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에세이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 향봉

릴라~ 2023. 11. 20. 10:05

 

어느 젊은 부부가 있었다. 일곱 살 외아들이 귀신이 보인다며 헛소리하고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병원도 가고 귀신 쫓는 굿을 해도 소용 없었다. 다른 무당을 찾아가니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단명하는 사주라고 했단다. 

 

향봉 스님은 그 아이 부모에게 큰 절을 한다. 이 아이는 자라서 나라의 큰 일꾼이 될 아이라서 그런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절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아이 어머니는 당황하여 이 아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냐고 묻는다. 스님은 답한다. 백새에 이를 만큼 장수를 타고난 아이라고. 

 

그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스물 두 살인 지금 의대에 다니고 있다 한다. 

 

한 시간이면 후루룩 다 읽는 가벼운 에세이지만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잔뜩 박혀 있다. 도력이 높은 큰스님의 책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권위를 다 뺀 담백하고 유머러스한 문장들이 이어진다. 좋은 말 많이 쓰려고 부언하거나 첨언한 기색이 전혀 없다. 솔직하고 유쾌하고 그러면서도 분명하다. 

 

사자암의 향봉 스님은 공양주를 두지 않고 삼시 세끼를 스스로 다 지어드신다 한다. 붓다의 설법 어디에도 전생과 내생의 이야기가 없다고 불교야말로 현생, '오늘'의 종교라고 강조한다. 당신의 전전생 이야기라며 초등학교 시절 일화를 이야기한다. 지나간 모든 것은 전생이고 다가올 모든 것이 내생일 뿐 귀신도 영혼도 없다는 것이다. 

 

유쾌하고 발랄하면서도 문득문득 스님의 번민과 노고가 느껴지는 문장들을 따라가노라면 세상만사가 지금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지금 이 순간부터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이 가만히 가슴을 파고든다.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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