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 경향신문 문화부 _ 어려운 것은 쉽게, 쉬운 것은 깊게, 깊은 것은 유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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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기만의 생각의 틀을 갖게 하는 것이 강신주의 인문학이다. 그는 이런 점에서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각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신만이 쓸 수 있는 표현과 말을 찾아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소설과 시를 쓸 때에야 비로소 민주주의가 완성된다. 그가 인문학을 늘 '고유명사의 학문'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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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는 글쓰기에서 첫 문장, 첫 문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첫 문장에서 프로인지 아닌지, 즉 흉내 내지 않고 자기만의 문체를 갖춘 사람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 자신도 첫 문단을 쓰기 위해 무려 13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떨어지지 않은 적이 있다면서, 첫 문장을 잘 쓰려면 글이 안 써진다고 쉽게 물러나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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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는 책을 쓸 때 항상 두 단어를 염두에 둔다. '애정'과 '정직'이다. 애정은 자신의 책을 읽을 독자들의 삶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는 걸 말하고, 정직이란 자신이 진짜로 느끼고 생각하는 걸 글로 써야 한다는 걸 말한다. 독자들을 유혹해 돈을 벌려고 글을 써서는 안 되고, 자신이 옳다고 느끼지 않는 것을 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독자에 대한 애정과 자신에 대한 정직만 있다면, 누구든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저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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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싶은 지 정확히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료는 그 다음에 찾으면 된다. 한번 시작한 '사다리 타기'처럼 하나의 자료가 또 다른 자료를 찾게 만들고 길을 안내해줄 것이다. 질문을 제대로 던져야 제대로 된 답을 얻듯, 자기만의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의식만 확고하면 그에 필요한 자료가 발견되기 마련이고, 홀리듯 이야기가 써집니다. 역사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영역이에요. 전문 역사학자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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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미에 박해천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청년 세대의 삶은 앞으로 더 어려워질지도 모릅니다. 욕망을 구조조정하고 새로운 주거 모델과 생활양식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대신해 그 고민을 해결해줄 리 만무하다. 기성세대가 떠넘긴 짐을 젊은 세대가 평생 떠안고 살아야 하는 이 사회구조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공동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박해천은 이 까다로운 질문을 우리 모두가 함께 떠안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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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은 한국에서 논픽션 도서를 출간한 저자가 어느 정도 생활이 되는 수준까지 수입이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도 책의 인세 수입만으로 생활을 꾸리기가 쉽지 않단다. 물질적 토대가 부족한 데는 우리 사회에서 지식의 생산도구가 되는 기관들이 대부분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의 공개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도 한몫을 한다. "(경제학자들이) 재벌이나 정부 출연 연구소에 있거나, 교수들이 재단이나 정부, 기업의 눈치를 보면서 대중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목소리와 정보들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풍토에서는 책을 내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고 훌륭한 저자들이 나올 수 없습니다."
출판사나 언론사들이 논픽션 저자를 키우는 데 인색한 것도 한 가지 원인으로 봤다. 이를테면 출판사나 언론사들이 각종 문학상을 주지만 논픽션 장르에 관해서는 제대로 된 상도 없고 그런 저자들을 키우려는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 출판사가 외국 유명 저자들에게는 몇 억 원씩 선인세를 주면서, 정작 국내의 잠재력 있는 저자에게는 아무런 선투자도 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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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은 좋은 문장에 대해 확고한 기준을 갖고 있다. 바로 정확한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정확한 문장이란 문법적으로 정확한 문장이 아니라, 사태의 본질에 대해 정확한 인식에 도달함으로써 다른 그 어떤 문장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문장을 뜻한다.
