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다큐

다큐 - Jam Docu 강정

릴라~ 2012. 2. 24. 17:48


한 사나이가 구럼비 바위에 누워 있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바닷바람이 주름을 새겨놓았다. 우직하고 진실한 인상을 주었다. 둥그렇고 넓적한 바위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면서 어릴 때부터 이 바위에서 뒹굴었다고,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이렇게 딱 누워있으면 바위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강동마을 회장 강동균씨였다.

한 여인이 감옥에 있었다.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포크레인 아래건 길바닥이건 눕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공무집행 방해죄로 수감되었다. 긴 머리카락이 약간 야윈 얼굴을 감싸고 있었지만, 괜찮다고, 이것은 세계 평화가 걸린 문제라고 반드시 막아낼 거라고 했다. 강정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중국의 미사일 일차 방어선이 될 거라고 보고 있었다. 포크레인 밑에서 왜 그렇게 핸드폰을 계속하냐는 감독의 질문에 두려워서라고 답했다. 그녀는 평화운동가 최성희씨였다. 

또 한 남자가 병원에 있었다. 단식이 수십 일을 넘겨 바싹 마른 몸매였다. 단식의 고통은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여 무언가를 타인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외지인이 여기서 무슨 떡고물을 얻어먹으러 왔냐는 등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그는 영화평론가 양윤모씨였다.

마을 주민들은 영화 감독들에게 왜 이제야 왔느냐고 했다. 몇 년간 힘겹게 싸울 때는 무관심하다가 왜 모든 것이 결정되고 난 지금에서야 나타났냐고. 제주에서 유일하게 계곡과 바다가 만나는, 물이 좋아 논농사가 잘 되어 제주에서 제일 맛있는 쌀이 난다는 아름다운 마을 강정은 마을 사람들을 서로 원수로 만들어놓았다. 개발에 찬성하는 이와 반대하는 이들은 이제 서로 말도 하지 않을 만큼 감정의 골이 깊게 패여 있었다.

가까이 있는 제주도민들은 무관심했다. 강정 마을 사람들이 해군 기지 건설을 막고자 도지사 주민 소환제 투표를 발의했으나 20% 참여율의 고지를 넘지 못했다. 해군은 마을 주민 전체의 의견은 물어보지 않은 채 해녀회 임원들을 매수하여 찬성 도장을 받았고 밀어붙였다. 처음 작정한 곳은 송악산 일대였으나 주민 반대에 부딪히자 다음으로 낙점한 곳이 서귀포 바로 옆, 강정마을이었고, 그곳은 해양 생태계 보존 지구로 지정된 곳이어서 개발이 불가했으나 지자체는 슬그머니 보존지구를 해제해 버렸다.

군 당국은 이 기지가 MD와 관련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믿기는 어려웠다. 시위에 참석한 마을 사람들이 잡혀가고 풀려나기를 반복하고, 그들을 도와주러 온 외지인들이 하나 둘 강정에 정착하는 그 사이 해군은 아예 해안선을 통제해버리고 공사를 착공했다. 구럼비바위 위로 시커먼 시멘트가 부어지고 있었다.

이 작은 마을에 세상의 온갖 모습이 다 들어 있었다. 개발의 논리와 보존의 논리. 기지 건설의 당위성과 평화에 대한 요구. 공권력의 횡포와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 우리 시대를 구성하는 상반되는 가치관들이 이 작은 마을에서 부딪히고 폭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은 그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떠맡고 있고 해결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앞으로의 선택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이 영화는 우리의 '오늘'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 될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2009년 올레길을 걸을 때 내가 그곳을 지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그곳이 구럼비바위인 줄도 몰랐는데 영화에서 구럼비바위 뒤로 보이는 등대를 보고 바로 알아챘다. 바닷가를 따라 넓디 넓은 바위가 펼쳐져 있고 그 앞으로 갈대가 자연스럽게 흩날리고 새떼가 날아다니던 곳. 길을 걸으며 그 야생적인 풍광에 잠깐 놀랐던 적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곳에서 바위와 갈대 위로 날아오르는 새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이제 그곳엔 새들은 물론 사람도 들어갈 수가 없다.

내가 다시 그곳에 갔을 때 구럼비바위를 만져볼 수 있을까, 구럼비바위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며 사람들의 그 땅에 대한 애끓는 애정을 느끼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기억'이란 그 기억을 지닌 개인의 죽음과 더불어 지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 같다고. 이곳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의 눈물겨운, 그러나 더없이 아름다운 사랑을 만물이 기억해 줄 것이라고. 우리들의 이 모든 감정은 개인의 기억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시간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그래서 설혹 이 바위를 지키지 못하더라도(마을 사람들이 몇 년씩이나 홀로 싸워온 것을 생각하면 꼭 그곳을 지켜낼 것 같다), 구럼비바위의 존재는 우리들의 경험과 더불어 이 우주의 일부로 영원히 남는다고.

 

덧붙임) 내가 제주도지사라면 해군기지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제주도민의 입장 또한 그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과 절차가 민주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환경영향평가 또한 철저히 행해져야 하고.




Jam Docu 강정
감독 김태일,권효,양동규,최하동하,경순,최진성,정윤석,홍형숙 (2011 / 한국)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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