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토머스 게이건] __ 미국 변호사의 독일 사회민주주의 체험기
미국 변호사의 독일 "사회민주주의" 사회 체험기다. 노동법을 전공한 변호사답게 미국과 독일이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 노동 환경 및 삶의 질이 얼마나 다른지 조목조목 상세하게 분석한다. GDP가 같다고 삶의 질이 비슷한 수준인 것은 아니다. 미국 시민들은 독일의 5분의 4 정도의 세금을 내지만 사회보장 및 사회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통로가 독일보다 형편 없다. 두 사회의 자본주의는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안타까운 점은 이 책의 '미국'을 '한국'으로 바꾸어도 될 만큼 우리 사회가 놀랄 만큼 미국과 똑같다는 사실이다.
독일 사회 전반을 들여다본 저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모두들 '교육' 개혁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교육'보다 '노동법'이 훨씬 중요하다고. 대학진학률보다 고등학교 졸업자도 신문과 텍스트를 평생 읽게 만드는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고. 우리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조언이다. 독일 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으로 작동하는지, 그 의사 결정 과정의 특징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유머와 냉소를 적재적소에 구사하는 저자의 입담 덕분에 더욱 재미나게 읽었다.
"읽고 쓰는 능력을 키우려면 학사 학위를 남발하는 것보다 사회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게 더 중요하다.“
"노동법이 더 중요해. 교육은 중요한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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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서 나는 제조업 기반이 사라져 버리면 민주주의도 사멸한다고 본다. 제조업이 발달하면 노동운동을 조직화하는 일이 한결 쉬워진다. 그리고 노동운동이 활성화될수록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가운데 사회민주주의를 유지하기가 한층 용이해진다. 제조업의 토대가 무너진 미국과 영국의 투표율을 조사해 보라. 그런 다음 제조업의 토대가 튼튼한 프랑스와 독일의 투표율을 비교해 보라. 제조업의 토대가 탄탄할수록 전문 기술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 어떤 면에서 그들은 자부심을 가진 '전문가'이다. 그래서 빠지지 않고 투표에 참여한다. 게다가 제조업의 토대가 탄탄하게 유지되는 한 최소한 노동운동이 존재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사회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p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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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회민주주의는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사회주의, 즉 국가사회주의가 아니다. 프랑스의 사회민주주의와도 약간 다르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는 밖에서는 미국인이 분통을 터뜨리는 대상일망정 안에서는 독일 주식회사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운영 원리이다. 독일이 탄탄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 덕분이다. 사회민주주의하에서는 중대한 경영상의 결정을 내리는 회의에 참석할 수 있으며, 경영자를 감시하고 견제할 대표자를 선출할 수 있다. 숙련 기술자로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고유의 문화를 유지할 토대를 갖고 있는 것이다. (...)
여기서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에 대해 설명하겠다. 직장평의회, 노사공동결정, 지역별임금결정제도 등이 그것이다. p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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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회주의에서는 모든 일이 신뢰 없이 굴러갔다. 반면에 독일식 사회민주주의는 서로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신뢰가 없다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
유럽식 모델, 최소한 독일 모델 덕분에 미국인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느 순간이든 50만 명의 독일인은 서로 돌아가며 공직에 앉게 되므로 '사회적 신뢰'는 나날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독일인이나 유럽인은 세울 인상을 주장하는 정당에 마음 놓고 한 표를 던진다고 생각한다. 이사벨은 바버라와 달리 자기가 낸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사회민주주의가 외국 이주민에 개방적이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유럽인은 외국인 혐오주의자는 아니지만 외국인을 신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pp16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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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나 영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신문의 유료 발행 부수가 감소 추세에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과 같은 몇몇 주요 일간지에 실린 기사는 지금도 일주일 내내 화제가 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독일 일간지에는 보통 4~5개의 섹션이 있는데, 그 하나하나가 종일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 둘 수 있다. 