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배우다 — 마네킹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날
배우들은 대본에 따라, 대본에 정해진 대로 맡은 역할을 연기한다. 대본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자기 목소리를 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신출내기 배우 지망생 오영은 자꾸만 대본 이상을 표현하려 애쓰다가 감독과 동료 배우와 마찰을 빚는다. 자기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오버액션을 하면서 극의 흐름을 함부로 끊어놓는 것이다.
오영의 잠재적 매력을 알아본 기획자에 의해 영화에 뛰어든 오영은 벼락 성공을 거두지만 그것은 그가 스스로 성취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스타가 된 오영은 오만방자하게 세상을 내려다보고 타인을 자기 욕망의 도구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 성공은 위태위태한 길을 밟고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결국 다시 추락한다. 친구가 없었다면 결코 헤어날 수 없는 나락에 빠졌겠지만 그는 간신히 살아서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그 모든 지난한 과정을 겪고나서 자신이 처음 연극을 시작했던 무대를 기웃거리는 오영. 그는 그때 예전에 상대역을 맡았던 여배우를 만나 그 옛날의 대사를 다시 외우는데 그것은 자기 감정에만 충실했던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비로소 그녀와 교감한다. 그리고 마네킹과도 가슴속에서 우러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마네팅의 목소리에도 온마음으로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만큼 열린 가슴을 지니게 된다.
영화 <배우는 배우다>는 우리는 삶에서 어떤 종류의 배우인지를 묻고자 하는 것 같았다. 대본이 정해놓은 역할 이상은 꿈꾸지 않는 꼭두각시인지, 혹은 자신의 소리를 내고자 하는지, 그 소리를 세상에 표현하는 방식은 무엇인지를.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찾아가는 오영의 성장기는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의 축약판 같았다. 오영은 자기 색깔을 고수하고자 하고 그러다가 욕망하고 타락하고 휘청거리지만 그 과정의 끝에서 비로소 타자와 교감할 수 있는 존재로 변모한다. 그의 눈에 타인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주어진 대본만 소화하려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오영은 마네킹으로부터도 깊고 진실한 감정을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영화에는 꽤 긴 섹스신이 등장하는데 섹스에서조차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쏟아내기만 하던 그가 사람이 아닌 마네킹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흐느끼는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오영은 자신이 예전 연극 무대에서 읊던 대사의 참 의미를 밑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가 다시 영화판으로 돌아와서 단역부터 새로 연기를 시작하는 장면은 그래서 묘한 생기가 있다. 그는 그가 처음 영화에 뛰어들었을 때와 비슷한 연기를 반복하게 되지만 그 반복은 언제나 이전과 조금 다른 반복이다. 그는 이제 배역에 충실하면서도 그 연기 속에 자기 숨결을, 그만의 향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오영이 그랬듯이 우리 또한 세상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타자를 자기화하는 폭력을 무수히 범하고 만다. 그래서 삶은 언제나 조금쯤 아프고 조금쯤 슬프다. 우리는 잘못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나와 다른 타인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법을 배운다. 삶은 반복되지만, 삶 속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도 반복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타자와 진심으로 호흡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목소리를 새롭게 가꾸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제목을 '인간은 인간이다'로 바꾸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