"어떤 사태의 진실을 백퍼센트 담아내는 문장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문장으로 표현되면 부정확해지는 그런 문장 말입니다. 정확한 인식에 도달하게 해주는 문장이 정확한 문장입니다. 그런 문장을 쓴다면 당연히 인식의 생산에 성공할 수 있죠. 마찬가지로 정확한 문장을 쓰지 못하면 어떤 인식에도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화려하거나 현학적인 문장은 그 부작용으로 생기는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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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는 '곁'을 중시한다. 글을 쓸 때의 원칙도 '곁'과 관련 있다. 누구의 곁에서 쓰고 있는가, 누구의 곁에서 들려주는가. 위에서 내려다보며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아래서 올려다보며 굽실대지 않는다. 그의 글은 그렇게 독자의 공감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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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는 위안을 주지도, 선동하지도 않았다. 그가 생각할 때 위안과 선동은 모두 '어른'의 목소리였다. 엄기호는 다르게 접근했다. 기성세대의 눈엔 찌질하고 무기력하고 탈정치적이고 이기적이고 싸가지 없는 오늘날 청춘의 육성을 그는 그저 담담히 전했다. 채근하거나 위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엄기호의 전언을 듣다 보면 어느새 젊은이들의 생각이 이해됐다. 젊은이들의 속내를 모른 체했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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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는 현장의 말을 '증언'이라고 표현한다. 학자들에게 이러한 증언은 미가공 자료에 불과하지만, 엄기호에겐 자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미 증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현장 사람들의 말조차 엄기호와의 만남에서 나온 것이니, 그들과 엄기호는 이미 책의 공저자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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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가 생각하는 배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발견과 확인이다. 발견이 모르는 걸 찾아내는 일이라면, 확인은 아는 것을 검증하는 일이다. 엄기호는 확인에는 관심이 없다. 심지어 확인을 배움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한다. 엄기호의 말 걸기는 발견의 과정이다. '나도 너도 이걸 몰랐구나', '한국 사회의 청춘이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하는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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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는 우리에게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폐허를 직시할 용기'다. 눈앞에 폐허가 펼쳐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 폐허를 바라보지도 않고 말하는 희망은 거짓이다.
그래서 엄기호는 섣불리 대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차라리 폐허에 대해서 끈질기게 말한다.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게 있다. 폐허 속에서도 삶은 지속되고, 재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엄기호는 학창시절에 폭력적이고 부패한 교사를 만났다. 어린 나이에 학교교육의 부조리함과 마주했다. 이후 교육은 줄곧 그의 관심사였다. 그는 한국의 교육이 이미 '망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망한 학교 안에서도 교사와 학생은 살아간다. 엄기호는 '살아 있는 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 '망했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나는 이미 망했어요. 그때 '당신도 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기쁘죠. 또 '걔도 곧 망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나, 너, 우리가 모두 망하면 그때부터 '공동의 운명'으로 엮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미 망한 걸 알았으니 흥분하기보다 담담해질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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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는 머릿속에 누군가 한 명을 앉혀놓는다. 청년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청년을, 교사에 대한 글을 쓸 때는 교사를 떠올리면서 쓴다. 머릿속으로는 그와 대화하고, 손으로는 써나간다. 다 쓴 글은 편집 받는다. 글은 혼자 쓰더라도 거기 담긴 내용은 여럿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다는 착각'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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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기 스스로를 연구자보다는 교육자라고 여긴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배우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고 그들이 배울 수 있는 언어로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미래의 저자들에게도 같은 조언을 한다. "책이란 뭘 공부했는지 정리하고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들려줄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고민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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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글을 틈틈이 모아두었다가 전체적으로 큰 틀에 맞추어 재배열하는 방식이다. 처음부터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굵직한 핵심어만 남겨두고 책 쓰는 중간중간 세부 구성을 조금씩 바꿔나간다. 심각하게 바꿀 때도 있다. 틀이 있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에 맞게 틀을 짜나가는 식이다.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구체적인 작은 것들을 모아서 커다란 주제에 접근하는 편이에요. 일상생활에서도 우선순위를 매겨 계획을 짜는 일을 그리 잘하지 못해요. 노트 필기도 나열식이죠. 주된 것과 부차적인 것을 엄밀하게 구분하지는 않아요. 생각도 그렇게 하고, 글도 그렇게 씁니다."
자기만의 글쓰기 방식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꾸준히 많이 읽고 써야 한다고 조언하다. "많이 읽고, 그것들이 내 안에서 넘쳐흐를 만큼 가득할 때 비로소 글이 술술 써지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많은 지식을 전달하려는 욕심을, 조금이라도 잘 전달하겠다는 욕심으로 전환시켜야 해요."
