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파티 드레스 / 크리스티앙 보뱅] __ 독서에 대한 명상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누군가 책갈피에 꽂아두고 잊은 듯한 낙엽 하나에 눈길이 간다. 가을 어느 날, 낙엽 지는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은 걸까...
이 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시적이고 독창적이며 함축적인 에세이다. 독서에 대한 일종의 명상이라고나 할까. 독서를 명상의 경지로 끌어올린 내적 증언이자 가장 성스러운 예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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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때론 어떤 사람들에게, 더 적은 수의,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름 아닌 독자들이다. 가던 길을 남들이 포기하는 여덟 살 혹은 아홉 살 무렵에 이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독서의 길로 뛰어드는 그들은 언제까지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그 길이 끝이 없음을 알고 기뻐한다. 기쁨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그들은 출발점에, 첫경험에 집착한다.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경험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 지점에 머무르며 삶이 다해가는 순간까지 책을 읽는다. 고독을 발견했던, 그러니까 언어들의 고독과 영혼들의 고독을 발견했던 첫 경험의 언저리에 머문다. 그들은 황홀감에 취해 세상에서 물러나 이 고독을 향해 간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고독의 골은 깊어진다. 더 많이 읽을 수록 아는 건 점점 더 적어진다. 이 사람들이 작가와 서점, 출판사, 인쇄소를 먹여 살린다. p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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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면 손도 대지 않는 부자들이 있는가 하면 독서에 송두리째 마음을 빼앗긴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 누가 가난한 사람이고 누가 부자일까. 누가 죽은 사람이고 누가 산 사람일까? 답변이 불가능한 질문이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들은 과묵한 무리를 형성한다. 이 사람들에겐 물건이 말을 대신한다. 돈이 있으면 가죽 좌석을 갖춘 차를 소유하지만, 돈이 없으면 레이스 깔개 위에 시시한 장식품이나 올려두게 된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버리고 대신 몽상의 영과 불길 같은 바람을 들여놓는다. 책을 읽지 않는 삶은 우리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는 삶이다.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들처럼 온갖 잡다한 것들의 축적으로 질식할 듯한 삶이다. 문을 밀친 순간 쓰레기가 천장까지 넘쳐나는 걸 보게 되는 집 같다고나 할까. 돈이 있는 사람들의 흰 손이 있고, 몽상하는 사람들의 섬세한 손이 있다. 그런데 다른 한 편에는 손이라고는 아예 없는 사람들. 황금도 잉크도 박탈당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글을 쓰는 것이다. 오직 그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요컨대 타자를 지향하는 글이 아니라면 흥미로운 글일 수 없다. 글쓰기는 분열된 세상과 끝장을 보기 위한 것이며, 계급체제에 등을 돌림으로써 건드릴 수 없는 것들을 건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 사람들은 결코 읽지 않을 한 권을 책을 바로 그들에게 바치기 위해서이다. 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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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없는 세상에 그들은 출구를 만들어낸다. 세상 모든 언어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이름의 문이다. 하나뿐인 남자와 하나뿐인 여자를 부르고, 이 노래의 별 속에 사로잡힌 대지는 빙글빙글 선회하는 그 목소리에 싸여 환한 빛을 발한다. 바로 그 순간, 넋을 잃은 채 꼼짝도 하지 않는 인간의 새로운 형상이 탄생한다. 붉은 부재 위로 몸을 숙인 채 흰 눈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인간. 세상 그 무엇에도 욕구가 당기지 않는 인간. 그러니 그가 자신의 사랑을 묵상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둘밖에.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몇 세기고, 그를 가만 내버려 둘밖에.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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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책은 그 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시작된다. 어떤 책이 위대하다는 건, 그 책에서 점차 드러나 보이는 절망의 위대함을 의미한다. 책 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책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한참을 가로막는 그 모든 어둠을 의미한다. 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 책이 있기 전, 글이 써지기도 전에 모든 것이 시작된다. (...)
