사방에서 봉쇄하면 남으로도 북으로도 갈 수 없는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결국 죽음 뿐일 것이기에. 최후까지 싸운 빨치산들은 진정으로 주인공 염상진의 말처럼 현실 투쟁이 아닌 역사 투쟁(지금은 죽지만 뒷날 역사에서 승리한다는)을 선택한 것일까.
그들은 소리없이 역사 속으로 길을 떠났으므로 그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이 묵직한 이야기들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 알 수 있었다.식민지 해방 후 민족사가 겪은 수난과 고통이 저 지리산 골짜기만큼이나 깊고 크고 겹겹의 상처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갈등이 아니라 서로를 죽고 죽이는 극한의 대립으로 치달았다고.
그 극한 대립의 근본 원인은 이념이 아니라 지주와 소작인의 대결이었다. 누대에 걸쳐 농사지은 것을 다 빼앗기며 살아온 농민들은 더이상 그렇게 살 수 없었고, 그들이 다른 세상을 희망하고 그 세상을 얻고자 하는 싸움이 본질이었다. 그 사이 이념 전쟁이 끼어든 것일 뿐.
소설가 김훈이 기자 시절에 탁월하게 쓴 기사처럼 당시 전라도 일대의 좌익 바람은 모스크바에서 온 바람이 아니라 생명의 본능, 절절한 생존권 그 자체였다. 빨치산들은 죽으면 죽었지 그들이 조상 대대로 겪어온 그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래서 끝까지 싸웠다. 그들의 사상과 이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것이 그 자체로 숭고한 싸움임을 보여준 소설이 태백산맥이다.
역사적 사건을 곁에서 변주한 <토지>(아직 덜 읽어서 속단하기는 이르지만)에 비해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정면으로 통과해낸 <태백산맥>이 주는 울림이 훨씬 크다. 문장은 박경리 선생 쪽이 더 우아하고 맘에 들지만. 20세기 최고의 한국소설을 꼽으라면 단연 <태백산맥>이 될 듯...
<토지>를 마저 읽을까, 조정래의 <아리랑>을 먼저 읽을까,, 잠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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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너무나 크고 넓어 어느 지점에서도 한꺼번에 볼 수가 없소. 천왕봉에서 이 노고단까지만 해도 100리가 넘소. 그러니까 지리산은 부분적으로 볼 수밖에 없고, 그 부분도 골짜기 중심으로 나눠서 봐야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소. p.354, 9권
지리산은 산이 산을 품고, 산이 산을 업고, 산이 산을 거느리고 있는, 그 크기도 모양새도 쉽사리 알 수 없는 미궁의 산이었다. p358, 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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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한맺힌 죽음은 임진왜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왕조라는 것이 한심하고, 거기에 붙어서 일신의 영화나 누리자고 도모하는 벼슬아치들 또한 한심하여 왜놈들이 쳐들어왔으나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왜놈들은 방화와 약탈과 살인을 일삼으며 경상도지방을 휩쓸고, 전라도땅도 더럽히려고 들었다. 그런데 그놈들이 섬진강을 따라 전라도땅으로 들어오는 외길목이 바로 피아골 입구였던 것이다. (...) 그리고, 갑오년에 일어난 농민전쟁으로 또 피아골의 물은 피로 물들었다. 그때도 농민들은 목이 뎅겅뎅겅 잘리며 계곡물에 곤두박여 온몸의 피를 남김없이 쏟아내고 죽어가야 했다. (...) 그리고 여순사건 때도 많은 사람들이 섬진강을 건너 피아골로 쫒겨들어와 피를 뿌렸던 것이다. p8~9, 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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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하지 못한 자에게 역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각을 기피하는 자에게 역사는 과거일 뿐이며, 자각한 자에게 비로소 역사는 시간의 단위구분이 필요 없는 생명체인 것이다. 역사는 시간도, 사건도, 기록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저 먼 옛날로부터 저 먼 뒷날에 걸쳐져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명체인 것이다. 올바른 쪽에 서고자 한 무수한 사람들의 목숨으로 엮어진 생명체. 그래서 역사는 관념도, 추상도, 과거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뚜렷한 실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크는 것이다. 솥뚜껑 같은 사람의 힘과 의지로 역사는 크는 것이다. 솥뚜껑은 하나가 아니었다. 솥뚜껑은 수없이 많았다. p294, 10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