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역사, 인물

허선행의 한글 아리랑 / 조철현 __ 우리 시대의 선구자

릴라~ 2023. 7. 29. 19:41

'선구자'란 단어가 있다. 
어떤 일이나 사상에 있어 그 시대의 다른 사람보다 앞선 사람을 말한다.
1991년의 광주가 그랬다. 
아직 5.18의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고 
과거사가 정리되지도 못한 시점이지만
광주의 지역민들은 자신처럼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역에서 기금을 모아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후손들을 위한
광주한글학교를 세 곳 세운다. 
그리고 이듬해 아홉 명의 청년이 중앙아시아로 파견된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허선행씨다. 
 
당시 전남대 사범대를 갓 졸업한 27살의 허선행씨는
광주한글학교의 대의에 공감해 청년의 순수한 포부를 품고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음에도 생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머나먼 우즈베키스탄으로 봉사를 떠난다.
그리고 우리말을 가르쳐줄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던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는 고려인 후손들을 만난다. 
당시는 구 소련 붕괴 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막 수교를 맺은 시점이라
그간 양국간 교류가 없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고려인들의 열정에 반해 허선행씨는
다른 한글학교가 예산 문제로 모두 문을 닫고 봉사자들이 다 떠났을 때도
홀로 우즈베키스탄을 떠나지 않았다.
과외, 통역, 기업 후원 요청 등 온갖 일을 도맡아 하면서
실로 그 자신의 힘으로 한글학교를 꾸려간다. 
후원을 위해 '광주한글학교'란 이름을 '세종한글학교'로 바꾸는데
오늘날 우리 정부가 운영하는 세계 곳곳의 한글배움터,
세종학당이란 이름을 맨 처음 쓴 곳이
바로 우즈베키스탄의 광주한글학교였다.
지금은 이 학교는 2011년부터 우즈베키스탄 타슈겐트1세종학당으로 지정되어
우리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었지만
그때까지 20년간 허선행씨가 걸어온 발자취는 
끊임없이 난관과 장벽을 넘어온 삶 그 자체였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8천 명 이상의 제자들을 길러냈고
그들은 지금 중앙아시아 한류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인이 누구인가. 
일제강점기 연해주 일대에 정착한 한국인들을 
우리는 고려인이라 부른다. 
처음에는 식민지 조선보다 나은 조건에서 삶을 꾸려갈 수 있어서
많이 이주했지만, 조선인과 일본인 스파이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탈린은 17만 명의 조선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다. 
모든 터전을 잃고 시베리아횡단열차에 강제로 실려
그들은 중앙아시아 곳곳으로 흩어지는데
그중에서 조선인들이 가장 많이 정착한 곳이 바로 우즈베키스탄이다. 
나라 잃은 설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 뿌리에 대한 관심,
이 모든 것들을 켜켜이 간직한 고려인들과의 만남이
허선행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이유는 아마도 그 또한
광주 출신으로 그 지역민만이 느끼는 아픔과 차별을 겪었고
그래서 고려인들의 처지에 누구보다 잘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변방의 한 청년이 고려인들의 아픔에 공감하여
국가도 하지 못한 대단한 일을 해낸 1992년부터 2022년까지
30년의 역사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
500쪽의 분량에 걸맞게 자세한 자료와 조사가 이 책의 장점인데
저자가 기자여서일까, 약간 보고서 느낌으로 기술된 책이라
스토리텔링 부분에서는 좀 아쉬운 면도 있었다.
좀 더 소설 같은 문체로 썼으면
보통 사람이 읽기에 좀 더 편할 것 같아 그 점이 살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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