이주은이 좋아하는 작가는 홍은택 씨다. 심오한 지식과 소소한 정보를 잘 결합시키는 점, 생각의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점, 저널리스트가 쓴 문장처럼 명쾌한 점, 자기만의 생생한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점 때문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 홍은택이 마치 모험을 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누리는 것 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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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일상은 읽고 쓰는 일의 반복이다. 어찌 보면 책 속에 구속된 삶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게 독서는 '자유'의 다른 말이자, 인간이 확보해야 할 최소한의 '권리'다.
"'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게 나의 믿음이다. 우리가 너나없이 자유로운 인간이고 싶어 한다면, '책을 읽을 자유'는 자유의 최소한이다. '최소한의 도덕'(아도르노)이란 표현을 빌려 '최소한의 자유'라고 말해도 좋겠다. '닫힌 사고'와 '빈곤한 생각'만큼 우리를 옥죄는 감옥도 없을 테니까. 정치써클에 가담한 혐의로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한 도스토예프스키에게도 비록 복음서라는 단 한 권의 책이긴 하지만 책 읽을 권리는 보장되었다. '책을 읽을 권리'가 보편화된 것은 역사적으로 보자면 극히 최근의 일이지만 그것은 이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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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이 몸담고 있는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도 대학 내 통섭적 흐름의 한 결과다. 학생들은 전공과 상관없이 학교에 들어와 여러 학문을 접한 뒤 원하는 전공을 택할 수 있다. 원하는 전공이 없다면 스스로 만들어도 된다. 경제학과 심리학, 철학과 물리학을 섞은 전공을 할 수 있다. 이른바 학생설계전공이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운데 두고 진화심리학, 역사학, 문학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 장대익이 꿈꾸던 학부 교육을 이제야 그의 학생들이 받고 있는 것이다.
장대익은 요즘 학생들이 "세련됐지만 엉뚱한 면이 없다"고 평했다. 주어진 문제는 잘 풀지만, 문제를 낼 수 있는 학생은 없다는 것이다. 예전엔 별다른 지식이 없어도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요즘은 성실하지만 창의적이지 않은 학생이 다수다. 장대익은 이 학생들의 창의성을 깨우는 것이 대학의 화두라고 생각한다.
한국 출판계에 수준 있는 논픽션 도서가 적은 것도 이러한 교육 현실과 관련 있다. "단순해요. 수준 있는 저자가 없거든요. 한국의 현 교육 체제에서 연구와 소통을 모두 잘하는 저자가 나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독서, 작문, 탐구 수업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저자, 지식인을 배출해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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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는 종교를 박멸하자고 하지만, 장대익은 잘 길들이자고 주장한다. 마치 바이러스를 길들여 백신을 만들고, 야생 소를 길들여 젖소를 만들 듯이. "종교가 그 자신의 증식을 위해 인간의 심신을 갈취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종교를 잘 순화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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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은 집필의 아이디어를 조금 더 일상적인 것, 삶 자체의 크고 작은 계기들에게서 찾으려고 노력한다.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수집하는 정보는 '기본'이고, 좀 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스스로 즐거운 글쓰기를 하려면 더욱 구체적인 일상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목격하는 장면, 강연이나 여행 때 접하는 에피소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할 때 나오는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들 속에서 글쓰기의 모티프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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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글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내용이 있는가'라고 물어보는 것이 훨씬 중요해요."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행위의 도구일 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지고지순한 목적은 아니다. '글을 쓰면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게을리하면, 그 순간 글쓰기는 그 자체로 맹목적인 행위가 되어버릴 위험이 크다. 글이 막히는 이유는 쓸 내용이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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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책이 지식과 논리로만 이뤄질 필요는 없다. 사람들을 책에 이끌리게 만드는 힘은 넘치는 지식이나 촘촘한 논리보다는 마음의 잔물결을 포착해낼 수 있는 감성이다. 온갖 화려하고 힘센 매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대중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책 가까이에 두려면, 따뜻한 감성을 유연한 문장으로 담아낼 줄 아는 정여울 같은 작가가 우리 사회에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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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은 단순한 삶을 지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순한 삶은 소비를 줄이는 데서 시작된다. 그는 책 구입비와 식비를 제외하면 지출이 거의 없다. 휴대폰은 갖고 있지만 메일을 확인하거나 드문드문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데만 사용한다. 그의 집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다. 