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수업 이야기

한용운과 '나룻배'

릴라~ 2017. 3. 23. 15:06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은 3차시로 진행했다.

'별 헤는 밤'에 비해 너무 빨리 끝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수업이었다.

 

1차시에는 한용운 선생의 생애 개관,

2차시에는 시 내용 이해,  

3차시에는 마무리 글쓰기로 진행했다.

 

한용운 선생(1876-1944)의 생애를 설명하기 위해 다섯 개의 키워드를 뽑았다.

 

홍성 - 출생, 동학/을미사변 등 당시 시대적 상황, 성장 과정, 조혼(아들-한보국), 고민 및 가출

백담사 - 정식 출가 중 당시 유행하던 '영환지략'이라는 세계지리 책에 충격을 받고 여행길에 나섬

만행 - 블라디보스톡, 서울, 일본, 만주 등지에서의 일화, 이 시기 독립운동의 동지를 만나 교우함.

서대문형무소 - 최린, 손병휘 등이 진행하던 3.1운동에 민족대표 33인으로 참가(공약 삼장). 옥고 치름.

심우장 - 불교혁신운동, 신간회 등 독립운동, 변절자를 쳐다도 보지 않았던 대쪽 같은 성품,

             김동삼 선생의 시신을 장례 지낸 일화, 두 번째 결혼(딸-한영숙), 최린의 변절(반민특위)

등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팟캐스트 이이제이의 한용운 편을 많이 참고했다.

 

선생의 생애는 그야말로 치열한 독립운동의 대장정이었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한 시대를 뜨겁게 고민하며 헤쳐갔던

구도자의 모습이 그러져서 이분의 생애에 새롭게 감동했다.

 

신문 사설 등 언론에 활발하게 글을 쓴 분인데 어떻게 시를 다 쓰셨나 싶기도 했다.

그것도 1926년에 이렇게 세련되고 우아하고 함축적인 시어를 구사한 것이 기적 같았다.

개인적으로 한국 시 100년사에서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님의 침묵'을 들고 싶다.

미학적으로도 아름답지만 그 시가 담고 있는 세계의 깊이와 감성의 깊이 때문이다.

이 시가 전해주는 진한 여운에 비할 만한 작품을 아직은 보지 못한 것 같다.

한 작품 더 고르라면 '별 헤는 밤' 또는 백석의 시.

 

수업 시간에 다룬 '나룻배와 행인'은 중학생도 금세 이해할 수 있는

참 쉬우면서도 정갈한 말씨로 당신을 향한 연모의 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고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가고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낡아간다는 고백이

한평생 구도자로 살아가며 세상을 뜨겁게 사랑했던 선생의 삶과 그대로 겹쳐졌다.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가는 것이 흙발로 밟히는 듯 고통스러울 때도 많지만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 알면서 당신을 기다린다는 고백,

이 사랑의 유효 기간이 얼마쯤 될까 라고 물으니 다들 평생이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시인이 평생 고이 안고 가고 싶었던 당신이 연인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조국의 광복이나 시인이 추구했던 진리, 부처로 확장될 수 있음을

자연스레 유추할 수 있었다.

 

여러분에게는 '나룻배'가 되어준 존재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이라고 답했고, 자연 등의 대답도 있었다.

어찌 보면 한용운 선생은 식민치하 일제의 폭압과 우리 자신의 무지에 시달리던

조선 백성 전체를 나룻배에 태워 안전한 강가에 데려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한용운 선생의 나룻배는 '만해'라는 선생의 호처럼

온세상을 그 안에 품고자 했던 선생의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선생처럼 큰 나룻배는 될 수 없지만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작은 것 한 둘은 건너줄 수 있는 그런 나룻배이면 좋겠다고

내용 이해를 마무리했다.

 

3차시 마무리 글쓰기는 카드를 활용한 글쓰기 활동으로 진행했다.

사랑시여서 감상이 비슷하게 나올 확률이 높아서 감상을 좀 확장하고 싶어서

50장의 다양한 풍경을 담은 솔라리움 카드를 나누어주고

자신이 보기에 시의 정서를 잘 담았다고 생각하는 카드를 골라서

1문단에서는 카드의 풍경을 묘사하고,

2문단에서는 그 풍경이 시의 어떤 점과 잘 맞아떨어지는지를 쓰게 했다.

분량은 하위권에 기준을 맞추어 한 문단에 3줄 이상, 총 6줄 이상으로 쓰게 했다.

저마다 다른 카드를 골랐기에 글의 내용이 자유롭고 다양해서 좋았다.

공책 검사를 할 때 좋은 글을 몇 개 찍어놓을 생각이다.

 

윤동주와 달리 한용운 선생에 관해서는 참고할 만한 동영상이 많지 않았다.

백담사/서대문형무소/심우장 등의 사진 자료를 제시했고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한용운의 연설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쉽고 재미있어서

3분 가량의 드라마 장면을 함께 보았다.

 

서대문형무소는 내가 찍은 사진이 많았지만

백담사는 아주 옛날에 가서 그곳에 있는 만해 기념관을 보지 못했고

심우장은 아직 못 가보았다. 서울 갈 때마다 다른 스케줄에 밀려 놓쳤다.

남한산성에도 한용운 기념관이 있다고 한다.

백담사와 심우장은 올해 한번 가봐야겠다.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 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 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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