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다큐

[넷플 다큐] 어른 김장하

릴라~ 2023. 8. 2. 17:53

내 주위에, 그리고 가족 중에도 자수성가한 이가 있어

어느 정도 부를 이룬 인물들이 있다. 

하지만 자신이 부유해진 이유가 자신의 재능과 노력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그래서 사회에 일정 부분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다들 세금 많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어떤 영역에선 세금이 과한 부분도 있을 것이지만

모든 관심이 세금인 것은 확실히 아쉽다고 볼 수 있다.) 

 

최연소 나이로 한약사 시험에 합격하여

스무 살부터 가게를 열었던 한 청년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진주에 열었던 남성당 한약방.

약값이 싸기도 했지만 잘 나았기 때문에

번호표를 받아야 할 만큼 사람이 미어터졌다 한다.  

그렇게 번 돈을 사회에 모두 돌려주었다. 

1944년생 어르신 김장하다. 

그분은 말한다. 

자기가 번 돈은 아픈 사람들이 한 푼 두 푼 지불한 돈이기에

결코 함부로 쓸 수 없었다고. 

 

진주 시민사회에 그 어르신의 손길이 거쳐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진주의 형평운동(일제강점기 백정의 신분해방 운동) 기념사업,

문화예술사업, 진주신문, 명신고를 설립해 국가에 헌납하는 등

평생을 자신의 부를 세상을 위해 쓰신 분이었다. 

지역서점과 극단도 후원하고 여성단체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명신고는 그가 마흔 무렵인 1983년에 세워 1991년에

국가에 기부채납했는데, 학교 설립에 들어간 비용이

당시 돈으로 백 억이 넘었다고 한다. 

2021년 마지막으로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면서

남은 돈 34억은 경상대에 기부했다.

그리고 수많은 학생들에게 개인 장학금을 지급했다. 

자신이 번 모든 것을 지역사회에 돌려준 어르신이다.

다큐를 보는 누구나 신선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으리라.   

 

다큐에서 아쉬운 건 이분의 개인적 목소리를

충분히 들을 수 없다는 거였다. 

워낙 겸손해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말을 극도로 아끼는 분이기도 하고

걸음을 보니 파킨슨인지 뭔지 지병이 있어서

말씀이 좀 느려진 듯 느껴져서 어쩔 수 없었나 싶기도 했지만 

다큐 PD가 좀 더 개인적인 질문을 많이 하고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더라면 하는 게 아쉽다. 

이분은 삶의 철학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몇 장면의 영상으로 유추해보자면

이분이 진주 형평운동에 많은 애정을 갖고 후원하신 걸 보면

정말로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바라셨던 것 같다. 

그 연장선상에서 호주제 반대 등의 여성운동도 후원하셨고,

문화예술과 교육사업, 지역언론 등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일들을 사람들이

항상 호의의 눈으로 바라본 건 아니다.

최근까지도 '빨갱이'냐고 국가에 반성하라는 이상한 전화가 걸려왔으니

70-80년대엔 어땠을까 나름 짐작이 가기도 한다.

실제로 세무조사를 당하기도 했고 (털어도 먼지가 안 나옴)

전교조 사태가 한창일 때 명신고는 전교조가 가장 많은 학교였으나

한 명도 해임되지 않았는데, 나름 고초가 컸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서 보는 김장하 어르신은

천성이 겸손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뭔가

세상에 자기를 알리는 것에 방어적인 태도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 점이 매우 안타까웠다.

이분은 자기 사상과 철학이 있는 분인데

명신고를 국가에 헌납하기보다는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설립자의 교육철학이 살아있는 학교로 가꾸어가셨으면 더 좋았겠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토록 열렬한 실천을 한 이면 그만큼 뜨거운 가슴을 지녔을 터인데

그분에게 자신의 신념을 설파할 자리가 너무 적었다는 생각이다.

설립 초부터 학교가 안정되면 국가에 헌납한다고 언급한 바 있지만

10년도 안 돼 학교를 넘긴 것은 너무 이른 감이 있으며

어르신이 밝히지 않는 다른 정치적인 이유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이분의 삶에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으면서도

이분이 그토록 지역사회에 헌신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세적이고 방어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 과거 뿐 아니라 현재도 그런 것에

깊은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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