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다큐

<워낭소리>, 할아버지를 닮은 소와 소를 닮은 할아버지

릴라~ 2012. 12. 2. 15:19

 

 

 

 

극장에서 상영할 때 놓친 영화다. 아버지께서 보고 싶다고 컴퓨터에 다운 받아 놓으셨길래 큰 TV로 보시라고 연결해 드리다가 끝까지 보게 되었다. 이렇게 마음을 찡하게 하는 다큐일 줄은 몰랐다.

 

'워낭소리'는 40년 가까운 긴 세월을 살아온 한 마리 소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 소처럼 살아왔던 한 세대에 대한 기록, 이제는 곧 사라질 한 시대에 대한 기록이자 평생을 고되게 일하면서도 그 운명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던, 그것을 묵묵히 감내해왔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주인공 할아버지는 8살 때부터 힘줄이 오그라들어 불편한 한쪽 다리를 힘겹게 끌면서 젊었을 땐 8년 남의 집 머슴살이에, 이후로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에 나가 일하면서 9남매를 키웠다 한다.  "저 소가 없었으면 나도 못 살았을 거여." 그 옆에는 그런 할아버지를 태우고 날마다 같은 길을 오가며 할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었던 소가 있었고,  열여섯에 시집와서 평생 죽어라 일만 한 할머니가 있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늙어간 소는 할아버지처럼 걸음을 잘 못 걷고, 그 느리고 비틀비틀하는 걸음으로 할아버지를 매일 실어날랐다. 그렇게 자기 몫을 다하던 소는 어느 겨울 아침,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아무리 재촉해도 꼼짝도 않자 수의사를 부른다. 수의사는 더 못 산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고, 할아버지는 소의 코뚜레를 잘라준다. 이제는 더이상 일을 안 해도 된다고. 그 전날까지 일을 했던 소는 할아버지가 코뚜레를 자르자 곧 숨을 거둔다. 소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것은 할어버지와 할머니가 겨울을 날 땔감들. 그 많은 땔감을 다 해놓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평생 묵묵히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만 하다가.

 

코뚜레를 자르는 장면이 가슴에 쿵 박힌 이유는 그 소가 그간 짊어져왔던 삶의 무게 때문이리라. 다만 몇 달이라도 편안히 휴식하는 시간이 소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그 소 덕분에 할아버지는 아홉 자녀들을 키울 수 있었지만, 다 자라서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자녀들에겐 이제 그 소가 필요 없고, 아버지가 너무 힘드시니 장에 내다팔라고 말한다. 평생 누군가를 위해 고생한 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고생을 당연시하는 인간의 마음이 얄밉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평생 말없이 묵묵히 희생하며 우직하게 살아온 소의 모습 뒤로 그 소와 다를 바 없이 살았던 우리네 할아버지/할머니, 수많은 세대들의 삶이 겹쳐보이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애잔한 감동이다. 우리 조상들은 다들 그렇게 한 생을 살다가 갔다. 그 소가 인간의 언어를 말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지 나는 그 소리가 궁금하다.

 

 

 

 


워낭소리 (2009)

Old Partner 
8.9
감독
이충렬
출연
최원균, 이삼순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78 분 | 200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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