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에세이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릴라~ 2023. 5. 6. 19:53

첫 장면이 강렬하다. 갑작스런 지진으로 자신이 수집한 모든 물고기 표본들이 잔해로 돌아가려는 그때, 침착하게 그 잔해들 틈에서 남아있는 것들을 추려서 다시 자기 일을 시작했던 과학자. 이 첫 챕터를 읽었을 때는 한 위대한 과학자의 삶을 다루는가 했었다. 주인공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의 팀과 함께 전세계 물고기의 5분의 1에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주변 세계와 자연의 경이에 매혹되었던 소년이 꿈꾸었던 과학자의 길로 접어들었고 놀라운 인내심과 열정으로 드넓은 세계를 탐험하며 자신의 업적을 쌓아올려가지만 그가 말년에 몰두했던 것이 '우생학'이라니. 그의 스승 아가시와 마찬가지로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이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 믿었던 학자의 최종 결론이 우생학이라니... 그리고 인류의 쇠퇴를 막기 위해 그가 보기에 불완전해 보이는 사람들을 '불임화'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그토록 사회를 설득했다니...  그 폭력적인 결말이라니...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챕터는 더욱 놀라운 결말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단지 은유나 상징이 아니다. 80년대 이후 분기학의 축적된 연구에 힘입어 더이상 '어류'라는 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에 살고 몸에 비늘이 덮혀있는 것 말고 각각의 물고기들은 진화론적 공통점이 없다고 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물고기 내부의 장기, 폐나 심장 등 기관의 구조가 더 중요하고 그 구조들을 통해 같은 계통인지 다른 계통인지를 밝히게 된다. 포유류나 파충류와 달리 어류는 그들을 공통적으로 묶을 성질이 없으며 각각의 물고기들은 저마다 다른 종에 귀속된다는 것이 오늘날 학문의 결론이라 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놀라운 제목을 다시 되뇌이며 책장을 덮자, 이 책이 전하는 가장 묵직한 함의가 전달되었다. 인간이 보는 자연, 인간이 구분 지은 자연, 인간이 제 맘대로 구획을 나눠놓은 그런 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성별 차별이건 인종 차별이건, 그 어떤 종류의 차별도 인간이 제멋대로 규정한 것이지 자연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윈의 진화론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강한 것만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생물종은 변이를 통해서 생존에 성공했다는 것이고, 그 변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생물종의 '다양성'이다. 우리가 우리 멋대로 어딘가 부족하거나 모자라다고 판단하는 성질들이 실은 풍요로운 다양성의 일부이기도 한 것이다. 

 

소설처럼 예기치 못한 반전, 우리가 과학이라 믿는 것들 속에 감추어진 비합리성,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험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하지만 알라딘 평을 보면 이 책은 호불호가 좀 갈리는 것 같다. 첫 번째 이유는 이 책이 레즈비언인 저자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쓴 책이라는 주장이다. 자기 존재가 사회 다수가 정상이라고 하는 것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면,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내게는 저자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과 저자가 책에서 밝힌 일탈이 독서에 몰입하는 데 방해되지 않았고, 저자가 레즈비언인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이 책을 썼다면, 그 덕분에 이런 책이 나왔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이 책에 대한 불호를 표시하는 의견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의 생애와 과학적 사실만을 조명하는 책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삶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같이 서술되어 있는 책이라는 데서 기인한다. 평전도 아니고 학술서도 아니고 개인적 에세이도 아닌, 그 모든 것이 종합된 이야기. 이러한 장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독자도 있을 법하다. 나는 이런 장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바깥 세계에 대한 우리의 모든 탐구는 결국 개인적 삶의 문제, 저가 내면의 가장 깊은 호기심과 의문에 닿아 있다. 그것을 책에 직접 써넣느냐, 아니면 여백으로 두고 탐구 주제에 관해서만 서술하느냐의 차이일 뿐.  

 

과학적 사실이 깊이 있게 서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누구나 한 번쯤 의문을 품는 주제, 어쩌면 너무 단순하고 뻔해 보이지만, 어떨 때는 가장 무겁고 심오한 물음이기도 한 주제. 이 무한한 우주에서 한 점일 뿐인 우리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작가는 대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오랜만에 참 좋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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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을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행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질척거리는 변명도, 죄도 아니다. 그것은 다윈의 신념이었다! 반대로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만 하고 그 주장만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거짓이다. 그건 너무 음울하고 경직되어 있고 너무 근시안적이다. 가장 심한 비난의 말로 표현하자면, 비과학적이다." p226-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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