당신이 머릿속에 그리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거나 역사적인 진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런 진실이 아니다. 객관적인 눈으로 차분히 행하는 독서가 완벽한 독서는 아니다. 그런 독서가 핵심에 이르는 독서는 아니다. 그런 독서는 책의 검은 광맥을 건드리지 못한다. 책에 담겨 있고 당신의 눈과 삶의 저변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반짝이는 진실의 핵을 건드리지 못한다. 당신의 눈 속, 삶의 저변. 즉 근원에 가 닿는 또 다른 독서만이 당신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당신 안에 자리한 책의 뿌리로 직접 가닿는 독서, 하나의 문장이 살 속 깊은 곳을 공략하는 독서. p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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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서도 아버지와 딸이 전부다. 나머지는 언어다. 날이 선 피투성이 문장. 빛이 사라진 헐벗은 심장. 신경을 두드리는 잉크의 비. 이 언어가 현기증을 일으킨다. 영혼의 우물 속에 던져진 돌맹이처럼, 당신을 당신 자신의 어둠 속에 난데없이 데려다 놓는 한 줄기 빛처럼. 이 문장들이 당신 안에 울려 퍼지자 심연이 입을 벌린다. 책의 페이지들이 한 장씩 넘겨짐에 따라 서서히 현기증이 느껴진다. 지나치게 명징한 말들이 불러일으키는 현기증이다. 폭풍우가 하늘 한 모퉁이를 두고 그러듯, 마음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난폭한 힘들이 불러일으키는 현기증. 이 17세기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을 짓듯 말을 한다. 불필요한 장식물은 걷어내고 균형에 몹시 집착한다. 그들은 신선한 언어로 말한다. 그들의 정원 사이로 난 오솔길들처럼 선명하고 그들의 대리석 분수대처럼 번득이는 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성 안에 살듯 이 언어 속에 거주한다. p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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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행복처럼 피아노 역시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최근의 발명품이다. 세상에 피아노나 책, 행복이 항시 존재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말과 정령, 갈대밭의 바람은 언제나 있어 왔다. 태초부터, 아시아의 초원과 광막한 숲과 푸른 호수에서 신이 탄생한 무렵부터.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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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또 다른 유형의 인간은 어떤가. 그는 무용한 인간이다. 신기할 만큼 무용하다. 그는 손수레를 발명한 사람도, 신용카드나 나일론 스타킹을 발명한 사람도 아니다. 그는 절대로 무얼 발명하거나 하지 않는다. 세상에 무엇 하나 보태지도 감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는 세상에서 물러난다. 아니, 자신이 세상에서 물러났음을 안다. 결국 같은 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 사람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생각이라는 가축 떼를 몰고 가는 사람이다. 그는 온갖 언어로 꿈을 꾼다. 이런 사람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그는 사막의 거주자들, 그 푸르른 사람들을 닮았다. 몸은 태양 빛을 가려주는 천으로 물들고 심장은 파랗게 굳어 있는 사람들. 활활 타오르며 반란을 충동질하는 그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그가 쓰는 책을 통해서도 그를 알아볼 수 있다. 당신이 책을 읽는 건 바로 그 사람을 보기 위해서다. 유랑의 시간을, 잉크의 장막 밑에서 어떤 문장의 산들바람을 느끼기 위해서다. 당신은 한 채에서 다른 책으로, 이 야영지에서 저 야영지로 옮겨간다. 그렇게 독서는 끝이 없다. 사랑이 그렇듯이, 희망이 그렇듯이, 실현의 가망 없이.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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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날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를 읽는다. 당신이 살았던 유년의 고장,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당신은 고향 땅을, 산업화로 우울한 풍광을 띄게 된 프랑스의 이 소도시를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지만, 아주 짧은 여행조차 겁을 내지만, 당신에게 러시아는 평생토록 유년의 땅, 꿈의 땅이었다. 그 고요한 설경과 양털처럼 희고 부드러운 목소리에서 어김없이 당신의 유년기와 재회하곤 했었다. 엄청난 허기를 담고 있는 두꺼운 책, 삶을 빼닮은 그 이야기 속에는 무수한 얼굴 아래 무수한 촛불이 흔들리고 있다. 말과 몸짓, 편지. 말과 화재. 영혼의 숲속에 나지막이 번지는 불길.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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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전혀 혹은 거의 쓸모가 없다. 사랑이 그렇고 놀이가 그런 것처럼. 그건 기도와도 같다. 책은 검은 잉크로 만들어진 묵주여서, 한 단어 한 단어가 손가락 사이에서 알알이 구른다. 그렇다면 기도란 무엇일까. 기도는 침묵이다. 자신에게서 물러나 침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지 모른다. 우리는 제대로 기도하는 법을 모르고 있는지도. 우리 입술은 언제나 너무 많은 소음을 담고, 우리 가슴속은 언제나 너무 많은 것들로 넘쳐난다. 성당에서는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다. 촛불을 제외하고는, 초들은 피를 몽땅 쏟아낸다. 자신들의 심지를 남김없이 소모한다. 자신의 몫으로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는 그들이 자신을 고스란히 내어줄 때 이 헌신은 빛이 된다. 그렇다. 기도의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 독서의 가장 명료한 이미지가 그것이다. 