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여행이란
여행이 상품화되고 보편화된 시대는 어쩌면
본질적인 의미에서 여행이 사라진 시대가 아닐까 한다.
우리가 자기와는 다른 낯선 어떤 것과 연결되면서 경험하는,
자신의 몸과 지성을 작동시켜 겪어내는 삶의 내용조차
돈을 지불하고 얻는 잠깐의 쾌락에 불과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도처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여행 광고를 볼 때면
여행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사람마다 각자의 대답이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에 가치를 두지만
내게 있어 여행이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도 그 안에 포함되긴 하지만
어떤 장소와의 '만남'이라는 데 더 방점이 있다.
머릿속에 단지 이름으로만, 혹은 흐릿하거나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존재하던 장소가
생생한 생명성을 띠면서 내 앞에 다가오는 순간,
나는 그러한 순간을 사랑한다.
내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그 땅의 공기와 분위기를 촉감하는 것도 쾌락이지만
그 과정에서 그곳에 얽힌 문화와 역사의 오랜 물줄기를 확인할 때면
그곳은 한층 뚜렷한 구체성과 생명성을 지니면서 내 마음에 남는다.
마치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한 도시, 한 나라를 만나는 것도
내 마음에 기존에 없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경험이다.
그렇게 여행은 마치 한 권의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실생활에는 무용한 일이지만 내게 최고의 쾌락을 선물한다.
하루종일 걷고 돌아다니고 듣고 보게 되므로
그것은 몸의 감각을 많이 쓰는 데서 오는 쾌락이면서
동시에 내 지성에 가장 큰 샘물을 부어주는 그런 종류의 쾌락이다.
요즘은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없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든 방문하는 모든 곳이 어떤 '읽을 거리'를 그 암에 담고 있기에
어느 곳이든 좋다. 물론 내 마음 안에서
더 다양하고 풍부한 감성과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있을 것이고
그런 곳이 나와 잘 맞는 곳이므로
그런 곳과 인연이 닿으면 더 좋을 것이다.