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교육의 파시즘/ 김상봉
근 십 년만에 다시 읽었는데도 새롭다. 도덕교육의 현실을 비판한 책이지만 도덕교육으로 대표되는 우리교육 전반에 대한 성찰이라고 봐도 좋겠다. 그 성찰은 책이 출판된 지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하다. 그동안 교실수업개선을 위한 수많은 방법론이 도입되었지만 교육에 관한 철학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문제를 다룬 그 어떤 책보다도 풍부하고 논리정연한 근거를 제시하면서도 구체적인 전망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한 페이지도 버릴 게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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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율적 강제에 길들여진 노예든 자율적인 자기절제가 습관화된 자유인이든 결과적으로 도덕적 규범을 어기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 그러나 똑같이 도덕적 행위가 습관화된다 하더라도 타율적인 억압과 노예적인 길들여짐이 사람을 단정하게 만드는 것과 자율적인 자기 규제와 자기형성의 능력이 함양되고 내면화되어 단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전혀 다른다. pp21
우리는 우리가 실현해야 할 궁극적 인간의 이상, 곧 참된 의미에서 선한 인간성의 이상을 타율적 강요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되어야 할 우리의 모습을 우리 스스로 정립한다는 바로 거기에 인간성의 자유 또한 존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우리가 되어야 할 우리 자신의 존재의 이상이 누군가 다른 자에 의해 우리에게 부과된다면, 그때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가능성과 개방성이란 어떤 타자적인 목적에 종속하는 한갓 질료적인 가능성으로 이해되고, 인간은 타율적으로 부과된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pp23
인간이 자기를 실현한다는 것은 개별자로서의 자기를 형성한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자유 능력 자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통해서만 계발될 수 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언제나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만 자기로서 존재할 수 있다. (...) 따라서 인간의 자기실현은 나의 자기실현이 아니라 우리의 자기실현 속에서만 온전히 수행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이 자유로운 자기규정과 자기형성에 존립한다 할 때, 도덕의 궁극적 관심은 실현되어야 할 자기에게 있겠지만, 그 자기란 것이 홀로주체로서의 내가 아니라 오직 서로주체로서의 우리 속에서만 완성될 수 있는 까닭에,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에 대한 관심은 고립된 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동시에 너에 대한 관심이며 마지막에는 반드시 우리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말하는 좁은 의미에서 도덕적 관심 또는 도덕감이란 바로 이처럼 너와 우리에 대한 관심을 의미한다. 그것은 나와 네가 더불어 실현해야 할 '우리', 이루어져야 할 '우리'에 대한 지향이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은 서로주체성의 자기실현과 자기정립의 능력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이상적 공동체 형성의 능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인교육이 수행해야 할 도덕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 이상적 공동체를 추구하고 그 속에서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교육인 것이다. pp24-25
중학교 도덕 교과서를 지배하는 첫째가는 도덕적 원칙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해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도덕 교과서가가르치는 도덕은 자기를 위한 도덕이 아니라 남을 위한 도덕이다. 모든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pp29
도덕교육은 사회적 약자에게 예절을 강요하는 만큼, 사회적 강자의 폭력과 횡포에 대해 어떻게 자기를 지켜야 할지도 말해주어야 한다. (...) 이즈음 우리가 접하는 군대에서의 폭력과 자살사건 등을 보면 이 나라에서 도덕적으로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무례한 것이 아니라 어디서나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가하는 폭력인 것이다. (...)
일반적으로 모든 사회적 악은 피해자들의 방관과 침묵 및 굴종 속에서 독버섯처럼 창궐한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를 진정으로 도덕적인 사회 건강한 사회로 만들기 원한다면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 양보와 희생을 가르치는 것만큼 타인이나 국가가 자기에게 가하는 불의에 대해 용기 있게 저항하는 것을 자유로운 인간의 마땅한 의무로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한국의 도덕 교과서는 희생과 봉사의 도덕을 가르친다면서 학생들을 양순하지만 비겁하고 비굴한 노예들로 기를 뿐, 자기를 지키고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 있고 당당한 자유인으로 기르는 데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pp39-40
사람들은 도덕을 이기심과 대립되는 것이라 생각하여 무조건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도덕적 태도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기부정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자기를 부정할 자기도 부정될 자기도 남아 있지 않은 까닭에, 능동적이고 자유롭게 도덕적으로 결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도덕은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의지의 발동으로서 언제나 강인하고 개성적인 주체성을 전제한다. 주체성의 본질은 자기반성으로서 자기에 대한 관심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한에서 타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자기에 대한 관심 없이 타인과 공동체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학생들을 자기긍정 할 줄 모르는 무기력한 주체로 만들어 처음부터 도덕적 능력의 싹을 잘라버리는 결과를 낳거나 아니면 불가능한 일을 강요함으로써 아이들을 위선자로 만드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pp43
우리가 학생들을 진정으로 도덕적으로 기르기 위해서는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자기에 대한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부정의 결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확장의 결과가 되게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그러나 그 자기의 외연, 즉 그것의 범위는 사람에 따라 천양지차로 다르다. 노예가 자발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자기는 자기의 입이 아니면 고작해야 자기 가족이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인이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야 할 자기의 외연은 자기가 주인으로서 더불어 형성하고 다스려야 할 세계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덕이 똑같이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자유인의 도덕과 노예도덕이 말하는 타인에 대한 관심은 전혀 그 성격이 다르다. pp44
민족이나 국가가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그 자체로서 무슨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민족이나 국가가 나 자신의 주체성을 실현할 수 있는 지평이 되기 때문이다. pp45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언어 공동체와 역사 공동체를 전재할 때에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나를 자유로운 주체로 실현하는 것 역시 바로 그런 언어와 역사 공동체로서의 국가라는 지평 속에서이다. 나의 자기실현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내가 나를 형성하고 실현한다는 것은 내가 속한 언어와 역사 공동체인 민족과 국가를 더불어 형성해나감으로써 온전히 이루어지는 일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와 민족은 나에게 소중한 대상이다. pp46
엄밀하게 말하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들 사이 또는 사회집단들 사이의 협력이란 국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나 집단들이 국가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스스로 형성해나가야 할 과제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국가가 개인이나 집단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통제하며 그들 사이의 협력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비유적인 의미로서 쓴다면 모를까 그 자체로서는 성립할 수 없는 말인 것이다. pp48
교과서는 갈등상황을 병리적인 상황으로 간주하면서 모든 갈등을 그저 역지사지와 자기양보를 통해 봉합하려 한다. 그 결과 교과서가 가르치는 윤리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계적인 중용의 윤리이다. (...) 갈등이 생겼을 때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정신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하나같이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의 화해만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적당히 타협할 것이 아니라 호주제 폐지나 국가보안법 폐지문제처럼 끝까지 싸워서 실현해야 할 가치도 있고 싸워서 얻어야 할 권리도 있다. pp56
지금 우리는 예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훨씬 더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시민사횐ㄴ 아직도 취약하며, 외세에 대해서 역시 종속적인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겨레가 두 나라로 분단되어 있는 한, 시민적 자유는 어떤 형태로든 유보되거나 제약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외적 강제의 차원에서도 자유를 위한 투쟁은 여전히 진행중인 과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자유인의 이상보다 더 중요한 교육의 이념이 무엇이겠는가?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적, 외적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할 과제이다. 그 과제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을 기르는 것은 오직 교육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pp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