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인연, 의붓어머니 같은 수녀님

릴라~ 2024. 11. 20. 15:58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이가 부모인 건 틀림 없다.

내게 무슨 일이 닥칠 때 가장 진심으로 염려하고 목숨을 걸고

나를 구할 이도 부모나 남편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은 많은 부분 걱정으로 표현된다. 

사랑하는 만큼 걱정을 표현하고 그것이 자녀의 성장을 방해할 때도 많다.

불안은 쉽게 전염되니까,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불안이 자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다른,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걱정이 포함되지 않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이가 바로 스승이리라. 

그런 스승을 만나기란 쉽지 않지만, 때론

사려 깊은 친구가 그 역할을 한다. 

 

오랜만에 레아 언니를 만났다. 대학 때부터 인연이 있었던 언니,

지금은 수도자의 길을 걸은 지 오래다. 

이분들이 세속의 사람들과 다른 지점은 딱 하나다.

걱정 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믿어주는 그런 우정을 보여주는 것. 

 

나이가 몇 살 차이밖에 안 나니 우정이라 표현하긴 했지만

그 다정한 챙김과 사려 깊은 눈빛과 애정이 담긴 조언을 듣노라면

약간 의붓어머니 같은 기분이 든다. 

수녀님이라서 더 그럴 것이다. 

수녀님들도 개인의 성격이 다 달라서 전체가 어떻다 말하긴 어렵지만

좀 엄격하고 딱딱한 인상을 주는 분들도 있고

말 그대로 따사롭고 자애로운 눈길을 주시는 분들도 있다. 

레아 언니는 후자다.

독신 여성이 이처럼 따스하고 자상한 아우라를 풍기는 이유는

소녀적인 감수성과 사사로운 이해 관계 없는 순수한 시선이

기도로 일과를 시작하는 오랜 수도 생활 속에 무르익어서 그런 것 같다. 

 

레따에서 커피 마시고 헤어졌는데,

레아 언니로부터 톡이 왔다. 담날 새벽에 좀 나오라고... 

우리 둘 사이 중간쯤 되는 지하철역에 나가니

언니 모친께서 손수 끓이신 추어탕을 손에 들려주었다. 맛보라고.

돌아와서 두 끼를 황송하게 먹었다. 팔순 노인께서 수녀인 딸이 휴가 나왔다가

본당으로 돌아갈 때 가져가라고 추어탕을 끓이셨단다.

좀 많이 끓였다고 언니가 내 것까지 챙겼다고 한다. 

 

이러니 의붓어머니가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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