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 My richness is Life
"그때 그의 나이 36세였다"
마지막 자막이 흐를 때 순간 깜짝 놀랐다. 밥 말리가 젊은 날 죽은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본 그의 생애가 워낙 드라마틱했기에 36세라는 나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한 일흔은 산 것 같은 느낌? 7명의 여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11명의 자녀만 봐도 그렇다. (난 지금까지 뭐했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더라. ㅎㅎ)
영화 <말리>는 레게의 전설 '밥 말리'의 생애 전반을 그려낸 다큐다. 그의 음악관이나 종교관, 삶의 철학, 가족 관계 등 특정 부분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은 없다. 이 영화의 의의는 어떤 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전체적으로 두루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밥 말리가 태어난 자메이카의 작은 산골마을에서 시작해서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수도의 빈민촌 트렌치타운, 레게음악의 탄생 계기, 유럽에 진출하면서 살았던 영국 집, 전 세계 투어 실황 장면, 마지막을 보냈던 스위스의 병원까지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 각각의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말리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그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마치 여행을 하듯 두 시간 동안 그의 인생 행로를 죽 따라가는 그런 특별한 기쁨이 있는 영화였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밥 말리가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달아가는 부분이다. 흑백 혼혈로 태어나서(아버지는 사업차 자메이카에 왔다가 곧 떠난다) 아버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소년은 당시 혼혈이 드물었던 시절이라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 속에 외롭게 고생고생하며 자란다. 그런 그에게 친구가 되어준 것이 음악이었다. 그리고 말리는 흑인을 위한 종교인 라스타파리안교(Rastafarian)에 심취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신이 그에게 참된 아버지임을 깨닫는다.
라스타파리안교의 영성은 말리의 음악과 삶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에티오피아 황제를 구세주로 간주하는 것은 좀 황당하지만, 그가 남과 다른 자신의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아버지가 부재한 자리를 신이라는 더 큰 아버지에 대한 발견으로, 그가 깨달은 메시지를 음악으로, 또 세상의 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승화시켜가는 과정이 아름다웠다. '흑인'으로서의 자신의 소명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있었기에 그의 음악과 평화에의 실천이 더욱 큰 울림을 낳은 것 같다. 그의 삶과 음악은 그의 종교적 신념을 반영하는 것일 뿐 아니라 든든한 사회/역사적 토대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의 예술의 독창성은 그의 삶의 이러한 다양한 배경들에 기인하는 것이리라. 그는 자기 삶의 모순되는 부분들을 끌어안으면서 그 모순들을 공존시키는 방식으로부터 지속적인 영감을 이끌어낸 아티스트였다.
그는 테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그를 초청한 정치인은 반대편과 무력 갈등을 빚고 있었으나 말리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입국한다) 조국 자메이카에서 대공연을 펼치고 공연 중에 그때까지 서로 끊임없이 유혈 사태를 빚던 두 당의 당수를 무대 위로 불러올려 함께 손을 맞잡게 하는 기적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에티오피아의 해방을 축하하기 위해 그 많은 장비들을 배로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자비로 실어나르며 무료공연을 펼친 일화는 유명하다.
밥 말리의 배다른 백인 형제들은 밥 말리가 어려울 때 자기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 찾아갔다가 냉대만 받고 쫒겨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후 그가 지은 노래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버려지고 깨어진 돌멩이가 언젠가 주춧돌이 되리라고. 말리의 백인 형제들은 그 노랫말이 실현되었다고, 아버지는 그를 버렸으나 세상이 그를 안아주었고, 백인들만 쓰는 '말리'라는 성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게 그라고 말한다.
아내 리타 말리 또한 대단한 인물이었다. 밥 말리의 여성 편력에 대한 질문을 그녀는 한 마디로 종결시킨다.
"나는 그의 후원자가 되어주기로 했어요."
밥 말리와 같리 라스타파리안교 신자인 리타는 밥 말리에게 자신과의 개인적 관계보다 중요한 특별한 소명이 있다고 생각했고 아내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그를 도와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리타의 딸은 어머니가 때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았다면서, 어머니의 선택은 존중하지만, 자기라면 그런 남편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헤어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말리의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자막이 없는 것이 좀 아쉬웠다. 영화를 보고 그의 가장 유명한 곡 'NO WOMAN NO CRY'에 나오는 트렌치타운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기자의 우문에 대한 말리의 현답이다.
"Are you a rich man? You have a lot of possesions?"
"Possesion making rich? I don't want that type of richness.
My richness is Life."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Say say said I remember when we used to sit
in the government yard in trench town
over over starving the hipocrites
and they would mingle with the good people we bring
good friends we've had or good friends we've lost
along the way
in this great future you can forget your past
so dry your tears I say....and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dear little darling don't shed no tears
No woman no cry
Say say said I remember when we used to sit
in the government yard in trench town
and then george would make the fire live
as it was like wood burning through the night
then we would cook oatmeal porridge
of which I'll share with you?
my feet is my only carriage
so i ve got to push on through
but while im gone i mean it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little sister don't shed no tears
No woman no cry
I remember when we used to sit
in the government yard in trench town
and then george would make the fire live
as it was like wood burning through the night
then we would cook oatmeal porridge
of which I'll share with you?
my feet is my only carriage
so I've got to push on through
but while im gone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dear little darling don't shed no tears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little sister don't shed no tears
No woman no c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