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문학이 필요한 시간 / 정여울
마음에 남는 몇몇 문장과
읽고 싶은 한 권의 책, 니콜 크라우스 <사랑의 역사>
다시 찬찬히 뜯어보고 싶은 책, 미하엘 엔데의 <모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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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더 많은 아름다움을 경험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햇살이나 공기처럼 저절로 흡수할 수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문학이나 음악이나 그림처럼 반드시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여 찾아다녀야 할 세상의 아름다움도 있다. 무언가를 사랑할 권리를 회복하자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마저 즐기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설레는 마음으로 출간을 기다리고, 기갈 들린 사람처럼 출간 첫날에 책을 사서 한 문장 한 문장 아껴 읽다가 다 읽고 나면 벌써 다음 책을 기다리기 시작하는 마음. 이 소설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움과 빨리 다음 소설을 읽고 싶은 조급증마저 우리가 문학을 통해 느끼는 아름다움의 일부다. 삶에 대한 설렘을 회복하는 것, 세상에 대한 놀라움을 되찾는 것, 이 모든 것을 느끼는 감수성의 심장을 되찾는 것. 그것이 문학을 통해 우리가 쟁취할 수 있는 생의 기쁨이다. p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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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누구보다 따스하고 다정한 왕자의 손길로도 결코 만져주지 못하는 아픔이 있으며, 아무리 보살피고 또 보살펴도 미처 보이지 않는 타인의 슬픔이 있다. 지상의 모든 슬픔에는 사각지대가 있다. 네모난 그릇의 모서리 부분을 닦기가 가장 어려운 것처럼 아무리 꼼꼼히 씻어도 닦이지 않는 눈물이 있다. '문학 한다'는 것은 바로 그 슬픔의 사각지대를 끝까지 발굴해 모두가 볼 수 있는 언어의 햇빛이 쏟아지는 세상으로 데려오는 일이다. 아직 보살피지 못한 슬픔의 사각지대가 남아 있는 한, 작가는 결코 목마른 창작의 붓질을 멈출 수가 없다. 자비는 행복한 왕자에게서 제비에게로 아름답게 전염되며 어떤 약도 없는 아름다운 질병이 된다. 결코 낫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마음의 질병, 자비. 그것이 문학이 내게 가르쳐준 자비의 찬란한 빛이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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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내 문학의 뿌리, 엄마를 생각한다. 지적이고 우아하게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나의 엄마. 맛있는 음식으로밖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데, 이제 요리하기가 너무 힘들어 자식에게 밥 한 끼 해주고 나면 골골 앓는 우리 엄마. 우리 모두는 그런 눈물겨운 밥을 먹으며 다시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존재들이었다. 우리를 살리는 건 항상 이렇게 약자들의 노동인데, 우리는 자꾸 강자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치다가 진정 소중한 것들을 잊어버린다.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