싸늘한 성당 안에서 서서히 타들어가는 초. p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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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테르나크의 대작을 읽은 뒤 당신에게 남는 건 무얼까. 한 얼굴이다. 사랑하는 여자와 무수한 겨울을 떨어져 지내야 하는 한 남자의 얼굴. 어둠 속에서 머무는 얼굴. 남자는 숲속 어느 외딴 나무집, 탁자 앞에 앉아 있다. 그는 편지를 쓴다. 끝이 나지 않는 긴긴 편지다. 종잇장들이 검은 잉크로 물든ㅁ다. 그게 전부다. 이름들과 사건들은 잊힌다. 모든 것이 지워진다. 연못 같은 책장 아래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그래도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을 휩싼 흥분은 남는다. 사라지기까지 여운이 너무 긴, 기분 좋은 무력감이다. 사랑을 나눈 뒤나 산책을 마칠 무렵 빠져드는 그런 상태. 피로감이랄 수도 있지만 특별한 피로감. 휴식이 되는 피로감이다. 책 앞에서, 자연이나 사랑 앞에서, 당신은 스무 살이나 다름 없다. 세상도 당신도 막 시작하려고 한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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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 가난한 삶만 있으면 된다. 너무 가난해 아무도 원치 않는 삶. 신 혹은 사물들을 피난처로 삼는 삶이다. 그곳에는 무가 차고 넘친다. 왁자지껄한 소음과 수많은 문들로 이루어진, 자체의 풍문들로 길을 잃은 삶과는 반대되는 삶이다. 그런 삶들을 가지고는 제대로 글을 쓸 수 없다. 그런 삶에서는 말할 거리가 하나도 없으니까. 우리는 오로지 부재 속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고, 결핍 속에서만 제대로 말할 수 있다. 구걸하는 이 여인의 순결한 얽굴을 보려면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겨볼 수밖에 없다. 저녁 시간 차곡차곡 쌓이는 그 글들을 바라볼밖에.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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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는 진지한 행위이다. 진지한 모든 일이 그렇듯 삶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성서는 다르다. 성서의 한 문장은 무수알코올 한 방울, 천사들의 눈물 한 방울과 같다. 책을 펴고 책장 속 어딘가를 짚으면 손가락 밑에는 물고기나 양 한 마리, 야자수 한 그루가 있다.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삶으로부터 삶 자체로, 단순 현재에서 완료된 현재로 건너간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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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속에는 신이 있다. 아니, 신밖에 없다. 그는 쉴새 없이 이야기한다. 말과 무언으로, 벼락으로, 청량한 사월 아침의 산들바람으로, 속삭이는 밀 이삭이나 구슬픈 소 울음소리로, 거품이 이는 파도나 타오르는 불길로, 세상의 온갖 물질로 이야기한다. 성서에서는 신이 신에게,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이야기한다. 성난 목소리, 웃음 짓는 목소리로. 성서에서는 신이 신에게 이야기하느라, 소 귀에 경 읽기 식 이야기를 하느라 지쳐 있다. 그래도 그는 호소를 멈추지 않는다. 얼마나 큰 고독이며 얼마나 큰 사랑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책이 손이 가 닿는 순간 당신의 생각은 산산조각 나고 오로지 눈만 남아 글자를 더듬으며 타오른다. 그렇게 혼자이면서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토록 오래전에 죽었으면서 아직 이곳에 머무를 수 있을까. 세상이 존재한 첫날부터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얼마나 큰 사랑이 낭비된 걸까.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걸까. 성서에선 바람이 바람에게 말한다. 바람은 너무 혼자이지 않으려고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한 목소리의 호수 위로 부는 신의 바람, 물 위를 걷는 바람, 집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다. 바람이신 하느님, 하느님이신 숨결. p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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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을 하듯 책을 읽는다. 사랑에 빠지듯 책 속으로 들어간다. 희망을 품고, 조바심을 낸다. 단 하나의 몸 안에서 수면을 찾고, 단 하나의 문장 속에서 침묵에 가닿겠다는, 그런 욕구의 부추김을 받으며, 그런 욕구의 물리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다. 조바심을 내며 희망을 품는다. 그러다 때로 무슨 일이 얼어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처럼, 일체의 조바심을 몰아내고 일체의 희망에 딴죽을 거는 무언가다. 그것은 위로하려 하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유혹하지 않고 황홀감을 준다. 자체 안에 자신의 종말과 죽음의 슬픔, 어둠을 품고 있는 무언가다.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것에 귀기울이는 자는 이제 자신이 피신할 데도, 의지할 데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서 해방되어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목소리가 어두워질수록 우린 더 분명히 보게 된다. 목소리가 격해질수록 숨쉬기가 한결 쉬워진다. 우린 일체의 문학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온전한 성스러움에 바싹 다가선다.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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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내 고독의 원인은 아니다. 고독은 당신보다 훨씬 앞서 내 안에서 잠자고 있었다. 당신은, 그것을 깨어나게 한 당신은, 그 고독을 가장 닮은 여자일 뿐. p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