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 원폭2세환우 김형률 평전> - 전진성
"이 책에는 바로 내 가슴을 뜨겁게 했던 친구 김형률의 불꽃 같은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저 시골의 평범한 목수로 살다가 어느 날 3년의 공생애를 시작한 예수처럼 그 역시 내 삶에 3년간 있었다. 하지만 난 몰랐었다. 작은 키에 병든 그가 그인지 몰랐었다. 난 그가 전태일인지 몰랐었다. 그가 예수였는지 난 정말 몰랐었다. 내가 그를 안 것은 그가 이 세상을 뜬 후였다. 죽어도 그의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이제야 그가 이 세상의 평화인 것을 알았다.(강주성)"
이런 종류의 책이 심금을 울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그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깨우쳐 준다. 우리가 미처 잊고 있지만 그와 우리가 실은 같은 토대를, 같은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아픔은 단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와 뗄 수 없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원폭2세환우 김형률.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던 그는 놀라운 의지로 기술을 익히고 이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고군분투하지만 병고 때문에 그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더 이상 한 발 디딜 곳조차 없어졌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다. 그것은 그가 원폭2세환우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히로시마 피폭자였고 다른 형제들은 건강했다. 그는 34년의 짧은 생애의 마지막 3년 동안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원폭2세환우 문제를 우리 사회에 제기하며 그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온몸을 불사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4년에야 실태 조사를 시작한다.)
김형률은 '원폭2세환우'라는 단어를 고집스레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가 깔려 있다.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히로시마 원폭 피해 당사자들도 원폭 피해가 유전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의 자녀 중에는 건강한 자녀들도 있었고 이들의 사회 생활에 지장이 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히로시마 피폭자의 10퍼센트가 한국인이었지만 일본과 한국 양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한국인 피폭자들은 빈곤과 병마 속에서 긴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김형률을 비롯하여 원폭2세환우들은 자신들이 평생 병마의 고통을 받는 이유가 원폭 때문이라는 사실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한국원폭피해자협회로부터도 외면을 당하는 등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김형률은 그가 살아있는 한은 떨쳐낼 수 없는, 자신의 '몸'에 아로새겨진 고통을 시대적 소명으로 승화시킨다. '나는 누구이며 왜 이런 병마를 겪어야 하는가'에서 출발한 그의 존재론적 물음은 자신의 고통이 갖는 역사적 뿌리와 사회적 맥락을 인식하는 데로 이어진다. 그는 자신의 '몸'을 일본제국주의 전쟁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침략전쟁의 결과로 받아들이고 일본의 과거사 청산을 포함한 반전/평화 운동의 차원에서 원폭2세환우 문제를 풀어나간다. 원폭2세환우 문제는 국가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부정당한 그들의 정체성을 되찾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회복하는 인권 운동인 동시에 전쟁과 핵무기에 반대하는 평화운동이었다. 그는 그 첫걸음에 자신의 생명을 쏟아부었다.
평전에는 그의 몇 안 되는 사진이 실려 있다. 언뜻 보아도 환자로 보이는, 작고 왜소한 체구에 말라서 움푹 들어간 볼에, 그저 슬프다고 하기엔 부족한, 세상의 모든 고통이 그의 가녀린 어깨에 한껏 내려앉은 듯한 얼굴. 그의 얼굴이 증언하고 있었다. 그가 곧 예수라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그의 외침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평전을 써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덧붙임) 히로시마 피폭자의 70퍼센트가 경남 합천 출신이라 한다. 저자가 말했듯이 합천이 전두환의 고향이 아니라 한국의 히로시마로, 평화의 염원이 담긴 곳으로 새롭게 자리매김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