그러니 책을 서로 돌려보듯 독일인이 이들 주요 일간지를 돌려보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반면에 겉만 그럴싸할 뿐 아무 알맹이가 없는 미국의 신문은 길거리 노숙자에게 깔고 앉으라고 주기조차 미안할 정도이다. p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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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신문을 둘러싼 전반적인 상황은 각 나라의 제조업 상황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에 비하면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지만 독일 역시 제조업의 규모 축소 혹은 구조 조정을 겪었다. 또 그와 비슷하게 시민들의 사회 참여가 위축되는 것도 경험했다. 고용 규모가 가장 컸던 제조업 부문의 노동자 수도 감소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그래도 독일 노동자는 비간트가 말했던 경영 참여의 권리를 충분히 누린다. 이들에게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면서 신문을 읽을 이유가 충분하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EU의 몇몇 나라에서는 제조업 부문이 이미 쇠퇴해서 노동자들이 자기들의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설 이유가 없다.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최신 뉴스를 따라잡아도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득이 아무것도 없으니 귀찮게 신문을 읽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나 독일의 경우 기본적인 복지 제도가 온전히 유지되고 있고 대부분의 시민은 집단행동이 꽤 쓸 만한 투자임을 알고 있다. 급격하고 광범위하게 시민의 참여가 쇠퇴하는 것을 막을 브레이크가 시민 사회 안에 존재하는 셈이다. (...)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뮌헨, 베를린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독일에서는 열차, 버스, 카페, 식당 어디서든 간에 사람들이 신문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미국인 못지않게 젊고 세련되었지만 신문, 특히 종이 신문을 열심히 읽는다. pp168-169
더 놀라운 것은 만약 OECD 순위가 옳다면 내 앞에서 두툼한 신문을 펼쳐 들고 열심히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교 졸업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이라면 학사 학위 취득 후 곧바로 멈췄을 평생교육을 이들은 꾸준히 실천하는 중이다. 따라서 읽고 쓰는 능력을 키우려면 학사 학위를 남발하는 것보다 사회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게 더 중요하다. p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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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모델의 대단한 점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소비를 줄인다는 사실인데 이는 '단정하고 질서 정연한' 국민성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국민성을 만들어 낸 제도를 눈여겨봐야 한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북유럽 나라에서도 이런 면을 볼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사람들은 왜 그러한 절제를 내면화한 것처럼 보일까? 달리 말해서 많은 세금을 내면서도(가처분소득이 별로 없는데도) 어떻게 그들은 미국이노다 더 많이 저축활 수 있을까? 미국인은 세율이 훨씬 낮은데도(가처분소득이 풍부한데도) 왜 빚구덩이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것일까? p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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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 눈에 띄었다. 온통 젊은이들뿐이었다. 미국의 버클리에도 젊은이들이 많기는 하지만, 1997년 베를린을 방문한 첫날 밤에 본 젊은이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가장 최근 베를린을 방문한 2009년에도 매우 놀랐다. 베를린을 방문할 때마다 시내에서 노는 청춘남녀들은 늘어나기만 했다.
"그래? 근데 그게 경제랑 무슨 상관이 있지?"
상관이 없다고? 독일인은 돈을 너무 안 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미국에는 많다.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글쎄, 베를린에서만 돈을 쓰는 것 아니겠어? 그건 옳지 않다. 제대로 된 경제가 아니지."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 베를린자유대학교 등은 등록금이 무료라서 똑같이 대학생 자녀를 두었더라도 독일인 부모는 미국인 부모만큼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독일 경제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시카고의 사립 드폴대학교나 노스웨스턴대학교에 다니는 젊은이들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빚에 찌들어서 밤늦게까지 2교대, 3교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독일의 베를린자유대학교나 훔볼트대학교에 다니는 젊은이들은 등록금이 무료인 대신 카페에서 마음껏 놀면서 이렇게 돈을 쓰지 않는가! p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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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교육에 관해서 궁금한 게 많았다. 미국인이 으레 그러듯 "교육제도가 어떤가요? 알고 싶어요!"라고 물었다. 독일이 미국을 앞선다면 그 원인은 '학교교육'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정을 들어보니 놀랍게도 독일의 학교는 엉망이었다.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을 뿐더러 그동안 명성을 떨치던 각종 직업학교도 붕괴하고 있었다. 모든 자금이 동독을 재건하는 데 전용되었기 때문에 학교들은 재정난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독일의 경쟁력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학교교육이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 그러면 무엇이 중요한가?
