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다큐

다큐 - 오월애

릴라~ 2011. 6. 2. 00:00

오월愛
감독 김태일 (2010 / 한국)
출연 양동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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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잊고 있었다. 80년 광주를 지켰던 시민들. 거리에 큰 솥을 걸어놓고 시민군에게 밥을 해먹였던 어머니들. 도청을 지켰던 청년들. 그들에게 밥을 해주었던 여성들-그 중엔 여고생도 몇 명 있었다 한다- , 계엄군에 진압되기 전 도청을 빠져나오며 울었던 사람들. 자녀들이 그곳에 있어 노심초사했던 부모들, 주검이 되어 돌아온 자식을 맞은, 혹은 주검조차 잃어버린 사람들. 살아 남았으나 이후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 당시 계엄군이었다가 그 죄책감으로 이후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이까지. (스포일러 많음)

그들이 여전히 지금,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80년 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며 시민군을 도았던 아주머니들은 이제 할머니가 되어 지금도 그 거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고, 그 시절 청춘이었던 이들은 자녀를 둔 중년이 되어 있었고, 그 시절 십대/이십대의 자녀를 둔 이들은 노인이 되어 있었다. 너무나 또렷하고 생생한,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가슴속에 묻어둔 채로. 그 때 광주는 열흘 동안 특별한 해방구를 이루었다. 전쟁통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먹을 것을 내놓았으며, 도둑/범죄자조차 그 열흘 동안은 휴업했다 할 만큼 모두가 한마음이었던 기적 같은 시간이었다. 

그때 그 거리를 지켰던 분들이 2011년 오늘도 광주에 살아 있었다. 지금 말해봐야 무슨 소용 있냐며 냉소를 표하는 할머니도 있었고, 지금도 무서운 꿈에 시달리는 분들도, 그 아픔의 무게와 세상의 무관심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분들이 자신이 살아남았음에 미안해하고 있었다. 살림살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힘들긴 매한가지이며, 존경은커녕 국가유공자라고 대놓고 말하지도 못하고 어렵게 산 세월이었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그렇게 할 거라고, 지금도 광주 시민들이 자랑스럽다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오월애>는 80년 광주에 있었던 그 평범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다. 정말 누군가는 꼭 만들었어야 할 영화였고 우리가 꼭 들어야 할 소리였다. 공부를 하다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역사상에 천재들이 하도 많다 보니, 평범한 인생들, 나를 포함하여 이름 없이 살다 사라질 수많은 이들의 목숨값이 이 세계에서 얼마 만큼의 무게를 지닐까 하는. 세상은 그 뛰어난 이들이 끌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영화를 보면서 평범한 많은 분들 속에서 살아있는 역사를 느꼈다. 뛰어나고 재능 있는 이에게 있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위대함이 그분들에게 있었다. 그건 아마도 차가운 지성이 아닌 따뜻한 가슴에서 우러난 위대함일 것이다. 최후까지 도청을 지키며 죽어갔던 이들도 그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이 영화는 감독이 기획하고 있는 '민중의 세계사' 시리즈의 첫 편이라고 하는데 그의 관점을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분 한 분의 증언이 이어지는 동안 내내 눈물을 흘렸다. 이름 없는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용기와 인간성 때문에. 수십년 말 못할 슬픔을 안고 고단한 인생을 살아왔으나 여전히 그분들의 얼굴에 감도는 어떤 고귀한 빛 때문에. 수많은 이의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광주를 박제화시킨, 이제는 다 끝난, 저 머나먼 역사의 어떤 일로 만들어버린 우리 사회의 척박함 때문에. 우리들의 척박함 때문에. 

그 결과는 지금, 그때 최후까지 싸웠던 분들이 마지막을 보냈던 도청 별관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아시아 문화전당을 짓자는 개발 프로젝트로 나타났다. 할머니 한 분이 말했다. '내 자식이 거기서 피를 흘리고 죽었는데 거기를 못 지키면 사람도 아니여.' 그때 그 아들은 고등학생이었다. 그 아픈 기억을 간직한 할머니는 지금 우리 곁에 살아 있었다. 5. 18은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그분들의 오늘의 삶이자 우리들의 오늘의 문제였다.

우리는 무엇이 바빠서, 무엇을 꿈꾸고 희망하기에 이처럼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대체 다음 세대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기에? 그분들의 용기와 희생과 고통을 우리 시대의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껴안지 못하고, 그 '빛나는 아픔'을 우리들의 이야기로 품지 못하고, 우리 세대의 이야기로 확장시키지 못하고, 다음 세대에 무엇을 전하겠다는 건가?  '사람 사는 세상' 대신 무엇을? 

살인마 전두환이 버젓이 살아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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