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교육 관련

페다고지를 위하여 | 박찬영 ㅡ 일본 메이지 시대 학교교육의 틀을 고수하는 한국

릴라~ 2018. 5. 5. 16:13

 

프레네 페다고지의 불변요소 30가지에 대한 쉽고 간명한 소개도 좋지만(한국에 프레네의 저서를 직접 번역한 책이 아직 하나도 없다고 한다), 우리 학교교육이 일본 메이지 시대 학교교육의 틀을 얼마나 굳건히 지켜오고 있는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1장이 더욱 눈에 들어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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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육사 차원에서 우리의 학교교육은, 가치평가를 떠나 대단히 오리지널한 학교문화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의 학교문화는 유사 학교문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본의 학교교육의 문화를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철저히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이와 같은 평가가 정당한 것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우리 학교교육이 일본의 근현대 학교교육의 방식을 유산으로 간직하고 보존해왔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 교사들은 일본의 학교교육에서 요구되었던 교사의 역할을 일말의 의심 없이 계승해왔다. 1997년 이후 우리나라 학교교육이 평가, 상담을 위시한 교육 외 과외 활동을 실적화하는 인정제 등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교육체제로 재편되면서, 그 영항에 풀이 되어 눕기도 하고, 일부는 저항하기도 했지만 생활세계 속의 일반 교사의 삶은 메이지, 다이쇼 시대의 학교 속에서 저항 없이 살아왔다. 그 주된 근거는 교과, 생활지도, 행정업무 이 모두를 다 하는 우리나라 학교 교사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교사 고유의 일이었다. 일본이 우리에게 전해준 이 유산은 오늘날 유럽 국가 중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한 명의 교사가 이 같은 교육활동을 모두 맡아 하는 곳이 어디에 있는가? 프랑스의 경우 교장과 더불어 학교 운영의 주체인 상담교사가 따로 있고, 행정 업무는 행정직을 맡은 이들의 소관이며, 교사는 오로지 교수활동만을 한다. pp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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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교사의 역할 그 이상으로 메이지, 다이쇼 시대의 학교 유산으로 짚어야 하는 것은 연중 '학교행사'이다. 학교행사는 행정업무 이상으로 교사와 학생을 동시에 다망하게 하고, 교사의 자율성을 무화시키며, 암묵적으로 수업의 지위를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하도록 했다. 연중 학교 행사만큼 우리 학교교육의 유사 고유성을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적지 않은 우리나라 교사들은 학교행사를 자연스러운 학교교육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학교행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강제된 해방 이후 남은 식민지 유산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른 저서를 통해서 제시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 일단만 밝히면 우리의 학교행사는, 이를테면 입학식, 졸업식, 운동회, 소풍, 심지어 학예회까지, 이는 1세기도 더 전에 일본이 발명한 것이다. (...) 우리의 운동회는 일제강점기 학교행사의 일환으로 정착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그 틀은 계속 유지디었다. pp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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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때로는 '더 배우는 것이 아니라 버려야 하는 것'이라는 통찰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소외된 교육을 그들을 통해서 더 배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적어도 핀란드를 위시한 그들 교육의 성취는 학교교육에서 수업을 제외하고는 그 밖의 것은 다 버린 데에 토대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교사에게 수업을 남겨두고, 학교행사와 행정업무를 없애는 것은 우리 학교교육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의 확보이다. 이는 우리 공교육을 풍성하게 만드는 가장 손쉬운 시작이다. 유럽의 교사는 수업을 한다. 더 정확히, 수업만을 한다.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 교사는 수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 대문에 일본이나 우리나라 교사처럼 분주하지 않다. 물론 바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수업을 중심으로 한 노동이 필요해서이다. 프랑스 중등 교사는 주당 15시간, 혹은 17, 18시간 가르치지만, 주당 그 이상의 시간을 학생들의 수업 과제나 시험 결과물을 교정하며 보낸다. (...) 여전히 우리의 학교교육은 메이지, 다이쇼 교육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 다시 말해 학교를 정상화하는 것은 프레네 페다고지를 위시한 모든 페다고지 연구와 실천을 위해서도 선결 과제라 할 수 있다. 가장 손쉬운 해법은 앞서 말한 것처럼 연중 학교행사와 행정업무를 무로 상정하는 대안에 서는 것이다. 교사를 수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재정립해야 한다. 이는 결코 업무 경감 수준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pp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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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4월부터 1947년 3월까지, 소학교를 대신하여 전시체제의 주축을 담당했던, "황국민의 기초적 연성"을 목적으로 삼은 '국민학교', 일본은 1947년에 버린 그 명칭을 우리만 홀로 1995년까지 고수해온 것을 생각하면, 메이지, 다이쇼 시대의 '학교행사'는 이미 우리 교육의 피와 살이 되었기에, 거기서 파생되는 교육적 효과를 언급하며 이를 여전히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입장은 무엇보다 우리의 학교교육이 유사 고유성에 토대하고 있다는 것을 성찰하지 못한 단견으로서, '학교행사'에 토대한 일본의 학교문화를 상대화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교사의 자율성은 축소되고, 풍성할 수 있는 학교문화는 학교행사에 치중한 메이지 교육의 문화로 함몰된다. 따라서 우리의 페다고지 논의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p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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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교사에게 수업 외에 학교행사와 행정업무를 하도록 요구해보라. 아마 그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다들 거리로 나올 것이다. 북미의 교사에게 주어진 주당 수업 이외에 보충으로 창의적 체험활동같이 주당 2시간의 특별활동을 요구해보라. 바로 지나친 요구라는 항의가 들어올 것이다. 교사는 '수업'을, '수업'만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공교육 논의에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어떤 학교행사도 교사에게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그 이상의 것은 개별 교사나 일군의 교사들이 필요시 '자발적으로' 하나의 문화로 구성해가야 하는 선택 사항이어야 한다. 프레네 페다고지 역시 수업만을 하는 프랑스, 나아가 유럽 학교교육의 틀 내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교사가 행정업무와 학교행사를 겸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 자체가 교육의 질을 고려하지 않는 몰상식한 발상이다. p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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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학교교육 혹은 학교문화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불행하게도 대부분은 '근대 일본의 교육'에 다다른다. 방학 동안의 교사의 '자가연수'? 그것은 일본 공립학교 교사의 '지타쿠' 연수와 다름없다. 실제로 일본 교사들이 유럽 학교를 방문하면 유럽 교사들도 방학 때 자택연수를 쓰는지 질문한다. 일본 학교교육 문화와 현상을 두고 '우리와 같다'거나 '우리와 비슷하다'는 표현을 쓰는 건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 학교의 현주소의 기원에 대한 몰상식, 몰이해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 우리는 그동안 일본이 남기고 간 학교교육을 성찰 없이 보존하고 지켜왔다. pp 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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