화장품이 없고, 옷장이 없고, 헤어드라이어가 없다. "동네 주민들이 멀쩡한 물건을 그냥 버려서 그걸 갖다가 쓰곤 해요." 그는 평소 화장을 하지 않고 세수도 쌀트물로 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에 누군가는 그에게서 생태주의자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희진은 생태주의자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생활방식을 선택해서 살 뿐, 무슨무슨 '주의'와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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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 보는 것은 그가 유일하게 의식적으로 하는 사회운동이다. 책을 고를 때는 크게 네 가지를 기준에 두는데, 지적으로 자극적인 책, 문체가 치열한 책, 독특한 책, 정치색이 뚜렷한 책이 그것이다. 대체로 베스트셀러는 읽지 않는다. 자연계에서 그러하듯 책의 '종 다양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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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은 '빤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빤한 말'을 하지 않기 위해 그는 소재가 떠오르면 첫 번째로 그 이슈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들을 노트에 목록으로 만들어둔다. 예컨대 글의 소재가 복지라면 '복지가 늘면 게을러진다', '복지가 늘어나면 성장이 둔화된다' 같은 말들을 적어놓는다. 그런 다음 통념적인 생각들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두 번째는 자신이 아는 가장 까다로운 독자 한 명이 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고 쓴다. 정희진이 말하는 '가장 까다로운 독자'는 실제 그의 지인이다. 가상의 독자든 실제 독자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글을 쓸 때 평균적인 독자를 상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중은 동질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자신이 몰랐던 것을 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쓰는 글은 낭비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거나 내가 변화할 수 있어야 해요. 이미 아는 걸 쓰면 글이 진부해져요. 그래도 한국 사회의 통념이나 기존의 논쟁 구도를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전선을 이동시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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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막히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생각의 출발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글쓰기는 곧 '생각'이라는 것이 정희진의 지론이다. "글쓰기 강좌에서는 보통 테크닉을 많이 가르치는데, 생각이 없으면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글을 쓸 수가 없어요. 글쓰기에서 중요한 건 생각과 자기 입장입니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글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 자판으로 글을 입력하는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깊고 풍요로운 사유는 그 자체로 중노동입니다. 그 긴장을 견디는 것이 관건이죠. 생각만 잘 정돈되면 10장짜리 원고도 30분 만에 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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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원은 한국의 글쓰기 교육에 할 말이 많다. 최근 글쓰기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좀 더 글쓰기 수준을 높이려면 초중등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이 더욱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가령 프랑스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수사학을 상당히 체계적으로 가르칩니다.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말하는 방법이라든지, 자기만의 고유한 스타일로 우아하게 글 쓰는 방법, 책을 읽을 때는 저자의 논점이나 주장을 정확히 파악하는 방법 등을 정규적으로 가르치죠.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기술의 총체로서 수사학 교육이 많이 부족합니다. 이런 교육이 충실히 이루어져야 인문학의 필요성도 느낄 수 있고, 좋은 논픽션 도서도 더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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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쓰는 사람에게는 다음 세 가지를 조언한다. 먼저 15장 분량으로 서문을 써보는 것이다. 책을 왜 쓰려고 하는지 스스로 정리가 된다. 두 번째는 비슷한 책을 참고하면서 22~25개 정도의 세부 목차를 작성하는 것이다. 과연 자신이 한 권의 책을 쓸 만한 거리를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감을 잡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가장 재미있을 챕터를 실제로 써보는 것이다. 자신이 글발이 있는지 없는지, 공저가 필요한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가능하면 제목까지 정해보는 것이 좋다. 제목 자체가 책의 콘셉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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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은 일본의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가 자신의 책상 앞에 붙여둔 메모를 기억해냈다. '어려운 것은 쉽게, 쉬운 것은 깊게, 깊은 것은 유쾌하게.' 그가 추구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인간은 저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마련이에요. 미래에 대해 미리 10가지 이상을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최악이 아닌 것만 확인하면 돼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갖고 최악을 피하면 돼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가 가장 재미있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