경제학자는 나라별 경쟁력 등을 평가하면서 교육에 가중치를 둔다지만 사실 더 크게 가중치를 두어야 하는 것은 기술 수준과 집단적 문제 해결 능력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집단적 문제 해결 능력은 대학 진학률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올바른 기업 지배 구조와 노동법을 갖춰 기업 안팎의 문제를 집단적으로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는 게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중얼거렸다. 노동법이 더 중요해. 교육은 중요한 게 아니야. pp24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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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사람이 대학에 진학하는가의 문제보다 얼마나 많은 성인이 신문을 꾸준히 읽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것이 교육 수준의 척도라는 게 내 지론이다. 특히 사회민주주의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자가 대학교 졸업자에게 밀리지 않고 살아가려면 신문을 꾸준히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글로벌 경제 속에서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고등학교 졸업자가 대학교 졸업자보다 우위에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바로 수가 많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자가 신문을 열심히 읽고 열심히 투표한다면 훗날 몸에 밴 기술의 가치가 떨어져도 얼마든지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pp250
"독일은 변했습니다." 맞는 말이다. 신문 시장이 축소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베를린에서는 신문 전쟁이 한창이다. 베를린 시민들은 대학교 졸업, 아니 대학교를 가지 않았어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꾸준히 무언가를 읽는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
그러면 독일에서는 왜 2010년에도 신문 전쟁이 계속되는 것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독일의 신문은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문이라는 공공재를 배포해서 이윤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독일의 경우 인터넷에 광고를 많이 빼앗긴다 해도 신문사의 대량 해고 사태 같은 것은 보기 힘들다. 반대로 미국의 경우 '뉴욕 타임스'만 해도 수익성 향상을 위해 연봉 삭감과 인원 감축의 칼날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중이다. 독일은 사회민주주의 사회여서 공공재를 수익 창출의 도구로 삼지 않기 때문에 공공재 성격이 강한 신문이 살아남는다고 설명할 수 있다. p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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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마이스터가 되기 위한 길을 걷는 학생에게 일한 만큼 급여를 주는 게 독일만의 독특한 교육 이념이란다. 미국에도 당연히 이와 비슷한 발상에서 시작된 제도가 있다. 내 조카 한 명도 그렇게 해서 기술을 배우고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인정받았으나 그 길로 쭉 나가지 않고 마케트대학교에 진학했다. 독일에서 직업학교를 마친 학생은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인정받는다. 기술을 배우는 동안에도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등 노사관계를 몸으로 익힌다. 임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기술을 갈고닦음과 동시에 기술을 활용하지 않는 방법도 배운다는 점에서 기술교육과 정치교육을 동시에 받는 셈이다.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컴퓨터를 다룰 줄만 알 뿐 실질적인 특별한 기술이 없는 단순한 '지식 노동자'에 머물 우려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
이런 직업학교 출신이 주축을 이루는 덕에 독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제조업 부문이나 '수출 산업' 부문에서 놀라울 정도로 높다. 약 80퍼센트 수준을 자랑하다. 반면에 공공 부문이나 공무원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매우 낮아서 약 40퍼센트에 머물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은 이와는 정반대로 공공 부문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높지만 제조업 부문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형편없이 낮다. 노동조합 조직률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독일식 교육이 미국식 교육보다 뛰어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고등학교 졸업자라 해도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단체 행동에 나서는 법을 훤히 꿰고 있다. (...)
듀이가 살아 있다면 듀얼 트랙이란 실용적인 기술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정체성까지 가르쳐주는 시스템이라고 말할 게 분명하다. 그래서 '듀얼'이다. 학생은 기술에 투자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기술을 정치적으로 지킬 수 있는지도 배우는 것이다. p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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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독일의 현행 노동법이 제정되기까지 라인 자본주의, 또는 가톨릭 자본주의의 영향이 컸다는 점이다. 나는 이 라인 자본주의가 베를린에서도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p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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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훈련, 교육, 휴식 등 노동조합의 활동 전반을 숨죽이며 꼼꼼하게 관찰했다. 정말 치밀하고 대단했다. 먼저 독일의 노동조합은 '직장평의회를 지원하는 역할'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단위 사업장의 경영자는 대규모 노동조합을 상대하는 부담을 덜기도 한다.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보면, 독일 노동조합은 미국이라면 노동조합의 발목을 잡는 온갖 궂은 일을 직장평의회에 떠맡긴다. 해고 문제를 처리할 권한까지 위임한다. 간혹 말썽 부리는 노동자가 있어도 어떻게든 일자리를 유지하도록 도우며 비용을 지출하는 기관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직장평의회이다. "이봐, 그런 일은 직장평의회가 도맡아서 처리하도록 하자고." 이뿐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라면 노동조합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기 십상인 노동규칙의 변경 등 법률적 해석이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독일에서는 직장평의회가 책임진다.
물론 세계 어디서나 다 그러하듯 독일의 노동조합에도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뒤따라 다닌다. 오랜 세월에 걸쳐 경영자나 언론 등의 다양한 집단이 핏대를 세우며 노동조합을 헐뜯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조합이 강할 때도 직장평의회는 약하다. 따라서 노동조합과 직장평의회가 역할을 분담할 경우 노동조합이 임금 협상이나 전국적인 정치 투쟁 등 큰 문제에 집중해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 단위 사업장에서의 존재감은 약화된다는 게 단점이다.
