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2 - 이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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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가 이처럼 감동적이다니...! 두 권을 정신 없이 읽었다.
우리가 역사를 대할 때, 자칫하면 '역사'라는 관념에 빠져 버리는 수가 있다. 과학의 법칙처럼 역사의 법칙도 냉혹하며, 이 역사라는 '비인격적 절대'가 인간을 억압해버리기도 한다. 거대 담론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공허하게 한다.
이덕일 역사서의 장점은 역사 속에서 눈물과 땀을 흘린 인간들을 먼저 보여주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한 시대의 흐름과 역사 전체의 흐름을 조명해준다는 것이다. 그가 역사서를 인물의 일대기 위주로 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역사라는 산맥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속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그 때 우리는 역사를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역사 속에는 진리가 흐르고, 역사 고유의 방향이 있지만, 그것 모두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소리에 진지하게 귀기울여야 하지만, 역사 자체를 신격화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결여된, 구호나 관념으로서의 역사, 승자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역사는 또 하나의 억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저자가 '인간 중심의 역사서'를 쓰고 싶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덕일의 역사서는 철저하게 실록과 사료에 근거해 있으면서도 마치 우리가 직접 그 시대를 살아본 것처럼 현장감 있게 과거를 우리 앞에 재현해 낸다. 그의 책들이 지닌 이러한 힘은 아마도 저자 자신이 그 시대 인물들과 마음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이 가능했을 것이다.
저자는 인물들의 생애를 조명함으로써 한 시대의 진실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인간과 세상이 어떻게 만나고 관계 맺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살아 있는 역사서를 쓰고 싶어 이러한 작업을 시작했다고 했는데, 나는 그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증오의 시대가 한 인간과, 한 집안, 한 사회에 얼마나 큰 불행인지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천주교에 귀의한 정약종과 그의 아들은 지상을 버리고 천상을 택했다. 그는 신유박해 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지상을 택한 정약용과 정약전은 유배지를 전전해야 했다. 정약용은 19년의 유배 생활 동안 학문의 세계에 침잠했으며, 반대로 정약전은 자연과 어민들과 직접 부대끼며 사는 삶 속에서 해탈의 길을 찾았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민중과 함께 고뇌하며 산 삶의 결실이다. 유배지 흑산이라는 말이 두려워 '자산'이라고 쓸 정도로 그 시대를 두려워했던 그는 그리워하던 동생을 만나지 못한 채 유배 16년만에 삶을 마감한다.
정약용은 오직 한 명의 독자, 형 약전을 생각하며 수많은 저작을 집필한다. 그의 저작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책에 대해 꾸짖는 이가 많다면 천명이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 다 불살라도 좋다고 유언한다.
닫힌 시대는 정약용 형제들을 저주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시대를 저주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시대를 아파했고, 열린 사회를 꿈꾸었다. 정약용은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한 바 있다.
정조의 개혁 정책과 새 시대를 지향한 수많은 움직임들이 좌절되면서 조선은 다시 구시대로 회귀하고 만다. 그 결과 희대의 천재 이가환을 비롯하여 주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닫힌 사회의 출구를 서학과 천주교에서 찾았던 남인 선비들은 천주교도가 아니거나 배교했음에도 불구하고 당파 싸움의 희생양이 된다.
시대의 금기를 깨고 신앙을 받아들인 이벽, 황사영 등의 삶, 그리고 진산 사건 이후 대부분의 양반들이 배교한 후에도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중인들과 일반 백성들의 정신도 감동적이었다.
정조대의 꿈과 좌절, 억압 속에서 새 시대를 열어가고자 했던 사람들의 고뇌와 절망을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 시대는 어떠한지를. 다산이 지향하는 세상으로 가고 있는지를.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몰아가고 있지는 않은지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바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