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철학, 심리

꿈에게 길을 묻다 / 고혜경 __ 내면을 돌보는 일도 사회정의만큼 중요합니다

릴라~ 2018. 9. 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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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겪은 5.18은 뼈아픈 역사적 사건입니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함으로써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이미 그런 활동을 활발히 해오셨고요. 이런 작업은 아직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기에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이 일과 더불어서 여러분 각자가 자신을 위해 해야 하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내 삶이 담보 잡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건은 한 세기가 지나야 진실이 밝혀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영구히 미제로 남아 진실이 묻혀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줍니다. 정의가 실현되는 날까지 일상의 나날이나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해오신 작업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지는 일과 나란히 여러분 자신의 삶도 건강하고 충만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챙겨야 하는데, 그러려먼 광주트라우마센터 같은 기관이나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일은 궁극적으로는 각자 자신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세상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각자의 마음을 돌보고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일'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흔히 '내면 작업'이라고도 하는데, 일 혹은 작업이라 말하는 이유는 성숙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누구나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은 내면의 일을 그 값어치만큼 강조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여기 계신 분들은 이 일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 없으니 초대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요. 내면의 일에 관한 한 여러분에게는 선구적인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세상과 사회정의와 각자의 주변을 향해 있던 시선을 안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이 일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은 피맺힌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정말로 강인한 분들입니다. 각자의 내면에 자리한 상처에서 흐르는 피로 이 역사적 비극을 증언하는 삶을 살 수도 있고, 그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하여 '살아남은 자의 의미'를 세상에 드러내는 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요원하게 생각되시겠지만 후자를 위해 내딛는 첫걸음은 위대할 겁니다. 이는 눈을 내 안으로 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지구에서 달을 보는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달에서 지구를 보는 겁니다. pp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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