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가족 관계, 흐름과 고착 사이

릴라~ 2024. 11. 17. 10:21

집에 들르니 모친이 고민이 있다 하신다.
감 수확은 다 끝났지만
가지치기 등 밭 정리가 남아 있었다.
뒷정리도 일이 꽤 많다고 한다.
근처 농사짓는 노부부가 오셔서 해주셨는데
당연히 일당 드릴려고 도움 받은 건데
한사코 거절하는 바람에 일당 못 드리고..
뭘 선물해야 하나 고민중..

떡 할까?
당뇨 있으면 안 드실텐데? 홍삼엑기스 어때?
그거 안 먹는 사람은 안 먹을텐데, 블라블라..

올해 감 농사는 풍작이었다.
시월엔 매주 감을 땄다.
내가 일손을 거들지 않았다면
모친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을 게다.
일을 쉬어서 올해만큼 감따기에 열중한 해가 없었는데
와, 몸살 날만큼 힘들더라.

아파트 대단지 바로 옆 그린밸트
이 양지바른 좋은 땅을 사놓고
아빠는 다음 해 돌아가셨다.
이 땅에 씨 한 번 못 뿌린 채..
7년 이상 보유해야 세금이 적기에
이제 엄마는 땅을 내놓았다.
불경기라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인다는데
얼른 팔려야 할 텐데…

아빠가 겨울에 돌아가셨기에
이 밭에서 첫봄을 맞았을 땐
찬란한 햇살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는데
슬픔은 조금도 즐어들지는 않았지만
조금 조용해졌다.
슬픔이 말수가 줄어들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문득, 내가 그 사건을 감당하지 못했던 건
단지 죽음이라는 사건이 지닌 비통함
그 때문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빠랑 넘 오래 같이 살다보니 우리 관계가
내가 마흔 다 될 때까지 아빠와 아이였다.
성인과 성인으로 관계 맺지 못한 것도 맘 아프지만
결정적으로 아이였기에 부모의 죽음을
그것도 갑작스런 죽음을 감당하지도 소화하지도 못했던 것.
성인과 성인이었으면 조금 다르게 반응했을 것 같기도 하다.

가족관계가 그래서 어렵다.
각자 성장하면서 계속 관계 양상이 달라져야 하는데
관계가 단단하게 고착되면 다른 인간관계보다
더 개인의 성장을 가로막기도 한다.
심리적으로 강하게 결속되어 있기에
고착되기도 더 쉽고.
주어진 역할과 캐릭터에 고정되지 않고
관계 속에 신선한 샘물이 흘러가게 하는 것
굉장히 어려운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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