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괴산의 시골버스 기사입니다 / 한귀영] __ 읽는 내내 힐링이 되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
내가 시골버스를 타본 기억은 손에 꼽는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2008년 무렵, 제주올레를 걸을 때였다. 공항에서 성산까지 2시간 가까이 버스로 이동했는데 제주 할머니들이 쉴새 없이 오르셨다 내리는 그 버스 안에서 들리는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지리산둘레길과 지리산 백무동 주등산로를 찾아갈 때의 기억이 몇 있다. 그 노선은 정말 손님 몇 명밖에 없는 할랑한 버스였다. 전세 낸 듯한 텅 빈 버스에서 시골 풍경을 즐긴 기억이 있다.
이 책 <나는 괴산의 시골버스 기사입니다>는 시골버스 운행을 하며 겪은 소소하고 재미있고 웃프기도 한 에피소드들을 어찌나 맛깔나게 풀어내셨는지, 마치 내가 기사님과 함께 버스에 동행한 기분이었다. 기사님과 내내 그 옆에서 함께 풍경을 바라본 것처럼 사람 하나하나, 사건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게 전달된다. 글을 대단히 잘 쓰는 분이다(웬만한 작가보다 훨씬 나음). 너무 쉽고 담백하면서도 묘사가 실감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읽는 내내 힐링이 되었다.
이 버스에서 기사님이 만나는 분들은 하나같이 자차로 운전을 하지 못하는 시골 토박이 노인 분들, 고령자거나 어린 학생들이다. 이분들에겐 시골버스가 일상에서는 자식보다 소중한 삶의 교량인 셈인데 그러다보니 민원도 폭주한다. 난 시골버스 관련하여 그렇게 민원을 많이 넣는 줄 몰랐다. 하루에 한 번 버스가 다니는 수가 많고 이걸 놓치면 볼 일을 못 보니 1분만 빨리 출발해도 난리가 난다. 그 민원에 대응하는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시골 노인분들과 주류사회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분들에 대한 연민이 생긴다. 그곳에서도 오늘 삶은 꽃피고 있고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
저자는 버스에서 목격한 그 모든 삶의 이야기들을 너무 아프지 않게,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몇 꼭지는 너무 웃겨서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가진 것이 많지 않은 분들이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주었다. 오랜만에 '힐링'이 되는 책을 만났다.
우리가 자신의 삶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나 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시선을 돌릴 때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며 괴산의 시골버스에 탑승하는 행운을 누리시길 바란다. 시골버스를 타고 괴산 구석구석을 누빈 듯한 여행의 경험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