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철학, 심리

행복한 출근길 - 법륜

릴라~ 2009. 7. 20. 15:53

 

‘행복한’ 등으로 시작되는 책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류시화류의 에세이가 지닌 흔하고 얄팍한 위로일 것이라는 편견이 내게 있다. 이 책은 지인의 권유로 읽게 되었는데, 법륜 스님의 ‘실천적’ 조언 중에는 새겨들을 말씀이 많았다.

 

이 분은 대승불교의 지향대로 거시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북한 및 제 3세계 돕기 등에 많은 열정을 기울여온 분인데, 심리적이고 미시적인 영역에서도 훌륭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그 분 말씀대로 서양심리학의 역사가 100년이니 16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불교의 처방이 심리학보다 결코 못하지 않으리라.

 

이 분 조언의 특징은 첫째, 명확한 상황 분석이다. 대부분의 질문자들은 자신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자의 지적은 단호하다.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직장이든 결혼이든 죽을 것 같이 힘들면 그만두면 된다고. 청소부를 하든 식당일을 하든, 절에서 수행을 하든 살아갈 길은 있다고. 다만 그것보다는 돈이나 명예, 혹은 가족이 있는 편이 낫기 때문에 후자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니, 상황을 다시 보라고.

 

둘째, 그러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수행을 권한다. 상황을 바르게 보고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자신의 힘을 길러야 하므로. 그 때 우리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행복을 가져오는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고민을 토로하지만 수행하라는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아직 죽을 만큼 괴롭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문제를 정말로 해결할 의지가 없다고, 아직은 살 만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다보면 주변 상황에 되는 대로 휩쓸려 다니다가 삶을 마감하게 된다. 돈/노동/직장/가족/인간 관계 그 무엇이든 간에 자신을 누르게 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말고, 남 눈치 보지 말고, 승진에 목매지 말고, 자기 삶의 주도권을 되찾으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한다고. 내버려 둔 만큼 삶은 방향을 잃을 것이고 나날이 수행/실천한 만큼 삶은 행복해질 것이라고.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린 일이니 과보를 달게 받으라고. 

 내가 하기로 했기 때문에 하늘이 무너져도 하고 땅이 꺼져도 하고 죽는 상황이 와도 그냥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관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죽음인데, ‘죽어도 한다’ 이렇게 정해 버리면 그 어떤 것도 침범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카르마를 거스르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카르마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일으킵니다. 이때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대부분 포기하고 맙니다. 하지만 어떤 카르마도 ‘죽어도 좋다’는 사람은 막을 길이 없습니다.

이 죽어도 좋다는 마음을 ‘대결정심’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으실 때 대결정심을 발했습니다. “나는 깨닫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설령 죽는다 하더라도.” 이렇게 대결정심을 발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죽어도 좋다는 마음을 내긴 하지만 죽는 것까지는 고사하고 조금 아프기만 해도 포기해 버립니다. 하지만 이 대결정심을 발하면 어떤 번뇌도 다 도망을 갑니다. 카르마가 이길 수가 없습니다. (pp158-159)

 

저자는 수행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한 다음에는 이 세상을 정의롭게 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당부한다. 다만 그것은 자기 인생관이 바르게 서야 가능하므로 먼저 수행을 통해 자신을 닦아야 한다고. 그리고 세상을 위해 일할 때는, 세상을 위해 희생했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라고. 임금 노동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버리고 보살의 큰 마음을 지니라고.

 

저자는 악조건이 닥치면 ‘보살행을 실천하기 좋은 곳’이라고 여기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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