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영화, 드라마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일상의 공유와 사상의 공유

릴라~ 2010. 12. 21. 23:10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감독 마이클 호프먼 (2009 / 독일,영국,러시아,미국)
출연 제임스 맥어보이,헬렌 밀렌,크리스토퍼 플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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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공유하는 것과 사상을 공유하는 것

잔잔하지만 여운이 긴 영화다. 자리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삶의 여로를 그의 아내와 추종자들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는 영화인데, 영화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전적인 품격과 삶의 깊이가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본 클래식한 영화라고 할까. 노장 배우들의 명연기도 영화의 그와 같은 분위기에 한 몫 했으리라.  (스포일러 있음)

48년을 함께 산 톨스토이와 그의 아내 소피아. 두 사람은 이성으로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가치관이 상반되며 그것이 둘을 끊임없이 싸우게 한다. 말년의 톨스토이는 자신의 책의 저작권의 문제를 놓고, 가족의 권리를 주장하며 그를 지치게 하는 아내와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사상적 동지 사이에서 번민한다. 둘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길은 없었으므로. 결국 톨스토이는 임종을 앞두고 평생을 살아왔던 야사야나 폴라냐의 대지와 아내 곁을 떠나 여행길에 오른다. 도중에 작은 간이역에서 생을 마치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이는 소피아였고 그가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음으로 말하는 마지막 말을 알아들은 이도 소피아였다. 

그 어떤 사상도 신념도 주의도 철학도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선 빛을 잃었으며 그 마지막 순간을 감싸안을 수 있는 힘은 사랑임을 영화는 잔잔하게 보여주었다. 사상과 철학과 신념은 자아의 확장에 불과할 때도 있지만, 사랑은 나 아닌 너에게로, 타자에게로 건너가는 위험한 몸짓이기 때문이다. 사상의 이러한 약점은 발렌틴이 톨스토이의 사상적 동지인 체르트코프에게 하는 말로 대변된다. "당신이 중시하는 톨스토이의 사상은 톨스토이보다는 당신 자신을 더 닮았군요. 톨스토이는 우상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소피아는 톨스토이의 사상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와 공유하고 있는 일상적 세계와 수십 년간 살을 맞대고 살아온, 일상에서 드러나는 톨스토이라는 사람을 지극히 사랑했다. 비록 톨스토이의 유언장을 사랑의 증거로 간주하고 그것에 몹시 집착했지만. 반면에 체르트코프는 톨스토이라는 사람보다는 비폭력주의, 사유재산 반대 등의 톨스토의주의를 사랑했고 그것을 세상에 전파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톨스토이가 임종을 앞두고 전향해서 종교에 귀의할까봐 두려워했다. 동지애와 가족애, 어느 쪽이 더 위대한가를 논할 수는 없으리라. 다만 이 영화는 후자의 편을 들고 있다. 아니 이 두 가지 면을 다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톨스토이의 아내는 악처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그녀를 미워하거나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배우 헬렌 밀렌은 사랑스러우면서도 신경질적이고 현실주의자인 소피아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톨스토이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톨스토이와 꼭 닮았는데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왔던 폰트랩 대령이라 한다. 세월의 무게를 실감했다.

영화에서 이 두사람을 관찰하며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는 이는 톨스토이의 비서 발렌틴인데, 발렌틴과 마샤의 풋풋한 사랑이 영화를 생기있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이 영화의 주제인 '사랑'을 한층 부각시키고 있다. 발렌틴은 체르트코프처럼 톨스토이주의자였지만 톨스토이와 소피아를 생활 속에서 깊이 만나면서 사상을 넘어서 사랑을 따르게 된다. 발렌틴에게 마샤는 사랑과 사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상대였으므로 톨스토이-소피아의 사랑보다 더 이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랑엔 수천 가지 빛깔이 있으며 그 어떤 것이 우월하다고 감히 말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 발렌틴 역을 맡은 제임스 맥어보이의 눈빛이 참 좋았다.

영화 초반에 톨스토이는 발렌틴에게 자신이 젊은 날 사랑했던 타타르 여인, 잊을 수 없는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묻는다. "이런 소소한 연애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말한다. 아직 그걸 잘 모르겠다고.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고, 톨스토이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도 잘 모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했던 소소한 사랑들, 지금은 끝난 그 사랑들이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들 삶은 표현할 수 없고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묵직한 느낌들만을 남기는 많은 경험들로 채워져 있다. 그 느낌들은 우리에게 삶이란 것의 총체적인 느낌들을 전달하지만, 지성으로 포착되는 분명한 의미를 남기지는 않는다. 다만, 설명할 수 없는 그 느낌 속을 거닐다보면, 삶이 여전히 신비이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뿐. 누추함과 지루함과 보잘 것 없음도 삶의 일면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며 그 너머에 존재하는 희미한 빛, 어떤 숭고함과 고귀함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영화를 보며 중학교 때 좋아했던 격언을 기억해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한 구절. "가장 곤란하나 본질적인 것은 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괴로울 때도 사랑하는 것이다. 생은 모든 것이다. 생은 신이다. 생을 사랑함은 신을 사랑함이다."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전쟁과 평화'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

우리들에겐 체르트코프의 사랑과 소피아의 사랑 중 하나를 택할 것이 아니라 둘 다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소피아도 체르트코프도 톨스토이의 한 면밖에 보지 못했으므로. 두 사람 다 자기가 아는 톨스토이가 진짜라고 자기 사랑만을 고집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들의 사랑을 돌아보게 한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도 그렇고 친구와 연인을 향한 사랑도 그렇고, 우리들의 태도도 많은 경우 그와 다르지 않으므로. 한 사람에겐 수많은 차원들이 공존하는데 우리는 내가 잘 알고 있는 그 면만을 중요하게 간주하고 그것을 전부라고 여기므로.

톨스토이에겐 소피아와 체르트코프가 다 소중했다. 다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라면 사상적 동지보다는 같이 밥 먹고 자고 일상을 공유한 가족이 더 가깝게 다가올 것 같다. 톨스토이가 마지막으로 부른 이름이 소피아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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