나는 노동 변호사로서 미국에 돌아가 빈사 상태에 놓인 노동조합에 전할 메시지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봐 동지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조합비를 지출하는 일을 관두자고. 그 대신에 직장평의회를 만들어 그쪽에다 넘기는 게 어때? 사소한 고충을 들어주는 데 노력하기보다는 중대한 정치 투쟁에 역량을 집중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pp279-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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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음, 아무래도 저는 독일인이니까, 음, 저로서는 독일이 더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왜요?"
"어느 곳이 더 잘 사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더 안정적으로 사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영국에 사는 친구한테 가 봤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모기지론, 집을 싸게 사는 방법, 집값 상승 전망 등등 돈 문제만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요. 언뜻 봐서는 영국인이 독일인보다 돈도 많이 벌고 잘 사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돈 벌어 저축해 놓으면 뭐하겠어요. 영국처럼 부동산 투자가 활발한 나라에서는 조만간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벌어 놓은 것을 다 까먹고 말 텐데요. 모든 에너지를 돈에만 쏟아붓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는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없는 법이에요. 여기 독일에서는 그런 것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살면서 그럴 에너지를......"
그녀는 이 대목에서 온몸에 기를 불어넣으려는 듯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 모든 에너지를 어떤 것에 맘껏 쏟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pp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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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말했지만, 겨우 사흘이면 끝나고 마는 미국의 변호사 시험과 달리 독일의 변호사 시험은 수개월 동안 치러진다. 합격률은 60퍼센트 정도라고 했다. 시험을 치를 기회는 단 두 번밖에 없다. 그래서 대학교를 다니면서 내내 죽어라 법률 공부만 파고들었다 해도 두 번 불합격하면 영원히 시험 칠 기회를 박탈당하고 만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떨어진 사람은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미국에서는 변호사 시험보다 로스쿨 1학년을 마치기가 더 힘들다. 하지만 독일의 변호사 시험이 힘든 것에 비하면 그건 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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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모델의 경우 기업은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이어서 의사 결정은 빠르지만 재대로 실천하기가 어렵다. 맨 밑에 있는 직원이 일에 열의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반면 노사공동결정제도와 직장평의회가 있는 독일에서는 의사 결정을 내리기가 무척 힘들다. 하지만 슈트랙이 지적했듯이 일단 의사 결정이 내려지면 실행에 옮기기는 쉽다. 두세 명의 유럽인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미국에서 뭔가를 제안하면 미국인은 '그렇게 합시다'라고 말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반대로 여기 유럽에서는 뭔가를 제안하면 모두 '오, 그렇게 할 수 없을 거예요.'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그렇게 변해 있습니다." p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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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독일의 청년 노동자는 자발적으로 노동조합비를 납부하는 것일까? (...)
듀이는 일찍이 학교가 실용적인 기술만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 대신에 젊은 학생들에게 정치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이유, 깨어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습득한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등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
미국의 문제는 교육에 있다는 게 내 솔직한 생각이다. 지금처럼 어린 학생들에게 알량한 지식이나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치기에 급급한 교육만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에 어떻게 정치적으로 협상을 잘할 것인가에 주안점을 둔 교육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유럽식 모델, 구체적으로 꼬집어서 말한다면 독일 모델이 실패했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나는 사민당 본부에서 똑똑하다고 소문난 좌파 인물들을 두루 만났다. 그들은 고등학교 졸업 학력 수준인 중산층의 생활방식을 보호하는 게 자기들의 임무임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그렇다. 중산층의 생활이 안정되거나 향상되는 것은 사회 안정의 불가결한 요소이다. 또 정치인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으로서 책임지고 달성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런 말 하기는 정말 싫지만, 좋은 집안에서 곱게만 자란 케네디 스쿨 졸업생 같은 민주당 정치인은 성인 인구의 73퍼센트인 고졸 이하 학력자의 생활 수준을 어떻게 하면 향상시킬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pp368-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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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제도를 제대로 관리해 나가려면 노동조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라는 기민당 지지자 K의 말이 케네디 스쿨 졸업생 같은 민주당 정치인 입에서 튀어나올 날이 과연 올까? 사민당원뿐 아니라 기민당원조차 '평평한 세계'에서는 특히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게 사회의 시스템이 엉망이 되는 것을 막는 가장 쉬운 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아무리 힘이 약하다 해도 생산성 증가분을 여가 확대와 스트레스 감소의 관점에서 노동자에게 분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반드시 소득분배의 관점만 고집하라는 법은 없다. 노동조합이 없다면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릴 전략을 수립할 길이 묘연해지고 만다. 사민당은 바로 이 점을 중시하지만 미국의 민주당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나는 불평등을 없애자는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부자가 중산층보다 더 오래 일하는 데다가 생산성까지 더 높다면 소득이 더 많은 게 당연하다. 다만 그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pp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